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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Sep 03. 2023

21. 1년 호주살이 후 영어실력은?

Feat. 아빠와의 재회 @피지


9월, 다시 제이든에게 2주 정도의 방학이 주어졌다.

무엇을 하며 보낼까 생각하다가 제이든이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에 다시 비행기를 탔다.

어디에서 부자 상봉을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 끝에 호주에서 가까운 피지에서 아빠를 만나 셋이 함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벤자민과 함께 아빠를 만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제이든은 한없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지난번 아빠와 함께 시드니에 다녀온 3월 이후, 딱 5개월 만이었다. 이번에는 벤자민도 함께 했는데, 벤자민 옷도 스너플스처럼 우리가 만들어주고 이름도 새겨주었다. 









호주에서 이미 8개월을 지낸 제이든은 이제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아이들과 함께 놀고 즐기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제이든의 영어 변천사는 이렇다.

. 1월 말 호주에 와서 

. 2개월 정도는 힘들었고, 

. 3월 정도부터는 아이들과 조금씩 이야기를 하더니 

. 6월 정도부터는 거침없이 영어를 입으로 내뱉었다. 


제이든의 변화로 미루어볼 때, 제이든 나이 정도의 아이들은 6개월 정도 현지 생활을 하면 그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 같다. 제이든이 처음 학교도 가기 힘들어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놀랍도록 빠른 적응이었다. 왜 아이들을 스펀지라고 하는지 너무나 와닿고 실감이 나는 표현이다.  6개월이 지난 이후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할 정도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지금까지 그 영어 실력이 유지되고 있는지 백이면 백 궁금해한다. 호주에서 1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당시 (12월) 제이든은 한국어보다는 영어가 편한 아이였다. 한국에 와서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하면서 중간중간 영어를 섞어서 쓰곤 했다. 

한 번은 제이든과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과 이런 대화가 오갔다.


"이야~ 엄마랑 어디 가나보다. 몇 살이야?"

"8살이요."

"동생은 없고?"

"네"

"엄마한테 동생 낳아달라고 해~ " (이때부터 나는 표정관리가 잘 안 되었다)

"싫어요~"

"왜 싫어, 동생 있음 심부름도 시킬 수 있잖아."

"싫어요. 귀찮아요."

"아니야~ 동생 있으면 같이 놀 수도 있고 재미있어!"

"아니~~ 겨얼이면 어떻게 해요~~~"

"뭐라고?"

"겨~얼이면 어떻게 하냐고요."

기사님이 나에게 물었다.

"얘가 뭐라는 거예요?"

"아.. 걸(girl), 여동생이면 어떡하냐고 그러는 거 같은데요."


제이든이 한국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고 발음도 호주식이라 기사님이 어색해하셨던 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얼마 안 되어 제이든은 밖에서 내가 영어로 말을 걸면 왜 한국인데 영어로 말하냐며 눈을 흘겼다. 언어 감각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전화 영어도 해보고 영어 동화책 토론도 보내봤지만 제이든은 영어를 놀랍도록 빠르게 잊어갔다. 그렇게 빨리 배웠으니 그렇게 또 빨리 잊어버리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겠다.




제이든은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학원을 아예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영어를 문법으로 배우는 학원을 6학년이 되어서야 갔는데 시험을 위한 영어 문법 공부를 하면서 조금 힘들어했다. 문제를 풀면 답은 맞는데 선생님이 이유를 써오라고 하시면 그 답을 찾는 것을 어려워했다. 문장을 읽어보며 입으로 내뱉어보면 분명 어색한 건 알겠는데 문법적으로는 어디가 왜 틀렸는지를 모르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짧은 1년간 영어권에서 있다가 온 제이든도 그런데 4-5년씩 살다가 한국의 중고등학교로 복귀한 아이들은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 피지의 아웃리거 리조트로 여행지를 정한 이유는 그 리조트에 키즈프로그램이 있어서였다. 그동안은 휴양지의 리조트에 가도 제이든이 영어가 안돼서 프로그램을 참여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는 가능하니 제이든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키즈프로그램에 참여한 제이든(좌)                           요트타기(중앙)                          리조트에서 만난 아이들과 배구(우)


제이든은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신나게 놀았다. 마지막날 리조트 안에 있는 포켓볼 게임을 하고 있는데 외국인 아저씨가 제이든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너 어디서 왔니?" 

"저 한국에서 왔는데요." 

"그런데 왜 호주 악센트가 있지?"

"......?"


제이든이 양손을 올리며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웃음이 났다. 아저씨는 우리의 포켓볼 게임이 끝나면 다음에 하려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가만 들어보니 제이든이 외모는 동양인인데 영어발음이 호주 억양이라 궁금했던 모양이다. 




제이든이 호주에 있을 때 동화책 읽던 모습을 녹화해 둔 것이 있어서 가끔 보는데 here는 "히아", there은 "데아"라고 읽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다. 지금은 제이든이 어떻게 영어를 읽고 말하는지 들어본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잘 모른다. 처음에는 제이든의 영어가 줄어드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 1년이라는 시간이 '영어'보다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을 거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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