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5화: 털을 다 밀어라

by 일심일도 채남수

그 사건이 있고 난 뒤로 나는 내 은신처에서 나오지 않았다.


털이 거실이나 방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엄마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다. 차라리 식음을 전폐하고 죽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가만두지 않았다.


때가 되면 소파를 밀고 나를 끌어냈다.


때로는 나무라기도 하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르기도 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거야!’


그럴 때마다 나는 더 완강하게 먹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을 시위하고 나니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덥석 주는 것을 받아먹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살려 굶어 죽을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이고 뭐고 우선 배를 채워야 할 것인지 갈등에 빠져있을 때 할아버지가 길을 열어주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먹을 음식을 아무도 보지 않게 내 은신처에 놓고 가셨다.


‘에라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더라!’


결국, 나는 할아버지 작전에 말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밥을 먹어 버렸다.


맛이 꿀맛 같았다.



엄마는 마땅한 입양처를 찾지 못했는지 그렇게 며칠이 더 흘러갔다.


털 사건으로 시끄럽던 집안이 다시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엄마에게 끔찍한 명령을 내렸다.



“우선 털을 싹 밀어보자.”


그건 아니었다.


내 자존심이요, 내 생명과도 같은 털을 다 밀어 버린다고.


차라리 도독 고양이로 쫓겨나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입양 받을 사람을 찾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엄마가 애원했다.


그런데 아빠가 뱉은 한마디에 우리 집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잔고 끝에 악수라더니 선인의 말씀이 정말 그른 게 하나도 없었다


“애완동물과 사는 사람이 우리뿐이에요?


그 많은 사람이 아무 문제없이 잘 키우고 있는데 왜 우리 집만 유별나게 그러는데---


난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이건 대안없는 전쟁 선포였다


이기지도 못할 말을 왜 하고 있는지 도대체 아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하려고.


나를 위한답시고 던진 돌이 내 머리 위에 바위로 돌아왔다.


‘아~ 나와 상의 좀 하고 대답하지---’


안타까움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 한마디로 이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응 사격이 일제히 시작되었다.


손자의 건강을 앞세워 공격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결국, 아빠 엄마는 두손 두발을 다 들고 말았다.


처참한 패배자의 결말은, 동물병원에 끌려가 얼굴 일부와 꼬리 한 뼘만 남긴 채 까까중이 되었고 할아버지 서재에 감금되는 것으로 일단 매듭을 지었다.


괘씸죄가 적용되어 형량만 더 늘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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