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고와 타투, 자해의 상관관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 있고 내 옆에는 중년의 여성이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반바지를 입은 내 다리에 있는 타투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샅샅히 오래도 훑어 보는데, 차라리 말을 걸면 대답을 해 줄텐데. 저 아줌마는 자기가 나를 보는 것처럼 나도 자기를 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러다 갑자기 내 타투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싶어졌다.
첫번째 타투.
2019년, 우울증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는 때였는데 어떤 성경 구절에 꽂히게 되었다. 기독교인은 아니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런 흠이 없구나."
우울증 때문에 자꾸 자책을 하게 되고 그게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때였다. 이 말을 스스로에게 계속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오랜 고민을 한 건 아니었고, 거울을 봤을 때 잘 보이는 곳에 하고 싶어 쇄골 밑에다 내 손글씨로 새겼다. 대신 거울로 봐야 하니까 반대로. 타인이 보았을 때는 좌우 반전에다 손글씨라 읽기가 어렵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포트폴리오를 모으고 있던 초보 타투이스트에게 받았다. 이유는 싸서. 지금은 번진게 보이지만 글씨를 새긴 것에 후회는 없다. 매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건 변함이 없으니까.
두번째 타투.
이것도 2019년.
두번째는 그냥 이런저런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다가 팔에다 우주선, 고리가 달린 행성, 반짝이를 나열한 타투를 보게 되었다. 오 예쁜데? 게다가 그 당시에 좋아하던 음악이랑도 어울렸다. 이번에도 별 생각 없이 레퍼런스가 비슷한 작업물 하는 타투이스트로 예약했다. 첫번째 갔던 타투샵은 대학가 원룸에, 하얀 벽지, 하얀 가구로 밝은 분위기가 연출되었는데 이번에 간 타투샵은 확실히 '이건 불법이 맞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검은 벽에 검은 침대. 냅다 놓인 가죽 소파와 무심하게 켜 놓은 티비에는 드라마 '열혈사제'가 방영되고 있었다. 타투이스트가 '담배 펴도 돼요.'라고 말했지만 거절했다. 이번엔 옆구리에다가 받았는데 쇄골과는 달리 물렁물렁한 옆구리 살에다가 덜덜더럳럳러 떨리는 바늘로 찍어대고, 핑크색이며 파란색이며 색깔까지 칠하니 꽤 아팠던 기억이 난다. 이 '우주 타투'는 내 뒷 옆구리를 볼 일이 잘 없어 타투를 했다는 게 문득 기억이 나면 살펴 보는 정도이다. 수영복을 입으면 잘 보이는 자리라서 괜찮다고 생각한다.
세번째 타투.
이것도 2019년. 대체 2019년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달치 정신과 약과 퇴직금을 챙겨들고 떠난 33일간의 발리 살이에서 몸에 남긴 기념품이랄까? 한국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발리의 끝, 바닷가 마을에서 현지인 친구를 사귀었다. 발리 남자들은 대부분 몸에 타투를 가지고 있다. 더운 날씨 덕에 신발이며 티셔츠며 자주 벗어 던지던 친구였는데, 그 친구 역시 몸에 멋진 타투를 새기고 있었다. 그 친구 등짝은 4사분면으로 나누어져서 돈이 생기면 하나씩 채우고 있다고 말했었다. 타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자기가 아는 타투이스트가 있다며 내가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에 타투이스트를 불러 주었다.
내가 묵고 잇는 숙소는 작은 방들이 일렬로 붙어 있고 앞 뒤로 빼곡하게 꽃나무가 심겨져 있는 곳이었는데, 방의 입구 앞에는 작은 테라스와 같은 공간이 있었다. 영어를 할 줄 알지만 무척 수줍었던 타투이스트는 내 다리에 새길 장미꽃 한송이를 3가지 사이즈로 뽑아와 이리 저리 대보더니, 테라스 바닥에 나를 앉히고 그대로 작업을 시작했다. 말이 테라스지 그냥 야외. 타투를 새기는 몇 시간 동안 내내 내 옆에는 개미가 기어다녔다. 야외 타투 받아본 사람 많지 않을 걸? 나는 테라스에 다리를 펼치고 앉고, 타투이스트는 내 다리로 거의 엎드린 상태에서 주먹만한 장미를 몇 시간 동안 새겼다. 엄청 아팠다. 가장 아팠던 부분은 잎사귀 부분이었는데 초록색으로 이미 칠한 잎에 빨간색으로 음영을 넣겠다고 칠한데를 또 칠하는 타투이스트의 정성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이 타투의 의미는 '누군가 꽃을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에게 꽃을 주자.' 지금도 그 꽃은 내 다리 위에 놓여 있다.
타투가 없거나 1개가 있는 사람은 자살 시도할 확률이 비슷하지만, 타투가 2개 이상, 특히 4개 이상이 있는 사람은 자살 시도가 확연히 많다고 한다. 우울증이 심하던 때에 타투를 세개나 새긴 건 사실이니, 타투가 자해의 일종이라는 말에 어느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살고자 선택했던 한 가지 방법이니, 지금도 내 타투들에 후회는 없다. 내 마음에 나 있는 상처를 덮어주는 그림들이라고 여긴다. 이번에는 또 어디다 뭘 새겨 볼까? 생각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