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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08. 2024

# 2. 적당히 적당히 노력하는 내 자신이 생각날 때

이성복 시인의 <서해>를 읽습니다.

                            서해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에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게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 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 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 반도이다.

남해에도 가봤고, 동해에도 가봤다면,

이제 남은 곳은 서해 뿐이다.

십대 초반의 나였다면, 나는 하루 빨리 서해에 가겠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47세인 나는

서해에 가는 것을 머뭇고 있다. 

만약 서해에 갔는데, 당신이 없다면,

이 세상에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 없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은 너무도 괴롭다.

그래서 나는 서해를 애써 가지 않으면서,

당신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나는 한 때 글쓰기에

내 삶의 모든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렇다면 글쓰기에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승부를 보면 될 것인데,

겁쟁이인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글쓰기에 적당히 노력하고만 있다.

내가 모든 것을 바친 후에,

혹시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겁한 나는 적당히 핑계거리를 찾아서 적당히 노력하고만 있다.

모순적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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