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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TS Apr 09. 2024

# 3. 돈 버는 일에서 부끄러움을 견디기 힘들 때..

박목월 시인의 <층층계>를 읽습니다.

                    층층계

                                                     박목월


적산 가옥* 구석에 짤막한 층층계……

그 이 층에서

나는 밤이 깊도록 글을 쓴다.

써도 써도 가랑잎처럼 쌓이는

공허감.

이것은 내일이면

지폐가 된다.

어느 것은 어린것의 공납금.

어느 것은 가난한 시량대*.

어느 것은 늘 가벼운 나의 용전.

밤 한 시, 혹은

두 시. 용변을 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아래층은 단칸방.

온 가족은 잠이 깊다.

서글픈 것의

저 무심한 평안함.

아아 나는 다시

층층계를 밟고

이 층으로 올라간다.

(사닥다리를 밟고 원고지 위에서

곡예사들은 지쳐 내려오는데……)


나는 날마다

생활의 막다른 골목 끝에 놓인

이 짤막한 층층계를 올라와서

샛까만 유리창에

수척한 얼굴을 만난다.

그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아버지>라는 것이다.


✽나의 어린것들은

왜놈들이 남기고 간 다다미방에서

날무처럼 포름쪽쪽 얼어 있구나.​


*적산 가옥(敵産家屋): 적국이 물러가면서 남겨 놓은 가

*시량대(柴糧代): 땔감과 식량을 마련할 비용.




세상일이 다 그렇듯,

사교육 시장냉험하게 부익부 빈익빈이다.

옆반 선생님 수업에선

교실이 학생들로 꽉 차다 못해

대기를 타고 기다리는데

나의 어느 교실엔 겨우

수강생 1명의 안쓰러운 눈빛만이 공간을 채운다.


젊은 시절의 나는 폼 안나는 일은 죽어도 안했다.

이럴 땐 쿨하게 폐강을 하고, 여행을 갔겠지.

이제 아버지란 이름으로 불리는 나는

모든 시선을 견디며 꿋꿋하게 수업을 할 뿐이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무심하게 평안한 그 생명을 위해서라면

나는 얼마든지 더 폼이 안나도 괜찮다서..

오늘의 부끄러움을 간신히 견뎌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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