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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동 Aug 20. 2023

19.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요.

호주에서 자원봉도 하기 어려웠던 건 내가 동양인이라?

오늘은 호주에 있는 동안 내가 가장 힘들었던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이지만 내 호주생활 중 상당한 임팩트가 있었던지라 한 번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보탬이나 덜어냄 없이 적어 내려 갈 것이고, 이 내용이 모든 호주인, 혹은 호주 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님을 우선 분명히 해두고 싶다.



"안녕하세요, 2학기 수강신청하러 왔는데요."

"아, 2학기는 비즈니스 과정 신청하셨네요?"

"네네, 3개월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3개월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는 과정 맞죠?"

"아...... 그렇긴 한데 인턴으로 채용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네? 신청조건 다 맞춰서 한국에서 이미 등록하고 온 건데요?"

"등록은 할 수 있지만 3개월 인턴과정은 확정해 드리기(guarantee) 어려워요."

"그게 정확하게 무슨 말씀이시죠?"

"여기는 행정실이니 1층 외국인학생센터(International student center)에 가서 상담해 보시죠."


1년간 회사를 휴직하고 왔기 때문에 커리어를 생각해서 1년 내내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호주 회사를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호주에 오기 전 한국에서 충분히 심사숙고해서 등록한 것이 바로 2학기 비즈니스 과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등록을 하려는데 3개월 인턴 과정은 어렵다는 말을 들으니 어리둥절했다. 우선 안내받은 대로 외국인학생센터로 갔다. 센터 데스크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잠시 후 취업매니저가 있는 안 쪽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행정실에서 인턴 하는 게 어렵다고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방에 들어가 이곳에 오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취업매니저는 나의 질문에 답하기 전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호주에 산지 얼마나 되셨나요?"

"6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호주 사람과 일한 적이 있나요?"

"아니요, 하지만 저는 글로벌기업의 11년 차 마케터예요. 외국인과 일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미안하지만 당신을 인턴으로 고용할 회사는 찾기 어려워 보이네요."

"영어 수준과 업무 경험 조건이 다 충족되는데 왜 안된다는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호주에서 살거나 호주인과 일해본 경험이 없어서 기업에서 인턴 하기는 어려워요."

"흠.. 그럼 정식 기업은 아니더라도 Salvos* 같은 곳에서 자원봉사는 할 수 있죠?"

(*Salvos는 기증받은 중고물품을 판매한 수익으로 취약계층을 돕는 회사로 호주에 300개 이상 매장이 있다)

"자원봉사라 하더라도 호주 시민권자 2명의 신원 보증서를 제출해봐야 합니다."

"신원보증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가나요?"

"보증서에 그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고 자필 싸인이 필요합니다. 영주권자가 아닌 시민권자여야 합니다."

"그것만 받아서 제출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요. 그것도 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어요."

"이해하기 어렵네요. 저희 반 Sally*는 센터에서 소개받아 아르바이트(paid job)를 하고 있는데요."

(*Sally는 지난 학기 나와 같은 반에서 강의를 들었던 16살 학생으로 스웨덴 사람이다)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요."

"업무 경험이 없는 16살 고등학생보다 10년 넘게 회사 생활한 제가 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가요?"

"미안합니다."


"You are not a cultural fit."

이게 바로 정확하게 내가 취업담당자에게 들었던 한 문장이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나는 센터를 빠져나왔다. 그냥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일을 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나의 외모만 보고 서류를 제출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서류에 내가 아기 엄마라고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국적, 나이, 영어 수준, 재직증명서만 들어 있을 뿐인데 문화적으로 적합하지 않다니?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호주에 있으면서 인종차별을 받았던 경험 때문에 오해하는 건가 싶어 1학기 때 가장 존경과 신뢰를 받았던 Nadia 선생님께 찾아갔다.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지금 이걸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모두 들으시고는 외국인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센터 취업매니저의 처사가 굉장히 유감스럽다며, 이 일은 분명히 고쳐야(fix)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학교에도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선생님 말씀을 들은 후, 나는 학교 대표 이메일 계정으로 보낼 장문의 메일을 적었다. 그리고 다시 Nadia 선생님께 검수를 부탁드렸다. 그냥 인종차별 당했다고 찡찡대는 동양인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일을 다른 동양인도 또 경험하게 될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내가 나서서 행동했어야 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상황을 헤쳐나갈 결심을 하기에 나는 너무 지치고 버거웠다.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학교가 얼마나 빨리 조치를 취해줄지도 모르고, 취업매니저의 말대로라면 나는 정말 호주에서 인터뷰를 볼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이대로 수업을 시작하면 3개월 강의를 들은 후 남은 3개월 동안 일할 곳이 없는 나만 혼자 강의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 가서 2학기 수강료를 환불해 달라고 요청했다. 환불이 안된다는 행정실 직원에게 국제학생센터에서 내가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내부적으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네 나라에 바다가 있니?", "너네 나라는 생일을 기념하니?"와 같은 질문을 받거나, 제이든 학교에 식당 봉사활동을 갔는데, 학부모가 아닌 일용직으로 오해받은 일 등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황당한 대우를 받은 일들은 이 외에도 많이 있지만 행복한 추억은 아니기에 떠올리고 싶지 않다. 나와 제이든을 아주 이뻐해 주시던 호주 할머니는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니 도대체 왜 호주 영주권을 따서 남지 않고 한국에 돌아가냐며 '한국이 호주보다 좋은 세 가지 이유만 대봐라'라고 질문을 하셨다. 그냥 내가 태어난 나라가 좋고 내 나라로 돌아간다는데 왜 이유가 필요하냐고 웃으며 말했지만, 할머니는 집요하게 나를 설득하려고 하셨다. 우리를 아끼는 마음에 그러신다는 것을 알아서 나중에는 '제이든 아빠가 호주에서 살고 싶어 하지 않아요'라고 하자 '그런 남자랑은 이혼해'라고 하셨다. 할머니 머릿속에 동양에 있는 나라는 모두 다들 어렵게 사는 후진국이었던 모양이다.


글을 시작하면서도 말했지만 내가 겪은 일이 모든 호주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7년 전 일이기도 하고, 내가 살았던 동네는 특히나 한국인이 별로 없다는 상황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너무 분하고 속상하고 화도 났다. 그런데 돌아와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그동안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다.

 








호주인들의 캥거루사랑을 보여주는 귀여운 보냉 컵홀더 사진으로 웃으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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