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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21. 2024

여덟. '어간'을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혼자 빛날 수 없는 자의 오만 - 손준희

하나고 마지막해 고3 친구들을 가르치면서, 고3들에게 '문법단위를 이용한 자기표현 에세이' 수행평가를 실시했었다. 이것은 내가 교사로서 진행한 마지막 과제였다. 이 과제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아이들 졸업 선물로 배부했었다. 그런데 책장을 정리하면서, 이 책을 발견했다. 다시 읽으며, 제자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그 중 몇 개를 소개한다.


            혼자 빛날 수 없는 자의 오만


                               2016년 고3 하나고 5기 손준희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셨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부모 님께서 바쁘신 주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저녁 늦게 혹은 주말에나 부모님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는 항상 나에게 독립성을 강조하셨다. 앞으로 커가면서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고, 언제까지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을 수는 없으니,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라는 것이었다. 아는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고,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가끔씩 아빠, 엄마가 많이 돌봐주지 못했는데도,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씀도 나 자주 하셨던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으며 살다보니,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내가 정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잘 자란 줄 알았다. 마치 독립언 같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온 후 돌이켜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까지 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희생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었기에 그 동안 내가 혼자서 잘 자라왔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여러 가지 착오로 가득했다. 우선 본질적으로 사실 나는 그 어떤 또래 아이들보다 많은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왔다. 부모님께서는 언제나 쉬는 날이면 일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나를 즐겁게 해주셨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었기에, 오히려 그 적은 시간동안 나를 위해 노력하신 것이다. 부모님이라고 쉬고 싶지 않으셨을까. 주중의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휴식을 헌납하신 부모님의 노력 덕분에 내가 밝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동안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나를 돌봐주셨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경험으로만 체득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을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쏟관심과 애정은 부모님의 그것보다 더 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어린아이가 성장하과정에서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하는 것은 아이의 행동발달에 있어서 매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아이의 자존감, 그리고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과연 말 그대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자랐다면 과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관심과 이 정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랬다면 나는 지금과 달리, 굉장히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갔을 것이고 지금처럼 행복한 삶을 영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내가 자라는 데에 있어서 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의도하지 않은 것이든 나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준 사람들은 샐 수도 없이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같이 자라며 친동생이 없는 나로 하여금 오빠, 형 노릇을 할 수 있게끔 해준 사촌동생들, 그리고 마치 친아들처럼 대해주신 고모와 고모부까지. 그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내가 혼자 자랐다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오만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하지만 조연 없이 빛나는 주인공이 있던가. 나는 마치 어간 같은 존재다. 어간이 실질적인 뜻을 갖지만 어미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인생을 꾸리가는 것

은 나지만 나 혼자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그 동안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오만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항상 내 주변에서 나를 돕는 이들에게 감사하고, 그들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가슴에 새기고 살 것이다.



준희 - 아주 강인한 녀석이다. 허세로서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학교 내에서 가장 센 친구 중 하나였다. 친구가 선배로부터 조롱당할 때.. 기꺼이 선배들 전체와 싸우며, 기꺼이 싸가지없는 후배라는 평가를 짊어졌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 녀석을 볼 때마다  "섹시하다"고 칭찬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연세대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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