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는 길
제3화: 장인 장모님을 모시다(기도로 행복하게 소천하신 장모님)
아내와 나는 세 분 부모님(어머니, 장인, 장모)을 모셔다가 천국 보내드리겠다고 결심했지만,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애간장을 태우는 자식들과는 달리 세분 모두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다.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왜 얹혀살아야 하냐고 반문하셨다
그렇다고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아내는 옳다고 생각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성격이다
당시 나는 3번째 공사인 부산에 설치하는 소각설비 PM 장(Project Manager: 공사 총괄 책임자)을 맡고 있었는데 지역주민의 반대 시위로 공사가 중단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전적으로 아내 혼자 시간 나는 대로 울산에서 익산과 군산을 넘나들며 세분 전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에 처가는 익산에 두 분만 계셨고 어머니는 군산에 홀로 계셨다.
그러던 중 2002년 5월 어느 날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장모님이 신장암 판정을 받고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큰 병원에서 재검사를 해 보았지만,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수술 날짜가 2002년 5월 21자로 잡혔다
아내는 나는 합심 기도에 들어갔다.
수술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정말 기적은 일어났다. 수술 직전 재검사를 받았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의사조차도 과거 사진과 번갈아 보며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종종 있는 일이라 놀라기보다는 감사를 드렸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의사가 오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사자인 장모님은 하나님을 믿겠다고 선언하셨다
아내는 어느 날 새 컴퓨터를 사 들고 친정에 갔다.
인터넷을 열어 교회에서 방영하는 목사님 설교를 같이 듣고 기도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장인어른이 반신반의했으나 매주 울산에서 익산까지 차를 직접 운전하고 가서 주일예배를 인터넷으로 같이 드리고 울산으로 돌아가는 딸을 보고 결국 두손 두발을 다 드셨다.
다행히 2008년 초에 큰 형님이 군산에 홀로 계신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갔다
형님은 장로이시고 형수님은 권사이어서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내는 익산 부모님께 집중했다.
2009년 10월 15일 장모님이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우리는 장인 장모님을 아예 울산으로 모셔왔다.
서울에 계신 큰처남이 모셔가겠다고 했지만 믿지 않는 형제에게 맡길 수 없다고 아내가 강력히 반대했고 당사자인 두 분이 우리를 선택했다.
울산에 오신지 3개월 만에 장모님은 교인들과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 속에서 2010년 1월 18일 85세로 소천하셨다
아내는 요양병원 간호사이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사람 중에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 먹을 수도 움직일 수도 숨조차 쉴 수도 없는 사람, 치매로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 장기간 입원으로 욕창이 생겨 고통받는 사람 등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명은 재천이라 죽고 싶다고 죽고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들은 또 무슨 죄인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받는 고통이 작다고 말할 자 없다
그야말로 환자도 보호자도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 장모님은 고생하지 않고 기도 속에서 감사하며 천국으로 가셨으니 원하고 소원했던 죽음 복이다.
(2024.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