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擴張): 울타리를 넘다

대신 뭔가와 멀어지는 중

by 재룬

광역버스 M5107.


시내버스만 알던 내게 참 신기했던 버스다. 교통카드를 찍고 타는데, 그 주행거리와 내부 좌석은 시외버스 뺨쳤으니까. 통기타를 매고서 버스에 올라탔다. 시골 촌놈인 내가 기타와 함께 서울로 향하게 된 사연은?



교내 밴드 동아리에서 다음 공연까지 기다리기가 너무 힘들어서 결국 울타리를 넘기로 결심한 나.(지난 화 참조) 내향형인 내가 어쿠스틱과 거리 음악이라는 정체성을 되찾고자 큰 마음먹은 것이다. 네이버의 한 버스킹 카페에서 끈질기게 밴드 멤버 모집글을 물색한 결과 드디어 한 팀과 연락이 닿았다.


밴드 구직 참 힘들더라. 기타 파트가 이렇게 포화되어 있을 줄이야. 종전까지 기타를 친다는 건 일반인에게는 없는 신비한 초능력이고, 기타리스트는 마법사와 같은 존재라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쪽 업계에선 널리고 널린 게 기타더라.


어쨌든 목적지는 신촌 소재의 한 지하 작업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겁도 없지,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이 오라는 곳으로 냉큼.. 뭐, 그게 스무 살의 패기 아니겠나. 그만큼 그동안 타의로 치게 된 일렉기타와 전자음에 피로감을 느꼈던 것이리라. 그렇게 동동 버스에 실려가다 2호선으로 갈아타 신촌역에 다다랐다.


2번 출구로 나와 카카오맵을 더듬더듬 짚으며 약속한 작업실로 천천히 다가갔다. 서울은 올 때마다 느끼지만 빌딩이 참 높다. 누가 봐도 시골 촌뜨기처럼 그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걸었다. 서울에서 그러고 다니면 눈 뜬 채로 코 베인다는데,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게 된다. 거기다 입까지 살짝 벌려주면 완벽한 촌놈 그 자체.


촌티 팍팍 풍기며 길을 따라가 보니 구부정하게 기울어진 빨간 기둥 모양의 거울이 신기해서 들여다봤다. 다행히 코는 멀쩡. 독특한 모양의 구조물을 보니 뭔가 내가 막연히 알던 신촌, 홍대. 딱 그 예술적인 느낌이 있어 기타를 메고 걷기만 해도 또한 마치 아티스트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 홍대병 걸리는가 싶더라.



작업실 건물 앞에 도착했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긴장됐지만, 벌벌 떨다 뒤돌아서기에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신촌.. 너무 멀리 왔으니 계속 가야 했다. '도착했습니다'라는 카톡과 함께 문을 열고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탔다.


살금살금 보아하니 원룸 같은 구조로 여러 개의 작업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딱 봐도 방음 엄청 잘 될 것 같은 커다란 문들이 즐비했다. 그중 한 작업실의 문이 열리더니 밴드 단톡방에서 본 프로필 사진과 굉장히 닮은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고, 어색하게 인사한 뒤 작업실로 따라 들어갔다.


대략 5~6평 남짓한 방에 나까지 총 4명의 사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멤버 구성은 26살 보컬이자 리더, 22살 건반, 20살 드럼, 그리고 기타를 맡을 나. 형님 두 분에 동갑내기 친구 하나였다. 베이스도 구인 중이나 모집이 잘 안 된단다. 어디든 똑같구나. 베이스는 본디 희귀한 파트니까..


대뜸 기타를 쳐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간적인 환대를 받았다.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질문과 기타를 왜 치고 있고, 그게 왜 일렉이 아닌 어쿠스틱이고, 버스킹은 왜 하고 싶은지. 다들 눈이 초롱초롱했던 덕에 나도 무장 해제하고 평소 생각을 줄줄 늘어놨다. 여기저기서 모였지만 다들 나와 다르지 않은, 그저 음악을 좋아하는 청춘들이었다.


그리고 본인들의 소개도 간단히 해줬는데, 그 사연들이 정말 제각각이었다. 보컬 형님은 휴학생이었고, 4학년 올라가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음악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2년이라는 시간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그 안에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면 본인도 깔끔하게 인정하고 원래 가던 길을 갈 생각이라고 한다.


건반 형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콩쿠르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정해준 곡을 연습하고, 누군가의 곡을 따라 하는 게 싫어서 길거리로 나왔다고 한다. 언젠가 내가 만든 곡으로 그 멋진 홀에 다시 서는 것이 목표라고. 동갑내기 드럼 친구는 막연하게 드럼이 멋있어서 시작했지만, 우연히 해봤던 거리 공연에서 잼베와 카혼을 연주한 뒤로 그 맛에 푹 빠져 다시 드럼스틱을 잡지 않았다고 한다.


이야.. 다들 너무 아름다운 동기들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의 삶을 던지고 여기 뛰어든 사람들.. 얌전히 대학이나 다니던 내가 이런 사람들이랑 같이 음악을 해도 되는 건가..? 뭐, 따지고 보면 나도 학교 동아리를 제쳐두고 오긴 했으니까.. 주눅 들지 말고 팀에 잘 녹아들고 싶었다.


아이스 브레이킹 이후 드디어 음악적인 자기소개 시간. 기타 좀 들어보자고 해서, 이곳 신촌까지 낑낑 짊어지고 온 통기타를 꺼내서 자신 있는 곡을 연주했고, 아마 <벚꽃 엔딩><하늘을 달리다>를 쳤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자 답가로 당시 유행하던 <광화문에서>를 건반과 함께 들려주셨다. 음악으로 주거니 받거니.. 마치 또 다른 언어 같지 않은가.


그렇게 한참 노래하고 떠들다 보니 벌써 저녁 8시. 리더 형님이 대화해 보니 생각도 잘 맞는 것 같고, 이렇게 모인 김에 밥이나 먹고 흩어지자고 하셨다. 초면이었음에도 형님이 데려간 곳은 삼겹살집.. 이게 바로 서울의 씀씀이인가! 덕분에 고기 회식이라며 다른 멤버들도 버선발로 작업실을 뛰쳐나왔다.


'너 술 마시냐?'라고 묻자 대학에 온 뒤 가진 여러 차례 술자리로 나름 자신감에 차있었기에 냉큼 그렇다고 했고, 우리는 지글지글 잘 구워진 삼겹살에 가볍게 소주 한 잔씩 들이켰다. 술까지 더해지자 진정한 밴드 멤버가 된 기분.. 초여름이라 날씨도 선선한 것이 낭만이 치사량에 가깝게 차올랐다.


더 어울리고 싶었지만, 나는 내일 아침 9시 수업이 있었기에 이만 돌아가야 했다. 다들 적당히 취한 상태라 자연스럽게 노래가 살살 새어 나오는 상태였는데 아쉽다며 빨리 또 모이자고 졸랐다. 나도 빠르게 다음 합주 약속을 잡자고 했고, 멤버들은 나를 신촌역까지 배웅해 주었다. 그러다 내가


그냥 밤새고 갈까요 ㅋㅋ?


너무 아쉬워서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정신 나간 소리를 해버렸다. 멤버들은 오오! 하고 괴성을 지르더니 이제야 말이 통한다며 얼른 노래하러 가자고 했다. '노래방이라도 가나?' 했는데 거리의 악사들에게 노래방 반주는 필요 없다. 곧장 작업실에서 버스킹 장비를 챙겨 택시를 잡았다.



여기는 홍대.


나는 기타를 메고, 멤버들은 각각 캐리어형 버스킹 앰프, 마이크와 각종 선들, 그리고 박자를 책임져줄 카혼을 바리바리 싸들고 거리 음악의 메카, '홍대 놀이터'로 뚜벅뚜벅 향했다. 건반은 무거워서 오늘은 작업실에 두고 왔다. 즉흥 버스킹이 아닌 다음에 각 잡고 할 때 가져오기로. 건반 형은 오늘은 듣기만 할 거란다. 그것도 너무 좋다면서.


나의 롤모델인 장범준도 과거 대학생 시절 출연했던 다큐멘터리 중 이곳 홍대 놀이터에서 거리 공연하는 모습이 나온 적이 있다.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게 인상 깊었던 그곳.. 정확히 같은 그 공간에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놀이터로 향하는 골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노래, 기타, 잼베, 힙합 소리 등 정말 많은 청춘들이 자신이 갈고닦은 음악과 개성을 길거리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맘껏 분출하고 있었고, 그게 관객이든, 그냥 지나가는 행인이든 딱히 신경 쓰지 않나 보다.


어쩌다 한 명의 발길을 멈추게 하면 땡큐, 팁박스에 돈을 넣어주면 땡큐, 아님 말고. 쿨하고 즐거워 보였다. '제발 제 음악 좀 들어주세요, 제발 돈 좀 주고 가세요'와 같은 구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속내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처절하지 않고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초여름밤, 홍대 놀이터의 하얀 조명에 비친 그들의 거리 공연을 본 적이 있는가. 진짜, 진짜 멋있다.


이에 질세라, 우리도 얼른 놀이터 구석 빈자리에 둥지를 틀고 장비 세팅에 들어갔다. 어떤 곡을 할지 셋리스트 같은 건 없다. 그냥 할 수 있는 곡 다 하면 그날 공연은 끝. 넷이 머리를 맞대고 할 줄 아는 곡 뭐 있는지 탈탈 넣어놨다. 오케이, 리더 형님이 핸드폰 메모장에 모두 적었고, 위에서부터 한 곡 씩 지워내려갔다. 내 첫 공연은 놀랍게도 그런 식이었다.


길바닥에서 열심히 기타를 치다 보면 누군가 우리 앞에 멈춰 선다. 그게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다. '제발 우리 노래가 마음에 들길..!' 하면서 간절하게 연주하다 보면 또 제 갈길 가는 관객(이었던 분). 그러면 '하.. 다음 곡은 더 자신 있는데..' 그런 생각에 굉장히 아쉽다. 거리 공연이라는 건 이렇게 스릴 넘치는 거구나.


이어지는 공연 도중 저 끝에서 주무시는 줄 알았던 한 노숙자 아저씨께서 갑자기 일어나 우리 쪽으로 다가오시더니


돈 여기 주면 되나?


하며 별 기대 없이 펼쳐뒀던 내 기타 가방에 1만원 지폐를 넣어주셨다. 보컬 목소리가 좋아서 한참 들었다며 너네 소주 한 병 씩 사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비틀비틀 홀연히 떠나셨다. 우리 넷 모두 벌떡 일어나 연신 감사하다며 인사드리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며 한참 신기해했다.


이제 곡도 거의 바닥났고, 보컬 형님 목도 어느 정도 간 것 같으니, 공연은 이 정도로 하고 주변을 좀 탐색해 봤다.


장비를 정리하고 있던 그때, 통기타를 맨 아저씨 한 분이 우리 앞에 서서 갑자기 자작곡을 들려줄 테니 한 번 들어보겠냐고 하신다. 어안이 벙벙했던 우리는 이게 바로 버스커들의 소통법인가 해서 절절했던 아저씨의 자작곡을 들었다.


아마 <안녕>이라는 제목의 곡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만날 때도 안녕, 헤어질 때도 안녕이라고 하듯 이 단어가 가진 이중적인 면을 잘 부각시킨 곡이었다. 솔직한 평가도 요청을 하시곤, 고맙다며 또 다른 사람 앞에 가서 노래를 하셨다. 나도 저런 용기를 갖고 싶었다.


또 주위를 둘러보니 심플하게 비트만 깔고 그 위에서 쉼 없이 프리스타일 랩을 하던 사람도 있었고, 그루브 넘치는 음악을 틀고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서 브레이크 댄스를 선보이던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행인이자 관객인 사람들은 마치 뷔페에 온 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들의 예술 활동에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해줬다.


거리 공연..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아직도 버스킹에 미련이 있는 이유다.


새벽 5시가 넘어가니 하늘도 어느새 푸르스름했다. 생각해 보니 그 삼겹살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고 이 난리를 치고 있었지. 우린 다 같이 편의점으로 갔다. 새벽이라 으슬으슬 추우니 생각난 건 당연히 컵라면. 새벽 공기가 시원하니 좋길래 우리는 참깨라면에 물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 옆구리 어딘가에 걸터앉아 남자 넷이서 컵라면 하나씩 붙들고 후루룩후루룩 참 맛있게도 먹었다. 지금 보면 밤새 돌아다녀 꾀죄죄한 것이 참 거지 꼴이 따로 없는데, 그땐 그게 마치 굶주린 예술가스러운 멋이 있다고 느꼈었다. 더 거칠고 투박할수록 뭔가 아티스트 같은 느낌? 이해 안 되시죠? 저도 지금 보니 그렇네요.


그렇게 밤을 꼴딱 새운 철부지 새내기 버스커. 이제 수업 들으러 가셔야죠?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지난밤의 소란에 대한 업보를 청산할 시간이다. 꾸벅꾸벅 졸면서도 어찌저찌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해서 기숙사에 도착했고, 좀 씻고 9시 영어 수업에 늦지 않았다. '이게 되네?' 싶더라. 자고 있던 룸메이트는 내가 아침밥 먹고 들어온 줄 알았단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차라리 몰랐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이 맛을 알고 나니까 교내 우리 학과 밴드 동아리의 음악적 방향성에 편승하기가 더 어렵게 됐다. 애초에 우리 동아리가 록밴드를 추구한다는 걸 모르고 들어온 내 잘못도 있고, 완전 록만 하는 건 아니라며 가입을 권유했던 동아리 잘못도 있다.


다가오는 여름방학에 있을, 체험 방문 온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보일 공연의 선곡 과정에서 쉽게 좁혀지지 않을 불화의 씨앗이 싹터 버렸다.


소프트록이나 신나는 어쿠스틱 밴드 곡도 몇 가지 제안했으나 그놈의 다수결에서 밀려 자꾸 일렉기타 긁는 거만 시켜서 (지난 화 참조)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있었다. 얄밉게도 하드록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음원을 넘어 그 밴드가 라이브에서 했던 버전을 하자며 더 어려운 제안을 해왔다.


이 와중에 악보도 없는 걸 영상 보고 소리 들어서 카피를 해와라.. 아 이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나는 노래방 기계가 아니다'라고 운을 떼며 그동안 쌓였던 불만을 쏟아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가입하지도 않았다며 서로 발언의 수위가 높아져 가다 선곡도 중단, 대화도 중단. 분에 못 이겨 기타를 챙겨 방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학과 내 동아리였기에 강의실이든, 식당이든 얼굴 계속 봐야 하는데 더 이상 싸우기도 싫고, 그렇다고 대화가 통할 것 같지도 않고. 나는 동아리 합주실이나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았다.


가끔 신촌에 합주와 거리 공연을 하러 가기 위해 기타를 메고 다니다 동아리원들을 마주치면 좀 어색했다.


동아리도 안 하면서 기타는 왜 들고 다니지?


어디 다른 밴드 하나보지. 배신자네. 배신자.


자기가 버스커 버스커라도 된 줄 아나 보네~


내가 내 기타 들고 다니는데 왜 이런 비아냥을 당해야 하지? 무시하려 했지만 등에 메고 다니는 게 점점 신경 쓰였고, 피곤해졌다. 반복되는 감정소모에 보기만 해도 즐거웠던 통기타라는 것 자체에 권태를 느꼈고, 항상 내 무릎과 어깨 사이에 안겨 있던 기타는 이제 옷장 위에서 먼지만 품었다.


방학 끝 무렵 학교로 돌아오는 길,

내 어깨 위엔 아무런 짐도 없었다.


나는 통기타를 본가에 데려다줬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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