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서
석가모니는 일체의 고(苦)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서 벗어나야 하고, 삼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상(我相)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의 깨달음을 통해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설파하였습니다.
반면 성경은 모든 죄의 근원이 원죄(原罪)라고 말합니다. 만일 성경의 가르침이 맞다면 원죄로부터 아상(我相)이 도출되어야만 합니다. 과연 원죄로부터 아상이 도출될 수 있을까요?
창세기 2장, 3장에는 선악과를 먹은 후 달라진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대비하여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고 있었어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먹은 후에는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는 것이고(창세기 2장 25절, 3장 7절), 두 번째는 선악과를 먹은 전에는 아담이 하와를 여자라고 불렀는데(창세기 2장 23절)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는 것입니다(창세기 3장 20절). 도대체 선악과가 무슨 조화를 부린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셨는데 오직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셨습니다(창세기 2장 17절). 여자의 권유로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은 모두 여자의 잘못입니다. 아담이 여자에게 말합니다. “야! 너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잖아, 이거 먹으면 죽는다고 했는데 어떻게 할 거야?” 아담의 말을 들은 여자도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답합니다. “네 손으로 네 입으로 먹어놓고 왜 나한테 그래? 네가 안 먹었으면 그만이었잖아?” 선악과를 먹기 전에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악을 판단해 주셨기 때문에 다툴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직후 인류 최초의 부부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상상입니다.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었느냐고 물으시자 아담이 여자가 선악과를 줘서 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12절). 여자는 뱀이 꾀어서 먹게 되었다고 말합니다(13절).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것이 자기 잘못이 아닌 여자의 잘못이라고 판단한 것이고 여자는 뱀의 잘못이라고 스스로 판단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아담이 여자에게 하와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한 몸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너와 나, 즉 피아(彼我)를 구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석가모니가 말한 아상(我相)이 생겨난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에서 아상(我相)이 발생하였다고 진단하고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을 통해 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하였습니다. 반면, 성경은 사람이 선악을 스스로 판단함으로써 너와 나의 구별이 생겨났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말한 자기부인(自己否認)의 가르침은 바로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의 차이점이 보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의하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모두를 부정해야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식(識)만 부정하면 됩니다. 색수상행(色受想行)까지는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지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빵가게 앞에 방금 구운 향기로운 빵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물질 세계인 색(色)입니다. 마침 배고픈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빵을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를 맡습니다. 이것이 수(受)입니다. 그의 뇌리에 빵을 먹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이것이 상(想)입니다. 배가 너무 고픈 그는 빵을 훔쳐 먹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행(行)입니다. 그리고 그는 배가 너무 고파 훔쳐 먹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식(識)입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의하면 빵가게 앞의 빵 자체가 공(空)함을 깨달아야 죄를 짓지 않게 되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의하면 배가 너무 고파 훔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판단만 문제될 뿐입니다.
여러분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