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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Nov 20. 2023

새로운 세계로 끝없이 노크하는 시

─김상혁 시인의 시집을 읽고

예술은 이야기다. 장르마다 적절한 도구로 이야기한다. 말을 건넨다. 나하고는 상관없이 건네는 말을 듣고 보고 읽으며 동감하고 위로받고 감동하며 다시 자신에게 이야기한다.      


이야기 시이며 리듬 있고 쉽게 읽히지만, 절대 쉽지 않기에, 다시 느릿하게, 읽을수록 읽고 싶은 시가 있다. 김상혁 시인의 시가 그렇다. 시인은 2009년 등단했고 2013년에 첫 시집 출간, 올해(2023) 10년째로 네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10년 동안 4권의 시집이 나왔는데 그동안 생활인으로서 개인적 변화는 무엇이었을까. 독자는 모른다. 다만 시집 속 이야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시적 화자의 많은 이야기 중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살피는 것도 흥미 있겠다. 가장 좋아하는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2023)』를 읽으며 문득 그전 시집을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집에서 슬픔은 안 된다(2013)』, 『다만 이야기가 남았네(2016)』,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2019)』,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2023)』의 시집 제목만 보면 ‘슬픔’이란 어조가 먼저 떠오르며 10년이 지난 지금, 그 슬픔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고, 설령 큰일이 일어나도 견뎌 낼 수 있으므로 큰일이 아니라고 들린다.     


첫 번째 시집에서 시적 화자 ‘나’는, “내가 죽도록 훔쳐보고 싶은 건 바로 나예요 자기 표정은 자신에게 가장 은밀해요 원치 않는 시점부 난 순차적으로 홀홀히 눌어붙어 있네요”(「정체」)라 말하며 ‘태어남’ 자체를 부정하는 동시에 그런 ‘나’를 용의주도하게 끝까지 따라가며 ”여자에게 뺨을 맞았을 때도 내가 궁금해 한 건 그 순간을 겪는 나의 표정이었어요 은밀하고 신비해요 “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대체로 시집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벽에 대고 상실, 이별의 비애를 소리 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 시집이 아버지, 어머니, 태어남, 사춘기에 관한 이야기를 불안하지만, 극복하려는 화자의 몸부림이었다면 두 번째 시집에서는 확 변한 화자를 만난다. 화자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나는 이야기 속에서 사랑한다. 좋았다고 말하거나 좋은 것에 관해 말하거나.” (「나는 이야기 속에서」)라는 이야기와 함께 “만일 기쁨을 말한다면 그건 사람의 기쁨이겠지, 기쁜 사람이 매일 찾아가 두 팔로 나무를 안아주었다.”(「기쁨의 왕」)라며 사람은 사람에게서 기쁨을 만나고, 사람에 의해 자라날 수 있도록 ‘기쁜 영혼’을 갖고 싶어 한다. ‘주인도 노예도 다 죽어 다만 이야기만 남았고, 이제는 행복한 남자의 이야기와 개를 소중히 키우는 여자의 이야기’(「인간의 유산」)만이 유산으로 남는다는 아이러니도 보여준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여 나타나지만 나보다 더 슬픈 사람을 보며 내 슬픔을 껴안는다.     


세 번째 시집에서는 안정적인 생활인으로서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섬세한 묘사로 이야기한다. “엄마가 필요한 때가 있고/ 아빠가 필요한 때가 있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대문 앞에서 인사하고 돌아섰는데/ 내 속에 너무 사랑이 없어서 놀라는 때가 있고”(「고치지 않는 마음이 있고」)는 우리가 자주 느끼는 마음의 변화다. 「유턴」에서는 ‘사고 났는데 아슬아슬하게 살아났다’고 말하려고 유턴하여 아내에게 돌아가지만, 그것이 신나거나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머쓱할 수 있는 감정을 끌어낸다. 화자는 “소설을 덮었더니 아내가 없었다. 나는 중요한 인물을 놓쳤구나”(「아내가 이걸 모르겠다 싶었다」), “나는 수박을 들고 무더운 길을 걷는다. 이 수박이 특별한 맛을 냈으면 좋겠다”(「이 수박을 들고 너를 찾아가고 싶다.」)고 따뜻하게 말하며 아이와 아내에게 정성을 다한다. 이제 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으며, 슬픔은 이미 화자의 것이 아니다.      


네 번째 시집 『우리 둘에게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지극히 다정하고 섬세한 이야기들이 꽃을 피운다. 삶과 주변에 대한 다양한 감정선이 빛을 내며 이야기를 직조한다. 화자에게는 ‘작은 집’에서 ‘아이를 만든 일이 잘한 일이며 행복한 일’이고 아이는 빛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면서 사람 싫은 적 누구나 있다. 화자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 싫음’을 위로해 주는 사람이 ‘다정한 사람’(「노크」)이다. 아내를 ‘다정한 사람’으로 말하는 화자의 아내 사랑은 ‘사랑’이란 표현보다 더 강렬하다. 이 시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며 ‘다정한 이’가 다정스럽게 내 손을 잡는 듯하다. ‘세상 사람’이 싫다고 말하는 아내의 더 큰 사랑도 보인다. 아름다운 부부다,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 최선을 다하는 모습과 가정의 소중함,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한 시집이다.     

 

김상혁 시인의 시는 1집부터 시가 이야기 형식이다. 시인만의 스타일로 독보적이다. 독자는 시속 이야기들 속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든다. 4권의 시집은 장편 소설같이 한 권이 끝날 때마다 다음 시가, 시집이 궁금해진다. 그것은 무엇일까. 시인의 일상 이야기가 깊어지며, 사람을 폭넓게 이해하고 복잡한 마음을, 현상을 이야기로 쉽게 풀어간다. 또한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가며 옆에서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다음 시집을 기대해 본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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