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작가님 강의를 듣고
“앞으로 어떡할 건데?”
“자퇴할게요.”
두 달 넘게 결석한 그가 학교에 온 날이었고, 옆에 쪼그려 앉아 눈을 번쩍 뜨며 한 마지막 말이다. 몇 시간째 탁구공처럼 튀는 대화의 끝이다. 그는 다음날부터 며칠 더 결석한 후 부모님 도장이 유난히 벌겋게 보이는 자퇴서를 제출했다. 15년쯤 지났다. 퇴직한 지금도 이 학생이 멀미처럼 올라온다. 검정고시는 봤을까? 지금 뭐 하고 있을까? 무엇을 하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소리 없이 소리친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넘어져 일어날 방법을 모르고 있었을 게다. 무릎처럼 펴고 일어날 힘이 되어 주길 기다렸을 거다. 스스로 이리저리 뒤집으며 자신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말 한마디가 필요한 학생이었다.
“여행만 다니지 말고 글로도 써봐.”
“글은 무슨… 서점 가봐. 그 많은 여행책에 나까지 보태 줄 필요 있나? 발끝에 차이는 게 여행기야. 종이 낭비!” 유독 '글쓰기'에 관해선 머뭇거림 없이 싹둑 잘라냈다. 주위에서 여행 좋아하니 써 보라고 했지만, 글을 쓴다는 거, 영역 밖이었다. 쓰지 못하니까, 쓰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었다. 쓰는 시간에 읽고, 쓰는 시간에 산책하는 게 좋았다. 독자로 충분하니까.
시폰 원피스 입고 초록이 한창인 길을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고수리 작가님 강의를 신청했다. 수필 강의다. 써 보겠다는 의지보다 처음 개설됐고 독자로서 수필이 뭔지 더 알고 읽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동안의 글쓰기 경험과 썼던 글을 예시로 바느질하듯, 레고 집 완성하듯 수필을 풀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이 적은 그녀였지만, 삶에 대한 사유,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 손위 같았다. 수필은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쉽게 쓸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쓰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강의에서 ‘브런치 작가 되기’를 자세히 배웠다. 브런치 작가 되려면 절차가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글쓰기 플랫 홈 브런치가 무엇인지 그나마 지도가 그려졌다. 하지만 글쓰기에 관심 없으니 필요 없는 지도였다. 과제 제출을 마지막으로 한 학기 강의가 끝났다. 과제는 수필 쓰기인데 배운 내용을 기초로 자신 없지만, 성의껏 썼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시면 안 될까요. 계속 써 주세요”
과제 피드백에 쓰인 그녀의 마지막 두 문장이다. ‘응? 내가?’ 관심 없던 브런치 작가에 미세한 진동이 일며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관심 없던 브런치’가 ‘관심 있는 브런치’로, 마침내 ’먹어보자 ‘까지, 되었고, 슬쩍슬쩍 넘겼던 교안과 강의를 되돌려 보며 준비했다. 기왕이면 자신에게 22년 새해 선물로 브런치를 주고 싶었다. 작가 신청 절차상 필요한 글은 과제였던 2편을 제출했다. 그중 한 편은 아이러니하게도 쓰지 않겠다던 여행기다. 1월 3일 새벽 마지막 신청 버튼을 눌렀고 다음 날 오후,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그런데 기쁨도 순간, 마음이 돌 매단 그물같이 가라앉으며 갑작스러운 ’작가‘ 호칭을 환대할 수 없었다. ’ 작가? 이건 아니지… 자격이 안 되는데. ‘ 이러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이 호칭, 아직은 맞지 않는 운동화처럼 불편하지만, 예쁘진 않아도 매일 신고 다니는 운동화처럼 편하게, 자유로운 나의 '글쓰기'가 되겠지.
그녀의 두 문장은 외면했던 것을 돌아보게 했다. 뒤집어보게 했다. 글 곳간이 있으면 채워야 하니 쓸 거고, 기억이 희미해지니 추억으로 머물렀던 여행을, 일상을 글로 저장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앞걸음만 하다 뒷걸음질 치니 쓰지 않던 근육을 사용하는 거처럼 지금, 뒤집은 몸은 버둥대지만 새로운 나를 본다. 이제 브런치는 어쩌다 흘낏 보며 지나치는 행인이 아닌 반가운 친구다. 나이 들며 갈 수 있는 놀이터다. 자퇴한 그에게 자신을 뒤집어 볼 수 있는, 그래서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을 만나게 해야 했다. 그녀의 두 문장을 만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