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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May 24. 2024

아홉. '형태소'를 이용한 자기 표현 에세이

형태소가 되기 위해 - 이성찬

                      형태소가 되기 위해


                                2016년 고3 하나고 5기 이성찬


위기철 작가의 '아홉 살 인생'이라는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태어날까 말까를 내 스스로 궁리한 끝에 태어나지는 않았다. 어떤 부모, 어떤 환경을 갖고 태어날까의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 나는 이 세상에 그냥 던져진 한 존재이다. 70억이 넘는 전 세계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겨우 한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매우 작은 존재임은 틀림없다. 게다가 나는 유한하다. 언젠간 죽는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하지만 나는 절대 죽음으로 가는 길목까지의 인생의 여정을 외롭게, 허망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할 것이다. 빈손으로 왔다고 해서 아무 노력 없이,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것이 인생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돌이켜 보던 나는 아직 어리고, 한 것이라고는 약의 공부밖에 없지만, 나는 수학을 너무 좋아해왔다. 정말 좋아해서 수학과 오랜 시간 함께해 왔다. 시험이 끝나는 날에도 내 곁에는 전공 서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한 결과, 남들로부터 수학을 잘해서 부럽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사람들은 이면의 것을 잘 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기준에서 수학을 잘하는 것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나'가 되기까지 무엇을 잃어버렸 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누군가 나를 보며 수학을 잘한다는 말을 하면 나는 불편해한다. 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 있어서 나는 잃어버린 것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학교 3학년 때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1주일간 체험학습을 냈었다. 아픈 마음을 견뎌내며 그 1주일간 고교 수학 과정을 전부 끝냈다. 1주일 만에 고교 수학을 끝냈었다니 좋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뒤에는 나름의 아픔이 있었다. 또 수학 공부를 한다고 노는 것들을 많이 포기했다. 중학교 때는 정말 친구들과 자주 어울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된다. 연락이 되는 중학교 친구는 겨우 2명뿐이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중학교 시절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수학을 잘 한다는 것이 입시에 유리한지 몰라도, 장기적인 인생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일부분일 뿐이다. 인간관계, 사회적 소통 능력, 공감 능력과 같이 오히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는데, 나는 수학을 공부하면서 지나치게 나에게만 시간을 투자한 결과 중요한 것들을 많이 잃어버렸다. 잃은 것을 되찾는 작업이 쉬운 것도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나는 내 인생을 너무 외롭게 지내온 것 같다. 나와 나의 미래만을 위해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다. 그 결과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을 잃어버렸다.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수학만으로는 친구들이 고민하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어주는 것 이외에는 주변 사람들을 도울만한 방법이 마땅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컴퓨터'와 함께 또 다른 시작을 해보고 싶다.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으로 친구들에게 생긴 컴퓨터 관련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싶다. 더 나아가, 컴퓨터와 암호 등을 활용하여 곧 다가올 정보 사회에서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지켜주고 싶다. 사람들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


형태소는 곧 최소 의미 단위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성찬' 이라는 내 이름을 들었을 때, 연상되는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의미가 수학이든 컴퓨터이든 나는 상관없겠지만, 반드시 그 의미가 '나 혼자'이지는 않기를 원한다. 에머슨 시인은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을 진정한 성공이라고 했다. 나는 이런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이름을 '사람들과 함께'라는 의미가 담긴 형태소로 만들고 싶다. 더 이상은 나 혼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진정한 성공을 이뤄보고 싶다.




성찬이 - 명실상부 하나고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학생을 꼽으라하면 언급되는 친구이다. 수학을 제일 좋아하는 학생과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은 원래 접점이 거의 없어야 하지만, 성찬이는 감사하게도 나를 많이 따랐다. 당연히 서울대 수학과를 진학할 것이라 생각했던 성찬이가 컴퓨터공학과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그 결정에 의아했었다. 그러나 그 결정에 이러한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이과생의 자기 고백은 투박하다. 그러나 세상을 오로지 수학으로만 보던 이 녀석의 달라진 고백은 그래서 감격스럽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한 이 녀석은 아마도 창업할 것이다. 그 소식이 들리면, 나는 그간 모아 놓은 자산으로 최초 투자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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