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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10. 2024

27th. 배신당한 씁슬함이 느껴질 때..

뭐라고 불러야 될 지 모르겠을,  이윤택의 <춤꾼 이야기>를 읽습니다.

                          춤꾼 이야기


                                                             이윤택


슬픈 노래가 너를 천국에 데려다 주지는 않는다

슬픈 노래 흐를 때 슬픈 노래 지긋이 밟고 빙글

멋지게 스테이지 한가운데로

이 세상과 우리 사이 발이 있다

하나님은 발이 없지

막달레나 마리아도 내 발을 닦아 주었다

미스터 J 춤을 추세요

당신의 발 너무 날렵해 날아다니는 것 같애

나는 날지 않았다

스텝을 밟으며 욕심 없이 발자국 지우며

슬픈 노래 가득 찬 세상 손을 내밀었지

한 번 추실까요, 아가씨?




98년 7월, 나는 군에 있었다.

7월에 일병이 되어서 제일 좋았던 것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책은 부대에서 마련해놓은 공동 책장에서

다른 고참들이 전부 고르고 난 뒤에, 남은 책을 가져가는 것이었지만,

충분히 좋았고, 행복했다.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책들과의 만남들이 있었는데..

위의 시가 담겨 있던 책도 그러했다.


당시 부대 내에서 가장 욕을 얻어먹고 있는 사람으로

누가 보더라도 나를 뽑았을 만큼, 당시의 나는

그야말로 멘탈이 갈려나가는 생활을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다.

그때... 읽었던 이 시는 당시의 내게 울림을 주었다.

세상이라는 슬픈 노래 가득한 곳에서...

그 무대에서 그래도 춤을 추겠다는 그 표현들이

응원가처럼 느껴졌었다.

이윤택이라는 이름도 그렇게 멋진 이름으로 기억되었다.

시인이자 연출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같은 인간과는 달리

여러 개도 멋지게 해내는 천재같은 이들이 있다.


시간이 한 참 지나서

이윤택이라는 이름을 다시 접했다.

처음 그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

내가 좋아했던 시를 쓴 사람의 이름이어서 혼란스러웠고,

그 내막을 상세히 알고 난 후에 

깊은 배신감이 들었다.

이윤택은 자신의 시처럼 아름답게 살지 못했다.

연출자라는 갑의 위치에서 너무도 명백하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여성단원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

슬픈 노래 가득찬 세상에서

용기를 내어 춤을 추기를 권했던 사람이..

슬픈 노래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장본인이 된 것이다.


시인이 시를 쓰고 나면,

이제 시는 별개의 존재로 봐야된다는 말도 있지만...

내게는 시와 시인은 언제나 함께 묶여서 기억된다.

시처럼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시인은 아름답지 않는 자신 늘 조심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시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

이제 이 시를 나는 더이상 읊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씩 이 시의 내용이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의 끝 느낌은 배신당한 씁쓸함

세상살이에 대한 염세적인 자조이다.


오늘이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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