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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11. 2024

둘. 이중모음을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이중모음이 단모음이 되기까지 -김대현

하나고 마지막해 고3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고3들에게 '문법단위를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수행평가를 실시했었다. 이것은 내가 교사로서 진행한 마지막 과제였다. 이 과제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아이들 졸업 선물로 배부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발견했다. 다시 읽으며,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한다.


          이중모음이 단모음이 되기까지


                                2016년 고3 하나고 5기 김대현


유약했었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말들로 나를 보호해왔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말들로 나를 포장해왔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나는 남들보다 특출한 것도 없었고 썩 남들이 좋아할 만한 구석도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에게 바춰질 내 모습을 신경을 썼다. 외모를 치장하는 데 비용을 쓰고, 화려한 말들로 나를 꾸며내고 상대를 맞춰주는데 시간을 썼다. 그러나 자승자박(自繩自縛)이란 말처럼, 내 말에 내가 묶이고 말았다. 오랫동안 치장하고 포장해온 나머지, 내 안의 '나'에게서 치장과 포장을 벗겨내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기뻐했다. 이제는 더 자연스럽게 남들에게 잘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잘된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들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 나는 철저히 감추면 남들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가 오히려 감추고 피하려 할수록 사람들은 내가 도망가고 있음을 더욱 더 잘 인식하고 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인식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내 유약함을 그걸 견디지 못했다. 사람들이 나를 가식적이고 표면적으로 대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수많은 상처를 받으며 더 유약해져갔다. 이러한 일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있었다. 중학교 2학년, 혼자라는 것이 무서워왔던 나는 사람들의 가식적인 태도를 견디지 못하고 내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거의 바깥 생활을 하지 않았다. 내 생활 패턴은 '집-학교-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난 너무 찌질했다. (사실, 지금도 가끔 내가 옹졸하다는 걸 느낀다.)


좀 특별한 계기로 바뀌었다면 멋있었겠지만, 사람의 삶이 항상 스펙타클한 일로 바뀌진 않더라. 그냥 방 안에서 시체처럼 누워서 있다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기진단을 시작했다. 사람들을 미워하고 무서워하기 전,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 때 깨달았다. 사람들을 위선적으로 대해왔던 건 나였다. 이런 내 태도가 문제였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던 나는 포장과 치장을 치워버리고 결심했다. 오랜 시간으로 너무나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어내려고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면 남들이 알아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사람들의 태도는 쉽게 바뀌진 않았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상처받진 않았다. 그냥 난 내 자신에 집중했다. 그러던 와중, 고등학교 입학 건으로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내 안의 포장과 치장을 벗겨내는 일에 집중했다. 고등학교에서 읽은 책들과 선생님과 친구들의 조언은 내 안의 '나'를 성장시켰고, 그 결과로 조금은 강해져서 근육이 붙고 키가 커버린 '나'에게 오래된 포장과 치장은 작아져서 나에게 맞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포장과 치장들이 알아서 뜯겨 나가고 있다.


이중모음의 본질은 단모음에 있다. '야'라고 소리를 내어도, 그 소리는 결국엔 '아'가 된다. '아'가 반모음 'ㅣ'의 치장으로 '야'로 존재하고 싶어도, '야'는 '아'가 될 수밖에 없다. 나도 언제까지나 치장과 포장으로 둘러쌓인 채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난 시간이 지난다고 '야'가 '아'가 될 수 없다. 내가 '야'에서 '아'가 되긴 위해선 시간 외의 것들이 필요하다. 때론 시간 외의 것들이 나에게 아픔을 주겠지만, 그것들을 마주하는 데 두려움은 없다. 왜냐하면 나에겐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야'가 결국 '아'가 되듯이, 이중모음은 단모음이라는 자신들의 본질로 회귀한다. 내자신도 그럴 것이다. 내 안의 '나'도 치장과 포장으로 뒤덮힌 과거의 '나'에서 온전한 '나'로 회귀할 것이다.



대현이 - 나와 유도부, 독서동아리로 고등학생 시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제자. 명랑해보이는 겉모습보다 훨씬 더 진중한 내면을 지녔던 친구. '이중모음'으로 에세이를 쓴 친구는 이 녀석이 유일했다. 유니크한 녀석. 이탈리아 박물관에서 일하겠다며, 외대 이탈리아과에 진학했다. 어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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