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에 2박 3일로 국내 여행을 다녀왔다.
작은아들이 나를 위하여 추억 여행을 주선했다
여수에서 고흥까지 작은아들네와 우리 부부가 함께했다.
여수는 1995년에 처음으로 현장소장으로 임명되어 화학 공장 내 발전설비를 세운 곳이고 고흥은 2007년에 마지막 현장소장으로 우주 발사대를 구축한 곳이다
여수는 첫 현장이었지만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대형 안전사고로 사람이 죽었고, 이로 인해 유가족과의 합의, 경찰과 검찰의 조서 등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설상가상으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형 하도급 업체가 셋이나 부도가 났다. 부도업체 정산, 업체 재선정, 지연된 공사 기간 만회 등 어렵고 고단하고 숨 막히게 흘러간 시간이었다
여행은 아주 좋았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한 도시다.
바다와 섬들과 오동도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해상케이블카. 루지(LUGE)를 타며 젊었을 때처럼 짜릿한 전율을 맛볼 수 있었던 뉴월드. 아이떼뮤지움의 가상 화면 속에서 사진도 찰칵찰칵. 여수 밤바다의 화려한 야경과 불꽃놀이 등을 보며 가슴 깊이 쌓여있던 여수에 대한 어두운 그림자를 모두 날려 버렸다
마지막 날에는 고흥에 들렸다. 고흥은 좋은 추억들이 많은 곳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최초 우주 발사대이며 세계 13번째로 우주 강국으로 가는 디딤돌을 놓은 공사다.
우리나라 기술력으로 제작한 인공위성을 우리가 만든 발사체에서 최초로 우주에 보냈으니 이 어찌 경이로운 일이 아니던가!
미국에서조차 거절한 기술 이전을 러시아를 통하여 받아 자체설계로 이룬 쾌거이기도 하다
가족들과 함께 공사현장을 돌아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많은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희로애락이 교차했다.
발사대 지하 건물의 모든 벽과 바닥이 너무 두꺼워 오십여 대가 넘는 레미콘 트럭이 줄지어 콘크리트를 타설해야 했다
불행하게도 레미콘 회사가 현장에서 꽤 먼 거리에 있어 콘크리트 타설 유효시간이 초과하여 멀쩡한 콘크리트를 폐기물 처리하기도 했다.
기본설계 과정에서 설게 오차로 일부 고압 파이프와 고압전선 등을 써보지도 못하고 재고 자재로 버려야 했다
공산주의 러시아, 조직체계가 복잡하고 결제 기간 또한 길어 협상하는 데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것은 기술 이전에 대한 양국의 시각 차이였다
러시아는 우리를 얕잡아보고 자체설계가 불가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헛고생하지 말고 주요 블록 단위로 자기 나라에서 수입하여 조립하라고 제안했다. 열 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우리는 전면 자체설계를 선언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기어이 해내고야 말았다. 끝까지 밀고 땅기다가 한 블록만 열 배를 더 주고 수입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우리가 충분히 설계하여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위성을 실은 로켓이 성공리에 발사되었을 때의 환희와 기쁨을 그 누가 알겠는가!
이번 여행은 점점 잊혀가는 현장에 두고 온 좋은 기억들을 다시 찾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악몽과 같은 좋지 않은 기억들은 여수항 뱃고동 소리에 실어 멀리멀리 날려 보내 버렸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받아야 할 것은 받았으니 남은 내 삶에 큰 활력이 되어줄 것이다. 시간을 내어 다른 현장들도 한 번씩 돌아볼 생각이다
( 2024. 10.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