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Begin Again
한국어학과는 또 다른 시작
“지금부터 학과장님의 학과 소개가 있겠습니다.”
생 단발머리 학과장님이 너무 젊으셔서 깜짝 놀랐다. 내가 너무 늙은 건가? 사십여 년 만에 앉아보는 대학 강의실이라 그런가? 주위를 돌아보니 연배가 비슷한 분들도 꽤 있다. 내심 안심했다. 사이버대학이 어떤 곳이고 어떻게 공부하는지 설명을 듣는데 컴퓨터 기계치한테는 모든 게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입학식을 끝냈다.
태어나서 60년 만에 맞는 해, 나이로 61세다. 예부터 환갑을 맞는 사람에게 자손들은 최상의 옷을 입고 음식을 마련하며 술을 따르고 절을 했다. 부모님 환갑 때 우리 형제들도 그렇게 했다. 또한 당사자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색동옷 입고 절을 한단다. 수명이 길어진 요즘에야 환갑이 뭐 대수냐 하지만 나름 축하는 한다. 나의 환갑 기념은 ‘60년 살았으니 60 떼고 한 살부터 새롭게 살아보자.’라는 좀 우습지만 나름의 결정으로 35년 직장 생활을 마감했다. 이년 정도 정년이 남았으나 환갑부터 새로 시작,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세종사이버대 한국어학과 3학년 편입이다. 영어 교사하면서 영어 원어민 교사도 부러웠고, 해외여행하면서 한국어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 가르쳐주고 싶었고,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게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입학식 끝나고 학과에서 축하 의미로 저녁을 대접했다. ‘요즈음은 학교에서 저녁도 사나?’ 신선했다. 식당가는 골목길에 얹혀있는 바람, 아직 겨울 입김이 남아 있지만 시원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어색해서 먹는 거에 집중하고 있는데 확 띄는 미모의 여인이 “선생님, 저 아시겠어요?” 한다. 깜짝 놀라 보니 제자다.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은 기억 못 했다. 금세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야기는 순서 없이 이어졌다. 제자와 같이 공부도 하고, 그 후 학우로서 졸업여행도 같이 갔다. 입학식 날은 모든 게 ‘첫 경험’ 그 자체였다.
“공부가 건강에 제일 안 좋아. 그냥 놀아.” 친구 말이다.
“그 나이에 무슨 공부야. 힘들지도 않냐?”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하실 말씀이다. 공부가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은 실감했다. 특히 허리, 어깨, 눈. 노안으로 교안 보기가 힘들었다. 돋보기 쓰고 삼십 분 정도 책을 보면 머리가 아팠다. 모니터를 오래 보니 눈이 더 침침해졌다. 1시간 정도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어디 그뿐인가. 목, 어깨는 어떻고? 계속 문어발같이 자세를 바꾸고 비틀고 뒤틀어 줘야 했다. 두세 시간 집중해서 공부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옛말 틀리지 않는다고 끄덕이며 시험공부도 했다. 처음 시험은 현직에 있을 때 했던 문제 출제보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덜했다. 시험 문제 출제는 스트레스 강도가 높다. 오류가 없기를 바라며 무사히 끝날 때까지 긴장해야 한다. 사이버대는 오픈 북 시험이니 출제하시는 교수님 고충이 얼마나 크겠냐며 보이지 않는 위로도 보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고 학생은 학생인지라 시험은 가장 피하고 싶은, 한 학기에 두 번 오는 불청객이다. 집중력 떨어지고 특히 기억력 감소는 거부할 수 없는 적이다. 시험문제 잘 못 읽는 실수를 매 시험 겪으며 8번 시험이 끝나니 졸업. 그래도 교사에서 학생 신분으로 바뀐 2년의 생활은 즐거웠다. 40여 년 만에 다시 가본 엠티, 학교 축제, 해외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은 20대 대학 시절보다 즐거웠다. 다행히 코로나-19전인 18년, 19년이었으니 가능했다. 책임이 없다는 게, 학생이라는 게 줄곧 가벼웠다. 공부도 과제도 주어진 대로 하면 됐다. 하라고 재촉만 했던 교사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학생 생활은 20대 학생 때 느끼지 못한 여유로움이었다. 물론 그때만큼 절박하지 않아서지만, 이게 자유로움 아닐까. 사이버대는 다양한 연령층과 직업을 가진 사람이 공부하기에 새롭다. 십 년이나 연배인 학우를 보면 존경스러웠고, 직장인이며 엄마 아내 며느리 학생 등 일인다역 하는 학우를 보면 겸손해지기도 했다.
공부하면서 시선을 확장하여 이주노동자와 캄보디아 현지인에게 한국어 교육 자원봉사를 하는 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부하는 그들의 열정을 보면 내가 더 배우는 게 많다. 꼬리에 꼬리를 물 듯 이어지는 ‘한국어’다. 방탄소년단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니 덩달아 바빠진다.
환갑에 begin again, 4년이 획 지났고 지금도 신분은 학생이다. 한국어학과 졸업 후 평생 학습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다른 과에 입학했고 브런치 작가라는 옷을 입었다. 그 옷에 맞게 내 몸을 키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다만 인생이 계획대로 꼭 되지는 않지만, 순간마다 선택은 할 수가 있고, 선택에 대한 노력 또한 본인 선택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