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었는데 해가 하늘에 동동 떠 있다. 일정 시간만 보이지 않는 여느 북반구에서 보는 백야와는 다르다. 이곳의 백야는 완벽했다. 시간으로 하루를 엮어야 한다. 해가 지지 않는 밤이 신기해 잠자는 것이 아까웠다. 밤이란 단어가 사라진 나날이다. 바닷가 숙소 테라스에서 마시는 찻잔에 넘실대는 태양을 보며, 해 없는 낮은 어떤 모습일까? 겨울 북극은 밤으로 이어지는데 보고 싶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롱이어비엔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백야보다 북극곰이나 빙하가 우선이었다. 롱이어 비엔에서 출발하여 북위 82도까지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크루즈 상품이 여름에만 있다. 사람보다 북극곰이 더 많은 인구 2천 명 정도의 극지 마을이다. 북극 다산 과학기지 갈 때도 여기에서 배 타고 간다. 여름에 마을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기후 변화로 야금야금 줄어드는 빙하와 북극곰을 본 후, 지지 않고 하늘에서 왔다 갔다 어슬렁거리는 태양을 보며 겨울에 다시 오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5개월 후, 1월에 다시 그 마을에 갔다.
극야(polar night)는 백야와 상반된다. 북유럽의 베네치아라는 트롬쇠에서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설렜다. 마치 비행기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여름과 비슷한 낮 시간대에 착륙했는데, 그때 봤던 공항 모습은 보이지 않고 불빛만 눈 부시다. 공항 밖은 눈이 정강이까지 쌓였고 매서운 바람이 먼저 안긴다.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내 식당에 갔다. 2층 창가에 앉았다. 유리창에 시계를 보며 밖을 응시하는 한 여자가 어른거린다. 열 시쯤인데 가로등 불빛이 그곳이 길임을 알려준다. 한두 명이 바쁘게 어딘가로 걸어간다. 저들은 어디로 갈까? 외투에 붙어있는 야광 표시가 눈에 확 띈다. 4일 후에 비행기가 뜨기 때문에 그동안 뭐하며 지낼까 거창하게 생각하다 지워버렸다. 시간의 흐름에 잠시 나를 맡겨도 되는데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여행지에서도 불쑥불쑥 올라온다. 배고프면 밥 먹고, 시내 어슬렁거리고, 보고 싶은 오로라를 기다리기로 했다. 오롯이 24시간 어둠을 온몸으로 느껴보자.
여름에 관광객으로 붐비던 중심가도 사람이 드물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카페 창가에서 코가 닿을 듯 마주 앉아 웃는 연인의 모습이 매서운 추위 속에 서 있는 나를 녹인다. 여름의 기억을 떠올리며 학교 근처로 갔다. 어둡지만 낮이라 생각하니 혼자라도 무섭지 않다. 아동들이 눈 쌓인 조그만 운동장에서 교사의 지도로 운동을 한다. 커다란 눈 더미 사이를 뛰고 오르고 미끄러지는 자유로운 몸놀림이다. 눈사람같이 옷을 입고 핫팩이 등을 데워줘도 떨리는, 이 탱탱한 추위를 그들은 즐기나 보다. 아이들의 환한 얼굴이 불빛에 더욱 빛난다. 박물관도 총기 상점도 슈퍼마켓도 식당도 기념품 가게도 어둠 속에서 소멸한 것이 아니라 불빛에 의지해 살아 움직인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다정스러운지 소곤대는 친구 같다.
아침마다 유일한 말 상대인 식당 종업원한테 오로라가 왜 나오지 않냐고 투정도 부렸다. 구름 때문이란다. 이곳에서는 눈만큼 흔한 오로라인데 못 보고 떠날까 봐 조바심이 났다. 그런데 마지막 날 밤, 호텔 밖에서 기다리다 포기하고 들어가려는데 기적 같이 나타났다. 아, 오로라를 보는 순간 가슴 터지는 줄 알았다. 무채색 마을에 왕관같이 화려한 모습으로 나타나 온 하늘을 무대로 자유롭게 춤을 춘다. 비현실적이었다. 저절로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나왔다.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으고 살아있음부터 매서운 추위까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나만의 의식을 치렀다. 왜 그랬는지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감사했다.
단순할 것 같던 여정은 설상차 투어까지 하며 어둠 속에서도 낮같이 바쁘게 꿈틀댔다. 떠날 때는 검은 혹성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다. 2월에는 온통 파란색이란다. 다시 가고 싶다. 이곳에서는 3개월 동안 태양을 보지 못하니 그 소중함이 얼마나 클까? 볼 수도 볼 것도 없는 그곳에 뭐하러 가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용기를 낸 자신을 만나고 어둠이 아무렇지도 않은 그들의 여유로움도 봤다. 극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감동을 준다. 세상에는 각자 다른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