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평범한 직장인이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해서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미래의 에세이 출간 작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작지만 알찬 정보가 되면 좋겠습니다~ :)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일 년 전, 2021년 7월 말이었다. 방학에도 자기연찬을 소흘히 하지 않는 선생님들 틈에 살짝 껴서 나도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다. 미션은 2주 동안 하루 한 편씩 짧든 길든 글을 써서 커뮤니티(인디스쿨)에 올리기. 의사 양반, 내가 글을 쓰다니, 내가 글을 쓰다니...! 중학생 때 한창 만화책에 심취하여 2차창작 몇 번 끄적거리다가 말았고, 이십대 중반에 유럽여행을 다녀오더니 갑자기 여행 작가가 되겠다며 몇 편 끄적였으나 흐지부지 되버린 적은 있었다. 그 후로는 그 흔한 일기도 안 쓰고 살아오던 나였는데 갑자기 하루 한 편 글쓰기라는 미션이 떨어진 것이다.
주제는 '환경'으로 정했다. 난 2017년부터 제로웨이스트를, 2021년부터 비건지향을 시작해서 뭔가 그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넘쳐 흘렀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의 거의 전부를 그냥 꿀꺽 삼키며 살았던 이유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심코 종이컵을 쓰는 사람 앞에서 '종이컵말고 개인컵 쓰면 좋겠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의 공기는 얼마나 어색하게 굳어버릴까? 상상만해도 싫다. 하지만 글쓰기는 달랐다. 훨씬 더 완곡하고 비폭력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뾰족하게 남을 향하는 말은 치워 두고, 대신 내 이야기를 좀 더 길게 기록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내 속에서 흘러 넘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글로 옮겼다. 술술 써졌다는 말이다. 이게 되네? 싶어서 신이 났다. 하지만, 그런 초심자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딱 1주가 지나자 더이상 이야기가 흘러 넘치지 않았다. 쥐어짜야 할 때가 왔다.
원고작성 요령 ① 목차부터 작성해보기
한 편의 글을 쓰긴 어려워도 주제에 어울리는 제목 한 줄 떠올리는 건 비교적 수월했다. 스스로에게 동기유발을 하기 위해 일부러 책의 목차처럼 보이게 챕터를 나누고 가운데 정렬을 하고 무려(!) 프롤로그/에필로그의 제목도 미리 정했다. 내가 아직 쓰지 못한 꼭지는 제목을 진하게 표시해놓고, 한 편씩 쓸 때마다 보통으로 돌려놨다. 스스로 그런 규칙을 정하자, 뭔가 게임 퀘스트를 하는 것 같고 왠지 다시 힘이 나기 시작했다.
출간된 책 속 목차와 오리지널 원고 속 목차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다. 엄청 크게 바뀌진 않았지만 세세하게 보면 꼭지가 챕터를 이동했거나, 제목이 수정되었거나, 아예 빠진(혹은 제목만 정해놓고 끝까지 쓰지 못한..) 꼭지도 보인다. 당연하게도(?) 출간된 프롤로그/에필로그 제목 및 컨셉은 1년 전과는 전혀 달라졌고 ㅎㅎ
그 어떤 출간제의도 약속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나만의 목차를 만들며 꿈을 키우다보니 조금씩 야망도 같이 자랐다. 내 글도 에세이가 될 순 없을까? 첫 시작은 '먼 훗날 내가 다시 읽어 보면 재밌을 기록'이 목적이었지만, 더 큰 목표가 생기자 더이상 이건 나만을 위한 '일기'가 되어서는 안됐다. 그때부터 나는 여태 썼던 글을 고치기 시작했다.
원고작성 요령 ② '일기' 말고 '에세이' 쓰는 법
독자를 '나'로 한정 짓고 썼던 시절은 그야말로 일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미지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고치기 시작했다. 제일 신경써서 손 본 부분은 바로 각 꼭지의 '첫문장'이었다.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를 떠올리면 대부분 '나는 오늘~' 이렇게 시작되지 않았나? 하지만 '나는 오늘~'로 시작되는 에세이를 읽고 싶어할 독자는 누구도 없을 것이기에 첫문장에서 얼마나 문학적으로 독자를 사로잡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일기와 에세이의 한끗 차이가 갈리는 첫 지점이기도 하고.
비교적 평범했던 도입부들을 싹 다 손봤다. 적절한 도입이 생각이 안날 때는 머리카락을 움켜 쥐고 끙끙대며 고뇌했다. 뭔가 더 신선하고, 더 흥미롭고, 더 궁금할 첫 문장을 찾아서..
첫문장 못지 않게 글의 마무리도 중요했다. 일기였을 땐 그냥 '이만 안녕'이런 느낌으로 서둘러 마무리한 적도 있었건만, 에세이라면 응당 그러하면 아니됐다. 프로 에세이스트들의 글 마무리를 참고하기 위해서 이때 도서관에서 참 '에세이'를 많이 빌려 읽었다. 이 때 (지면으로) 만난 훌륭한 에세이 스승님들 중 특히 나를 반하게 만든 분은 이슬아 작가님, 요조 작가님. 두 분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배울 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결국 나의 '재능 부족'을 느끼며 좀 분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기도 했다..ㅎㅎ 심지어 두 분 다 채식주이자며 두 분이 친하기까지 하다니, 그저 멋지다. 너무 너무 너무 멋져서 분해(....)
원고작성 요령 ③ 원고지 600장 분량 채우기
책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장강명 작가님은 저 책에서 하나의 주제로 원고지 600장 분량의 글을 써 보라고 조언한다. 근데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눌러쓰는 시대가 아닌데 어떻게 내 글이 원고지 몇 장인지 알 수 있을까? 다 방법이 있으니, 그대여 돈 워리-
<별일아닌데 뿌듯합니다>의 초고를 완성했을 때, 총 원고지 640장 분량이었다.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한글문서에서 [파일]탭을 열면 그 아래 쪽에 [문서 정보]라는 메뉴가 있다. 그걸 클릭해서 [문서 통계]탭을 클릭하면 위 이미지처럼 내 글의 분량을 원고지 매수로 환산해서 알 수 있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회고하고 '600장을 써보세요' 가볍게 이야기 하지만, 저 당시에는 정말 얼굴엔 핏기가 다 빠져서 홀쭉해진 뺨으로 밤마다 창백한 모니터를 보며 뭔가 타닥타닥 적곤 했다. 아니, 그냥 멍하니 빈 화면을 바라보던 때가 더 많았던 듯.
처음에는 흘러넘치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썼지만, 그 행운은 서두에 말했듯이 딱 1주일이었고 그 후에는 계속 쥐어 짜고 내 스스로를 달래가며 쓰다가, 막바지 9월 초쯤 되니까 "끄아아아-" 정신을 반쯤 놔버리(...)지는 않았지만 살짝 미쳐가면서 완성했다. 창작의 고통이란... 이땐 정말 "글 쓰느니 차라리 수업 하겠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전 세계 모든 작가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아, 물론 수업하는 선생님들께도요.)
그러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내가 쓴 원고가 원고지 600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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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출판사 투고> 로 이어집니다.
제로웨이스트-비건 에세이 <별일 아닌데 뿌듯합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