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선망의 대상인 용돈, 나는 머릿속에서 그 단어를 지워버렸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딴 주머니가 있어 부족함 없이 잘 살았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알부자라고 소문났지만 잊을만하면 노름에 빠지는 아버지 때문에 늘 긴장하며 살았다
하룻밤 사이에 천이백 평 옥답을 노름으로 고스란히 날려 버리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애간장을 태웠다
나는 돈 때문에 어머니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중학교까지는 용돈 없이 잘 견뎌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차츰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딸기 미팅이 유행처럼 번졌는데 나는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미팅에 대한 환상이나 아쉬움보다는 돈이 없어 참여하지 못했다는 치욕감이 가슴을 더 아리게 했다
용돈을 타서 쓸까 생각도 했지만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딴 주머니를 생각해 냈다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않고 용돈으로 대용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새 책값을 받아 헌책을 샀다. 참고서는 친구들에게 빌려보았다
남은 돈은 몽땅 딴 주머니로 들어갔다
대학에서는 장학금이 큰 도움이 되었다. 집에는 알리지 않고 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딴 주머니는 점점 살이 찌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별로 부족함이 없게 되었다
딴 주머니가 고갈되지 않도록 돈이 많이 드는 당구나 여행 등은 피하고 돈 안 드는 축구나 농구 배구등을 택하여 어울렸다
끝나고 막걸리 한잔 기울이면 그만이니 안성맞춤이었다
회사에 입사하니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처음으로 거금을 딴 주머니에 다 채우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딴 주머니가 차고 넘쳤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혼을 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월급통정이 아내에게 넘어갔다
아내는 장래의 청사진은 거창하게 그렸지만 내 용돈은 자그마하게 점 하나만 찍었다. 그래도 난생처음으로 용돈을 받아 보았다
딴 주머니는 지출이 계속되면서 허기에 못 이겨 말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와 단판을 지었다. 연말정산 환급금을 용돈에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아~ 다시 내 딴 주머니는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과장으로 진급하면서 직책수당이 나오기 시작했다
과장의 품위 유지를 위하여 쓰도록 월급통장이 아닌 다른 통장에 입금시켜 주었다. 아내가 주는 용돈보다 세배나 많았다
딴 주머니의 배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내에게 용돈은 그만 받겠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영문도 모르고 기뻐하며 감격했다. 직책수당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차장으로 승진하자마자 사내 연수원에서 제안이 들어왔다
진급한 대리들을 위해 사내강사를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한 달에 두 번씩 교육에 들어갔다. 교육이 끝나면 지체 없이 사례비가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많아 짭짤했다
드디어 딴 주머니 배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현장에 나가니 현장소장 수당은 엄청났다
아내에게 가끔씩 용돈을 주었다. 부모님께도 부담 없이 부쳐드렸다
아내 몰래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도 가끔씩 쥐어주었다
부풀어 터질 것만 같았던 딴 주머니가 퇴임 이후 말라비틀어지고 있다
국민연금 만은 당신 마음대로 쓰라고 퇴임 전 아내가 크게 양보했지만, 잘못 투자한 부동산의 후유증으로 다 쓸어 넣어도 부족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딴 주머니가 차고 넘칠 때 아껴두었더라면 요즈음 요긴하게 쓸 것인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오늘도 나는 딴 주머니에 돈 대신 희망을 입금시킨다
머지않아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으면 돈으로 바꾸어놓을 생각이다
( 2024.9월 6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