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은 남편의 폭력 때문에 사라지고 싶어 한다. 자신을 둘러싼 굴레와 맞서 싸울 수 없는 자는 소멸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볼 뿐 스스로 증발도 못한다. 그래서 찾은 곳이 ‘옆방’이다. 자발적 증발을 원하는 사람을 돕는 실종 대행업자인 주인공은 과연 의뢰인을 증발시킬 수 있을까?
『놀이터는 24시』(자이언트북스, 2021)는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7명의 작가가 글을 썼다. 엔씨소프트 회사가 프로젝트로 출간한 책이다. 엔씨소프트는 게임회사 아닌가. 의아했다. 소설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지만, 게임이 ‘하는 즐거움’이면 소설은 ‘읽는 즐거움’이니 ‘즐거움’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게임회사의 산뜻한 발상이 즐겁다. 어찌 보면 즐거움과는 상반되는 일이 많은 삶에서 작가는 어떤 즐거움을 쓰고 있을까?
이 책에 수록된 편혜영의 「우리가 가는 곳은」노년에 가까운 나이에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주인공과 여자 오영지가 여행하 듯 사라지는 이야기다. 한 여자가 주인공 사무실에 찾아온다. ‘여기가 거기인가요. 옆방이요.’ 암호 고객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옆방’. 시작 장면에서 살인 사건인가? 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내용의 가닥을 잡을 수 없다가 한 여의 등장으로 주인공이 자발적 실종을 돕는 조력자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이 여자의 실종을 도와주고자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서 살아 보려는 마음이 무엇인지 보여 주겠다는 듯, 여자는 자존심을 지켰고 더는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해 보기로 했다.”(109쪽) 의뢰인에게 실종할 때의 방법을 알려주고 둘은 시장에서 만나 실종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김밥 등 먹을 것을 준비하고 떠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옆에 목조 주택을 실은 5톤 트럭을 보고 따라가기로 한다. 어딘지 모를 마을에 들어선 트럭이 고추밭 지지대 때문에 노부부를 만나 도움을 받고, 비닐하우스 주인, 또 다른 노인이 등장하여 이동식 목조 주택은 무사히 안착한다.
소설은 들은 적이 있는 ‘옆방’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두 번째 들은 적이 있는 1달러 이야기, 세 번째는 들려준 호텔방 배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세개의 애매모호한 이야기의 시작은 다음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증발을 원하는 의뢰인이 원하는 곳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방이 안 되면 옆방이 있지 않은가. 1달러가 없어진 게 아니라 보이지 않듯이, 1호실이 안되면 2호실로 호텔방을 옮기 듯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이 상징성이 좋다. 주인공 ‘나’도 일에서 떠나 옆방을 원한다. 살아가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다. 이 투명한 사실 앞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의 시선 밖에 있다는 생각에, 하던 일에서 사라지고자 하는 주인공 ‘나’.
모두 옛날얘기다. 이제는 누구도 내가 하는 일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일을 맡기는 사람도 없고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다. 궁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슨 일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내가 나이 든 여자이기 때문에. -90쪽
증발이 이 여자에게는 놀이 같다. 시장에서 신나게 김밥, 고기완자, 꽈배기를 산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즐거움조차 없었던 오영지. 사라지기 위한 여정은 또한 존재하기 위한 여정이다. 시골에서 만난 노인들. 가족같이 주인공과 오영지를 대하고 도와준다. 사라지지 않은 노인의 역할이다.
내일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그게 어디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이제까지와는 다른 곳일 것이다. 동시에 조금도 다르지 않은 곳이겠지. 하지만 어디든 도착할 것이다. -120쪽
즐거움은 우리가 일상 사는 곳에서 예상하지 않은 일에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시골에서 노인들을 만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