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들이 하루 종일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댄다
애벌레로 7년간 인내하며 견뎠으니 그럴만하다
여름의 끝을 잊은 듯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이제는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거울 속에 초라한 노인 하나가 멍하니 서있다
참 못생겼다
머리는 반백에 그나마 비루먹은 개처럼 듬성듬성 빠졌다
두 아들에게 흰머리 하나에 100원씩 주며 뽑아대던 때가 엊그제인데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난다
늙으니 눈썹도 마음에 안 든다
흰 눈썹 몇 개가 서로 키재기 하듯 무질서하게 서있다
눈 아래 눈두덩이 보기 흉하게 차오른다
20대부터 안경을 썼으니 당연히 받아야 할 계급장이다
정말 못생겼다
자신만만했던 기개는 간데없고 눈빛이 흐리멍덩하다
차라리 온화하게라도 보였으면 좋으련만---
생뚱맞게 책꽂이에서 사진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꽤 익숙한 싫지 않은 퀴퀴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든다
몇 장을 넘기니 두 아이가 건장한 두 팔에 매달려 있다
장사가 따로 없다
전혀 나 같지 않다
옆에 서서 깔깔대는 아내가 참 이쁘다
또 한 장을 넘기니 계곡에서 두 아이와 아내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다
기억난다, 석남사 계곡이다
밤늦게 도착해서 어렵사리 텐트를 치고 새벽에 일어나 보니 쓰레기장 옆이었다
질색하는 식구들을 위해 서둘러 옮겨 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그때는 황당했지만, 참 좋은 추억이다
다음장을 넘기니 사진은 없고 ’첫사랑‘이라고 쓰여있다
아내와 결혼하면서 고이고이 간직했던 사랑의 흔적들은 몽땅 태워 버리고 희미꾸름한 몇 글자만 남겨 놓았다
어려운 시절 폐결핵으로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합격했으나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음) 자포자기에 빠졌을 때 힘을 주고 사랑을 준 여인이다
병도 고치고 대학도 다시 가게 만든 은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운명처럼 나타나 천사같이 도와주다가 바람처럼 말없이 떠나가 버렸다
눈을 감고 얼굴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첫사랑은 추억 속의 사랑일 뿐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더 몇 장을 넘기니 고흥 우주발사체 옆에서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보인다
대통령을 비롯한 귀빈들의 사진도 여러 장 있다
이념이 다른 러시아의 기술진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는데 애를 먹긴 했지만 나로호를 우주로 성공리에 쏘아 올렸을 때 그 짜릿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다시 뛴다
15년 동안 현장소장을 역임하며 대형 화력발전소등 여러 현장이 있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현장이다
35년 직장생활의 끝은 협력사 사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그 화려했던 경력이 무색하게 요즈음 형편은 말이 아니다
노후대책의 일환으로 아파트 2채 값을 투자하여 백화점식 상가를 사들였지만 근교에 신 상권이 끼어들더니 우리 상가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살던 집까지 처분해서 투자한 땅은 비웃기라도 하듯 내리막 길로 들어선 지 오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것은 빚을 내어 중심상가 땅을 추가로 산 것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수도권 집값은 천정부지로 튀어 오르고 대출받은 이자는 덩달아 같이 뛰었다
게다가 재산세 종부세등 각종 세금 고지서가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들었다
수입이라고는 국민연금이 고작이요, 있는 것 다 쓸어 모아도 이제는 서울에 번듯한 집 한 채 조차 마련하기 어려운데--- 왜?
견디다 못한 아내는 남들이 정년퇴직으로 쉬어야 할 나이에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간호학을 전공한 것이 천운일까!
나이와 관계없이 속하게도 자리를 잡았다
파산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아내에게는 미안하고 민망한 일이다
그렇다고 절망하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뛸 만큼 충전했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자
이 세상에서 안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 도전해봤어!‘
회사생활 35년 동안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상사에게 듣고 또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문제는 풀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악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빛 가운데로 옮겨 보자
착하고 진실되고 정직한 마음으로 바꾸어 지혜와 지식을 얻어보자
절망 뒤에는 필시 희망이 좇아오고 있을 것이다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거울 속 노인이 어느 사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리 밉상은 아니다
조금 늙기는 했어도 아직은 꽤 쓸만해 보인다
(2024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