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성의 성장일기- 부부 대화
2-101 K씨는 3개월간 무엇이 달라졌을까
K씨가 돌아왔다. 3개월간 일본에 있는 아들집에 살다가 어제 돌아왔다. 비행기로 2시간 걸리는 길이지만 떠난지 12시간 후에 잡에 왔다. 오후 4시쯤 도착 예상시간인데 6시가 지나도 한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없어 답답한 P여사가 전화를 했다. 비행기가 연착이 되었고 이미 홍대입구란다. 가방 바퀴 하나가 고장나서 힘들다는 말을 했다. 그럼 전화 한통 해주지.
저녁으로 된장국을 끓여놓고 집 근처 전철역으로 마중을 나갔더니 가방 바퀴 하나가 너덜너덜했다.가끔씩 K씨가 하는 말이 엉뚱해서 P여사는 믿지 못하고 되물어 볼 때가 있다. 이번에 가방바퀴가 고장났다는 말은 진짜였다. 그런데 K씨는 3개월간 무엇이 바뀌었을까? P여사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P여사는 저녁을 먹자마자 줌으로 오후 11시까지 수업을 들어 부부가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공부가 끝나고 보니 여행가방에서 온갖 물건들을 쏟아 놓고 K씨는 잠들었다. 사온 물건을 보니 며느리가 선물한 커피와 과자셋트, 찹쌀모찌, 미소된장, 쯔유, 사케, 산토리니 위스키, 그리고 K씨 본인이 좋아하는 마른 안주가 여러 봉지가 있었다. 치즈말린 것, 마른 오징어, 다꾸앙을 잔뜩 샀다. 일본산 고급 다꾸앙은 P여사도 좋아한다. 덕분에 다꾸앙은 잘 먹게 되었다.
오늘 저녁, P여사는 K씨가 바뀌었는지 살짝 시험해 보았다. 저녁 먹으면서 먼저 정치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P여사가 좋아하는 철학자가 한 말을 인용했다.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하기에 나이가 들수록 보수쪽으로 기울어진다 . 진보는 세상을 바꾸고자 애를 쓰지만 세상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렇기에 진보가 집권을 해도 오래가기 어렵다"고 했다.
P여사가 먼저 정치성 화제를 꺼내자 K씨는 약간 방어적으로 나왔다. 일본에 있으면서 보수색깔이 강한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카톡을 보내 탄핵에 대한 반응을 알아봤다고 한다. 친구들은 이 시국에 말을 아끼고 " 허 허 허" 라는 대답으로 즉답을 피했다고 한다.
이런 밥상 대화를 나누면서 K씨가 달라진 점을 발견했다. 예전만큼 정치에 흥분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일본에 사는 아들 덕분일거다. 아들이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제발 정치 이야기로 도배하지 말고 엄마를 열 받게 하지 마세요 " 라고. 아직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따끈따끈한 열기가 남아 있어서 그런지 금방 다른 화제로 바꿨다.
P여사가 분석하건대, 이번 3개월 동안 K씨가 조금 바뀐 건 서울 아파트의 단조로운 생활보다 일본 시골에서 여러가지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한 덕분인 것 같다. 매일 달라지는 자연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환경에 노출되면서 조금 실용적으로 변했다. 일본말을 알아 들으려고 애쓰다 보니 생각의 무늬가 조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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