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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10. 2024

하나. 형식형태소를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나의 농구, 형식형태소 - 김건수

하나고 마지막해 고3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고3들에게 '문법단위를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수행평가를 실시했었다. 이것은 내가 교사로서 진행한 마지막 과제였다. 이 과제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아이들 졸업 선물로 배부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발견했다. 다시 읽으며,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한다.



               나의 농구, 형식 형태소

                             

                        20163 하나고 5기 김건수


요즘 NBA를 즐겨보고는 한다. 클리블랜드와 골든스테이트가 작년과 마찬가지로 파이널에서 다

시 만나 리벤지 매치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요즘의 내 낙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 중 하나인 르

브론 제임스가 팀원으로부터 앨리웁 패스를 받아 화려하게 슬램덩크를 찍을 때면 가슴에 희열이

불어온다. 그들의 경기를 보고 나면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져 점심마다 친구들과 농구를 즐긴다.

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들과 눈을 마주치면, 슛폼을 취한다. "농구?" "농구." 그러고 나서는 다

같이 체육관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공을 집어 들고 드리블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습관이 되어 있

다.


나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많이 했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께서 권유해서 농구를 했었지만, 초등

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부터는 농구를 좋아해서 많이 했었다. 중학교 때도 농구부로 활동하며 학

교를 대표하여 다른 중학교들과 경기도 했었고,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항상 친구들과 모여 농구를

했다. 하나고등학교에 와서도 가디아나로 활동하며 농구를 정말 많이 했고, 자사고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나는 농구를 그만큼 좋아했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아마도 나와 함께 농구했던 친구들 중에서 농구에 쏟은 시간은 내가 가장 많을 것이다. 엄청 어

릴 때부터 시작했기도 하거니와 매 점심시간, 저녁시간, 1인2기 등 상당히 많은 시간을 농구공과

함께 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말할 때 농구를 빼놓고 말한다면 아마 많은 구멍이 뚤려 있을 것

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농구를 많이 했는데도 나에게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항상 농구를 할 때

정말 눈에 띄는 친구들이 있는 반면, 나는 그렇지는 못했다. 드리블을 잘 하는 친구, 3점슛을 잘

쏘는 친구, 골밑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친구, 돌파력이 굉장한 친구 등 많은 친구들과 농

구를 했었다. 이에 반해 나는 특출난 점이 하나도 없다. 드리블도 그저 그런 수준, 슛도 봐줄만한

수준이고, 리바운드나 골밑지배력도 조금 낫다 뿐이지 가장 잘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

만 그렇게 못하는 수준도 아니라서, 항상 보조하는 수준에 그쳤던 것 같다. 드리블 잘하는 친구에

게 패스 받고, 슛을 잘 쏘는 친구에게 패스하고, 기회가 나면 슛도 쏘고 말이다. 그래서 농구를

하면 눈에 띄지는 않았다. 농구에 있어 나는 단지 보조하는 존재라는 것이 슬펐다. 나도 정말 잘

하고 싶다. 팀을 이끌고 싶다는 생각에 연습도 많이 했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계속 경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핵심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없으면

조금 비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이겠으나, 농구를 할

때 없으면 조금 허전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렇게 중요한 존재도 아니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농구 경기에서 나는 그런 존재였다.

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형태소'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일정한 의미를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로

어휘적 의미가 있는 형태소인 '실질 형태소'와 문법적 기능만을 가진 '형식 형태소'로 나누어진다.

실질 형태소는 그 자체가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형식 형태소 없이는 문장을 구성수 없다. 나는 형식 형태소를 보면서 나의 농구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농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형식 형태소이었다는 것을.



건수- 고등학교 시절 나와 거의 접점이 없었던 제자. 나와는 친하지 않았기에, 그래서 서로에 대한 풍부한 기억은 없지만, 늘 듬직한 모습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멋졌던, 하나고의 잘생긴 킹카. 서울대 경제학과를 합격한 이후의 소식은 모르지만,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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