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의 『대답이고 부탁인 말』(문학동네, 2021)을 읽고
당신의 대답이고 부탁인 말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되물을 수밖에 없단 말인가? 내 생각과 같지 않을 때? 이해할 수 없을 때? 아니다. 그는 이렇게 되묻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에 새벽 다섯 시까지 깨어 있어 봤지? 피곤함에 절여져 잠의 나락으로 떨어져 본 적 있지?, 피곤하지도 외롭지도 않아 그 시간에 깨 가로등 꺼진 아직 어둠이 밀려나지 않은 산책길을 걷는 암 환자도 본 적 있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이 모든 것으로 뒤범벅된 사람, '가로등 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가로등 끄는 사람」) 너 가로등 끄는 사람 되어 봤어? 하고 그는 한 걸음 떨어져 이쪽을 보며 말한다.
너도나도 집을 산다. 집이 없는 나는 폭력자다. 나의 폭력에 세간들은 환자처럼 너부러지고 집이 있어야 자식 노릇도 아비 노릇도 한다. “나무를 쓰러뜨린 것은 나였지./ 내가 생가지를 꺾었다”(「Bird View 3」)라고 자기 탓을 한다. 멀찍이 위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날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집도 없는데 건물주가 되고 싶은 꿈이 잘못이냐고, 오죽하면 ‘영끌’이라도 할 수 있는 요즘 애들이 되어 존재 이유가 되고 싶다고 할까? 집 없어 봤나요? 하고 되묻는다.(「플랜」B) 연봉으로 사람을 평가절상, 절하하는 사회에서 천국만큼은, 극빈하지만 사람을 먼저 생각해 주는 가난한 사람이 가야 하지 않겠냐고 되묻는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가난하지만, 흐뭇하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워」)
그는 내가 상대를, 상대가 나를 서로 쳐다보며 관통하게 한다. 일 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절묘하게 소통한다. ‘’ 박근혜 석방, 문재인 out’‘(「외로운 사람은 외롭게 하는 사람이다」),’‘펜 없는 펜 뚜껑처럼, 펜 뚜껑 없는 펜처럼’‘(「펜 뚜껑」), 날 수 없는 나는 날 수 있는 새가 되기도 하며(「bird view 3」), “속류 쾌락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은유로서의 질병」), ’‘예의 없는 사람에게 예의 바름이란 또 따른 무례라서’‘(「불운의 달인」)같이, 머리는 꿈에 두고 발은 한데 두고 있는 현실의 애처로움을 위에서와 같이 한 번쯤은 거꾸로 생각하게 하는 발랄함이 있다. 그 발랄함은 여유를 줄 뿐 아니라 재미까지 있다.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어쩌면 방금 겪었던 사소한 실패를 그는 ’‘가령, 죽을힘으로 뛰었으나 눈앞에서 전철을 놓쳤고/ 약속시간은 15분 후인데 배차 간격은 30분일 때,/ 걷어낸다는 게 자책골을 놓은 수비수처럼/ 열차를 놓치기 위해 전력 질주한 다리는 아직 후들거리는데“(「사물의 깊이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라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실패를 선명한 이미지로 말한다. ’ 열차를 놓치기 위해 전력 질주한 다리‘처럼 실패를 위해 살지 않지만, 결국 실패를 위해 최선을 다 한 꼴인 경우도 있다. 그게 삶이다.
그의 시에는 외로움, 빈곤, 불운, 실패, 질병 등 어쩌면 갈라진 바닥이 보이는 시인데 구차하거나 천박하거나 침울하지 않다. 가난을 노래하나 부자답고, 외롭다고 하나 외롭지 않은, 게다가 따뜻하고 읽는 재미까지 있다.
나에게 ‘대답이고 부탁인 말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시집을 읽은 후 착잡하지만 후련한 마음으로 끌어낸 말은 ‘잘 지내’.
문학동네 시인선 160번째는 이현승 시인의 『대답이고 부탁인 말』이다. 이현승 시인은 1973년생으로 1996년 신춘문예, 2002 <문예중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이스크림과 늑대』, 『친애하는 사물들』, 『생활이라는 생각』, 그리고 올해(2021)『대답이고 부탁인 말』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