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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12. 2024

셋. 보어를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보어'와 자유 - 김선재

하나고 마지막해 고3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고3들에게 '문법단위를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수행평가를 실시했었다. 이것은 내가 교사로서 진행한 마지막 과제였다. 이 과제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아이들 졸업 선물로 배부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발견했다. 다시 읽으며,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한다.


                      '보어'와 자유


                                   2016 고3 하나고 5기 김선재


각 개인에게 형적으로 주어진 삶의 방향성이라 할 수 있는 '운명'이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자유'라는 가치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운명에 도전하는 대신 고통과 미련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운명에 순응하는 대신 고통과 미련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는 방향이다. 그리고 사회로의 진출을 약 반 년 정도 남긴 나는 현재 자유의 두 방향을 놓고 갑작스러운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곧 모범생이었다. 스스로도 학업적인 분야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이에 몰두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주변의 평가와 관점의 역할도 컸다. 평소 진지한 태도로 학업에 정을 보였던 나의 태도는 주변 선생님이나 가족, 친척 분들의 기대감과 칭찬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칭찬과 애정에 매력을 느낀 나는 더 큰 성취를 위해 더욱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고, 진지함으로 일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러한 성취들 속에서 나는 내적 갈등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현재의 성취들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없을까봐 하는 생각에 생기는 걱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원히 그 자리에만 있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의한 것이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디에서 누구와 만나든 '모범생'이라는 이미지는 나의 자유의사에 무관하게 하나의 거대한 운명처럼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소 살아오며 철저히 내재된 태도들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도피하고자 하나고등학교라는 새로우면서도 '모범생' 들로 가득한 공간에도 진출해 보았지만 상황은 결코 변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젠 모범생들 중에서도 모범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학과 진로를 고민하게 되는 상황에 놓였다.


학업적인 고민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위와 같은 고민들은 지나친 풍요에 대한 념, 엘리트의 자부심으로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소에 정말 친했지만 변해버린 친구로부터 '집에 가서 공부나 해라'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고, 수많은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변화'를 추구해 왔음에도 언제나 결과는 같았던 나에게 진정한 자유에 대한 고민은 생존과도 직결된 것이다. 그것은 삶의 의미를 결정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보어는 중간이 없는 문장성분이다. 보어는 서술어가 되는 용언인 '되다'와 '아니다' 앞에 조사 이/가가 결합되어 실현된다. 그저 '되다', 혹은 '아니다'의 명확한 결론만을 가질 뿐 예외는 가질 수 없다. 그것이 보어의 장점이자, 치명적인 비극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것들이 되었다. 수명중학교 전교 수석이 되었으며 대한민국 엘리트라 할 수 있는 하나고등학교 학생이 되었다. 경북일보 최연소 등단 소설작가이자 전국 우리역사바로알기대회 금상, 동상 수상자, 한국철학올림피아드 금상 수상자가 되었다. 각각의 성취는 나에게 엄청난 자부심과 성취감을 안겨 주었고, 내가 역사학자라는 진로를 결정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들이고, 그나마 내가 지금껏 나에게 주어진 운명 속에서도 불만을 가지지 않고 만족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럼에도 종종의 자아성찰은 나를 괴롭게 한다. 나의 인생은 그저 성취만을 바라보는 '되다'의 삶만이 되어야 할까. 성취들로 인해 나의 운명은 점점 더 확실한 것이 되어갔고, 그만큼 '아니다'의 대상들도 확실한 것이 되어갔다. 언제나 같은 삶, 기대, 반응, 결과, 공허함...... 이젠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다.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런데 그냥 지금까지의 운명에 순응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지, 운명에 대항해 더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나는 진심으로 답을 찾고 싶다.




선재 - 나와의 접점은 연애 상담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했었던 이 녀석은 하나고 내에서 연애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학생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되는 나라는 인간을 찾아왔고, 우리는 짝사랑의 아픔을 서로 달랬다. 그때 이 녀석이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알았었지만, 이후 이녀석은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를 글로써 풀어쓰기 시작한다. 이 녀석이 쓴 글은 정말 뛰어났다.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진학한 이 녀석. 나는 이 녀석이 아주 훌륭한 저술가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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