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2016년 7월 하버드대 출신 미국인 현각 스님이 ‘돈만 밝히는 기복신앙, 한국 불교와 인연 끊겠다’며 한국 불교의 현실을 개탄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신앙이 기복주의로 변질되고 있다며 한탄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석가모니의 불교와 공자의 유교는 인간의 이성을 기초로 한 자연종교로서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를 전제로 하는 기독교와는 그 본질이 다릅니다. 소크라테스의 서양철학 또한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것입니다. 따라서 현각 스님이 석가모니를 신격화하고 기복주의화 되어가는 한국 불교의 일면을 개탄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이 기복주의로 변질되고 있다고 개탄하는 것은 재고(再考) 해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 자체가 기복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복의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땅의 복을 기원하느냐, 하늘의 복을 기원하느냐가 문제라는 말입니다.
요컨대, 기독교의 경우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무언가를 기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마치 아이들이 부모에게 무언가를 달라고 조르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무엇을 달라고 조르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조른다고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 들어줘도 해가 되지 않는 것만 들어주는 법입니다.
예수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합니다(마태복음 6장 24절). 재물은 땅의 기름진 복을 상징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하늘의 복의 원천을 의미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돼’라고 선언합니다(에베소서 1장 3절).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무엇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과 평화, 감사와 기쁨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면서(요한 1서 2장 15절),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선언합니다(16절). 육신의 정욕은 쾌락, 안목의 정욕은 재물, 이생의 자랑은 권력과 명예를 의미합니다. 왜 이런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절)’고.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이 땅의 기름진 복을 더해 주신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는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절).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0-32절)’고 말합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것입니다(33절).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부분을 먼저 보겠습니다. 단순히 주실 것이라고 하지 않고 더하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땅의 복을 먼저 준다는 것이 아니라 덤으로 준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에 덤으로 준다는 것일까요? 당연히 하늘의 복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마치 이 말씀을 모르는 듯 땅의 기름진 복만을 추구하거나 땅의 기름진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모두 추구합니다. 그들은 마치 불량식품을 달라고 보채는 아이들처럼 땅의 기름진 복을 달라고 보채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가 베드로에게 한 말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태복음 16장 23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일은 원죄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인류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하며 오직 하늘의 신령한 복을 추구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