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TS May 26. 2024

32th 여정. 남겨진 존재에 대해 읽고 있습니다

떠난 자나 남은 자나 모두에게 삶은 애닮다

서른 둘. 레위기 16장 1절~22절


분량이 길어서 몇몇 구절을 중심으로 발췌한다.


8절~10절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을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찌며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찌니라.
21절~22절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찌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




레위기는 여러 제사법에 대한 서술이 많다. 복잡한 제사법들이 반복되는 양상에 매번 읽을 때마다 어떠한 한계에 부딪친다. 이러한 제사법들이 오늘을 사는 나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도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러다가 이 구절을 접하게 되었다. 속죄제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다른 제사들과 비슷하면서도,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추가로 있었다.


기본적으로 제물을 바치고, 이를 죽여서 불태우는 것은 다른 제사들과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런데 속죄제에서는 두 마리의 염소를 택하여, 제비를 뽑는 과정이 있다. 제비를 뽑아서 한마리의 염소는 제물로 바치고, 다른 한마리의 염소는 아사셀(놓음)이라 하여, 풀어주는 것이다. 왜... 이 장면에 눈이 갔을까.


사람들의 죄를 대신 사한다는 의미를 제외하고, 염소의 입장에서 봤을 때, 생과 사가 제비로 결정이 되는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 같이 있던 두 존재 중,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는다. 처음에는 그렇게 죽은 존재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같이 있던 염소는 살았는데, 너는 죽었구나. 안쓰럽구나. 이러한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다 놓임을 당한 염소를 보자, 운이 좋았군. 친구가 죽었는데, 혼자 살아있으니까 좋으냐. 등등 생존하게 된 이를 찌르는 생각들을 하였다.


그런데 다음 구절을 읽게 되었다.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염소를 광야에 놓을찌니라" 제비 뽑아 살아있게 된 염소는 그냥 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모든 불의를 대신 지고 무인지경에서 놓임을 당한 것이었다. 살아있으되... 전과는 달라진 삶. 살아있기는 하나, 모든 불의를 대신 지고, 살아가야 되는 삶... 생과 사. 제비 뽑음.


나는 생과 사의 제비 뽑음에서 아직까지는 계속 '삶'이였던 거 같다. 나는 묘소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에 있든, 외국에 있든, 묘소를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근처에 묘소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들린다. 그리고 그 묘소에 묘비명이 있으면, 그것을 읽는다. 그러면서 그곳에 묻혀있는 이들과 나의 차이가 무엇일지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너무도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들보다 내가 더 살아 있어야 했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의 하나고 제자 준석이가 세상을 떠난지 이제 10년이 조금 더 지났다. 고3 졸업식을 앞두고, 갑자기 알게 된 병으로 2달 만에 세상을 떠난 녀석. 그녀석의 평생은 20년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그녀석의 평생보다 7년이나 더 살아있다. 살아있음에 미안해질 때가 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제 놓여짐을 당한 염소에게도 연민을 가져볼까 한다. 놓여진 염소와 같은 존재들.. 생과 삶의 갈림길에서 삶의 제비를 뽑은 존재들... 그들은 자신만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은 아무도 없는 무인지경에 온전히 놓여져서 각자의 부채를 짊어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생과 사... 떠난 자나 남은 자나 모두에게 삶은 애닮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