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냐 애니메이션이냐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만화책을 고르는 편입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나면 할 일이 없는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책은 언제든지 페이지를 멈출 수 있고, 재미있을 때 더 빨리 넘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내가 아는 쵸파는 이렇지 않아...
일본 애니메이션은 대체로 만화책이 원작입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화 되며 그림체가 바뀌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원작의 내용을 따라잡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방영을 하게 되면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끼워넣기도 합니다. <카드캡터 사쿠라>의 리 메이링은 애니메이션에만 등장했는데도 성공한 캐릭터 중 하나입니다. <블리치>의 참백도 편처럼 만화책에 설정이 역수입되는 경우도 있고요. 근데 저는 싫어합니다. 이 과정에서 원작자가 직접 만든 캐릭터의 매력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에요.
<스킵과 로퍼> 애니메이션 오프닝 <화면 출처=왓챠>
서문이 길었습니다만 요즘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고, 또 초월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원작을 너무 재밌게 보고 난 뒤에 애니메이션도 성공적이었던 경험을 꽤 했거든요. 지난달 첫 화를 방영한 <스킵과 로퍼>는 그야말로 만화책을 넘어섰습니다. 8권 정도까지 읽은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 오프닝만으로도 전체 에피소드를 꿰뚫는 느낌이에요. 그만큼 제작진이 원작을 이해했다는 거겠죠?
단순히 얘기하자면 힐링물입니다. 저는 <너에게 닿기를>과 <아즈망가 대왕>을 적절히 섞은 작품 같아요. 여기에 성장물이 주는 매력도 충분히 들어가 있습니다. 시골 출신의 소녀가 도쿄로 상경해 학교를 다니면서 겪는 이야기와 러브 스토리가 중심인 순정 만화지만, 갈등을 겪고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공감이 가요. ‘청춘 스토리’는 너무 자주 볼 수 있는 소재잖아요. 그런데 ‘꼼수 하나 없이 정직한 청춘 스토리로 감동을 줄 수 있다니…’ 생각이 드니까 작품을 더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블루 피리어드의 주인공 야토라 <화면 출처=넷플릭스>
<블루 피리어드>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일본의 입시 미술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일본 만화가 정말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술과 입시를 더해 이렇게 밀도 있는 이야기를 그렸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작가 본인이 도쿄예대(우리로 치면 한예종일까요)의 입시를 도전한 장본인인데요. 그래서 더 묘사가 사실적인 듯합니다.
미술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 현대 미술이란 건 대체 왜 어려운지 신랄하게 짚으면서 만화의 기본적인 재미를 잃지 않습니다. ‘예대 입학’이 ‘마왕성 공략’처럼 느껴질 정도로 소년 만화의 분위기를 물씬 내거든요. 카마도 탄지로가 물의 호흡을 배워가듯이 데생‧유화의 지식과 기술을 얻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미술을 다룬 만화이니만큼 유화 작품이 작중에 많이 등장합니다. 만화책에서는 흑백으로 표현된 것들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컬러로 살아납니다. 스토리가 충분히 매력적인 만화에 액션과 효과를 더하니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에 한층 더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넷플릭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