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治癒): 모자랐던 한 발짝

물러서고, 다가서면, 아문다

by 재룬

기타 학원, 밴드 동아리, 홍대 놀이터.. 모두 통기타가 나를 데려다준 곳들이다. 그러나 밴드 동아리 친구들과의 내홍(지난 화 참조) 끝에 기타라는 것 자체에 싫증을 느껴버린 나는 역으로 통기타를 본가에 데려다주고 혼자 학교로 올라왔다.


어깨가 가볍다. 그동안 커다란 통기타 가방을 메고 지하철, 버스, KTX를 타느라 참 애먹었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몸으로 돌아다니는 게 얼마 만인지. 헛웃음이 났다.


기타 없이 아쉽거나 심심하지 않겠냐고? 절대. 고집불통인 그들과 다시 섞이고 싶지 않아서 그 싹을 원천 차단하고자 이렇게 결단을 내린 것이다. 다시 스멀스멀 내게 다가온다면 어차피 기타가 없으니 함께 못한다고 선을 그으련다.


여름방학 끝 무렵 내 멜론 플레이리스트에서 통기타나 밴드 음악은 사라져 갔고, 여름이라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힙합에 푹 빠져 있었다. 신나는 비트와 중독성 있는 리듬, 그리고 자유로운 가사들에 한껏 몸을 맡겼다. 더 이상 튜너, 피크, 앰프, 기타 잭이 필요 없어서 더욱 편리하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매드 클라운(Mad Clown)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특히 <Tic Toc>, <외로움은 손바닥 안에>를 참 좋아했다. 힙합임에도 서정적인 매력이 있는 그 투박한 가사들을 곱씹으며 잠 못 드는 새벽을 보내다 2학기를 맞이했다.



스무 살, 두 번째 개강. 9월이지만 아직 반바지와 슬리퍼가 어울리는 날씨였다. 여전히 더웠지만 여름 특유의 그 꿉꿉한 습기는 한 층 잦아든 그런 계절. 밴드를 하지 않는 대학 생활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그 가을을 무척 기다려왔다. 왜냐하면 의도치 않게 엄청난 시간표를 만들어 버려서.


수강신청 때 일부러 이렇게 짠 건 아니었는데, 전공과 교양과목들을 잘 끼워 넣다 보니 그만.. 모든 대학생들의 최우선 목표인 금공강(금요일 공강)에다 월화수목 첫 수업이 모두 12시 이후인 말도 안 되는 시간표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나는 개강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이로써 나는 어느 요일 밤에 술을 마셔도 다음 날이 걱정되지 않았고, 참 많은 술자리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술 마시면 내가 진짜 개라고 소주 냄새가 진동하는 입으로 중얼거려도 이게 해장 좀 하고 저녁 어스름쯤이면 또 그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리워지는 게 스무 살 아닌가.


그러다 언제였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긴팔 후드티와 반바지, 스냅백을 쓰고 슬리퍼 질질 끌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기숙사로 돌아오던 어느 새벽이었다. 주말이라 룸메이트도 집에 가고 없겠다, 문도 열고 씻고 이어폰도 없이 노래를 틀고 잘 준비를 했다.


개운한 몸으로 샤워실에서 나와 에어컨 바람 아래 침대로 뛰어들었다. 불 끄고 바로 자기엔 지금 너무 뽀송뽀송하고 상쾌했으니 핸드폰 좀 하다가 자는 것이 인지상정. 여느 때처럼 유튜브에서 당시 내 우상이었던 매드 클라운의 영상들을 찾아봤다.


그러다 매드 클라운이 가수 정기고와 <너 사용법>을 커버한 무대를 보게 됐다. 랩을 들으려고 틀었던 영상이지만, 내 눈길은 다른 곳으로 갔다. 정기고? 아쉽게도 보컬도 아니다. 두 가수 바로 뒤에서 말아주는 통기타 반주에 눈과 귀를 뗄 수 없었다.


여름 내내 힙합만 듣다가 오랜만에 통기타의 선율을 들어서 그런지, 퍼커시브(Percussive: 쳐서 소리를 내는) 주법이 매력적인 그 <너 사용법> 반주는 실로 대단하게 다가왔다. 새벽에 침대에서 새우처럼 옆으로 누워 그 영상을 보며 든 생각은 '기타 치고 싶다'. 중3 어느 가을 <슈퍼스타K3>에서 장범준을 봤던 그때처럼.


근데 이걸 어쩌나. 내 통기타는 저 멀리 본가에 두고 왔는데. 그날 새벽, 내 여름용 홑이불은 내게 수도 없이 걷어 차였고, 당장 그 주말에 본가로 내려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그렇게 관계에 잔뜩 토라져 본가 옷장 위에 처박혀 있던 통기타를 다시 기숙사까지 데리고 왔다. 큰맘 먹고 가져다 놨던 것에 비해 복귀까지 2달도 안 걸려서 좀 민망하기도.. 어쨌든 닥치는 대로 연습했던 <너 사용법>. 손맛이 정말 끝내주는 곡이다.


버스커 버스커로 기타에 입문했다 보니 줄을 한 줄씩 뜯는 핑거스타일보다는 피크로 한 번에 스트로크를 하는 주법에 익숙했다. 그러나 <너 사용법>을 기점으로 피크를 내려주고 손맛에 푹 빠지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어떤 스테이지가 잠금해제되듯,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훨씬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어 즐거웠다.


당시 내가 좋아했던 핑거스타일 곡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갔다. <슈퍼스타K6>의 우승자인 곽진언이 경연 중 선보였던 <소격동>, <자랑> 참 많이 연습했었다. 피크를 들고서 찰랑찰랑 내는 경쾌한 소리도 좋지만, 아르페지오(Arpeggio) 주법으로 기타 한 줄, 한 줄이 주는 고독하고 묵직한 선율 또한 통기타만의 독보적인 매력이다.


이미 기타를 한 번 놓았던 나로서는 참 염치없지만, 다짐했다. 다시는 이걸 내려놓지 않겠다고. 그렇게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 끝에 기타 줄 특유의 쇠 냄새가 벨 때까지 매일매일 빠져들고 있었다. 기타를 처음 샀던 그때처럼.


통기타와의 화해를 이루고 연습 욕구가 예전처럼 마구마구 치솟는 만큼 마음속에 공허한 무언가가 있다. 악기라는 건 본디 방구석에서 혼자 연습하는 도구가 아닌데..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건데.. 정말 염치에 염치에 염치없지만 나는 밴드와 공연이 다시 하고 싶어졌다.


그 내적 갈등을 겪던 그때, 밴드 동아리를 같이 했던 친구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얘는 옆방에 사는 친구인데, 다다음달인 11월이면 정기공연도 있는데 그 내부 분열 이후 동아리가 흐지부지되어 걱정이라고 했다. 그 와중에 내 방 앞을 지나가다 우연히 통기타 소리가 오랜만에 들리길래 혹시 마음이 바뀌었나 해서 연락해 봤다고 한다.


.. 복도 끝 휴게실에서 얘기나 할까 싶었다.



그렇게 아닌 밤중 들른 남학생 기숙사 11층 휴게실. 음료수 자판기만이 밝게 빛나고 다른 모든 것은 어두운 그런 시간이었다. 그 친구는 나와 함께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었는데, 솔직히 동아리를 해체할 거 아니면 얼른 정기공연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지금 다들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얘는 어떤 곡을 맡겨도 조용하고 착실하게 준비해서 무대에 서는 걸 참 좋아했었지.. 얘 입장에서는 타의로 자신의 밴드 활동이 중단된 셈이고, 그렇다고 티를 내는 성격도 아니라 참 답답했을 것이다. 나도 이 일말의 불화에 책임이 없지는 않은 지라 미안했다.


그 억울한 얼굴 앞에서 다시 봄에 있었던 그 논쟁의 원인과 동아리 파행 위기의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었다. 메탈과 하드록을 고집하는 동아리에 불만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에 일단 나도 예전보다 소통만 잘된다면야 밴드를 다시 하고 싶다고 질러버렸다.


친구는 놀란 반응으로 그렇냐면서, 방문 앞에 오며 가며 들어보니 잔잔한 어쿠스틱 곡만 치길래 내가 밴드 아예 접은 줄 알았다며 그냥 신세 한탄이나 하다 자러 가려고 했는데 잠시 기다려 보란다. 고민을 좀 하더니 밴드 했던 다른 애들도 휴게실로 좀 모아볼까 라며 대화의 장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좀 어색할 거 같았는데, 그 느낌 뭔지 알 것이다. 오늘 아니면 진짜 몇 년을 계속 척 지고 살 것 같은 느낌. 나는 조용히 애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게 용기 내서 우리를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이 소심한 친구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니까.


꼭 3달 만에 밴드 동아리 단톡방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 안 자고 있으면 휴게실로 와서 얘기나 좀 한 번 하자고. 소리 없이 줄어드는 그 카톡 옆 작은 숫자. 곧이어 방문 열리는 소리가 두세 군데 열리더니 슬리퍼 질질 끄는 소리가 이 휴게실에 점점 가까워졌다.


드럼, 베이스, 보컬 친구들 3명이 모두 와줬고 우리 기타 둘까지 오랜만에 여기 한 자리에. 통학하는 친구들 빼면 얼추 다 모인 셈이었다. 다들 이 시간에 뭐냐며 멋쩍게 웃으며 드르륵드르륵 의자를 끌고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그런 갈등이 있었어도 어쨌든 같은 학과 동기들이라 전공강의 때 얼굴은 다 보던 사이니, 생각보다 어색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다만 '밴드'라는 주제를 놓고 모인 게 오랜만이라 좀 데면데면했던 거지. 아마 다들 흩어졌던 그 마지막날 본인들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나도 그랬고. 머쓱..


감성 충만한 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보니 우리가 그때 왜 다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고작 그런 선곡 문제로? 너무 유치한데? 서로 좀 양보할 수는 없었나? 다들 우리 지금 왜 이러고 있냐며, 서로 한 발씩만 양보하면 충분히 밴드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스멀스멀 들었다.


하드록을 고집하던 친구들도 소프트록과 어쿠스틱 밴드 음악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고, 나를 비롯한 일부 하드록을 싫어했던 친구들도 그런 소수의견에 대한 배려만 따라준다면 어쨌든 이곳은 동아리이고 단체니까 큰 흐름을 함께하는 것 또한 멤버로서의 도리라고 결론지었다.


밴드 하던 놈들의 성질머리는 어디 안 가지. 밴드 하던 놈들은 밴드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동아리 활동 재개를 속전속결로 결정지었다. 스무 살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밴드를 다시 하고 싶으니, 상대의 요구사항은 뭐든 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다만 밴드란, 밴드이기 전에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필연적으로 모두가 똑같은 생각이기가 참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 소통하고, 이해하고, 양쪽 의견을 절충해 결론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봄,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대화를 중단했던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일련의 갈등은 이제 흑역사로 남아 언젠가 우리의 소주 안주가 될 것이다.


싸움이 날 것 같으면 감정에 앞서지 말고 일단 물러서고, 다시 한 발짝 다가가 대화를 한다면 합의에 이르지 못할 일이 얼마나 될까? 상처는 그렇게 아무는 법이다. 그렇게 우리는 '밴드(Band)'라는 말처럼 하나의 끈으로 다시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 공연 다시 해야지. 정기공연은 꽤 큰 곳에서 열리는 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통기타는 나를 소극장으로 데려다줬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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