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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Jan 08. 2024

영원히 나의 것?

『영원히 빌리의 것』(한겨레출판, 2021) 중「영원히 빌리의 것」

―『영원히 빌리의 것』 (한겨레출판, 2021) 중 「영원히 빌리의 것」, 「우주비행사의 밤」(강태식)을 읽고     

                                                     

서유미 작가는 발문에서 “어른이 되면, 삶의 기반은 견고해지고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유로워질 거라고 낙관하던 때가 있었다”라고 했다. 나도 이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기에 이 문장이 유독 다가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할 때의 그 어른이 된 지금, 낙관적이지 않다. 그것은 소망이었고, 실제 삶은 더 위태로우며 바라보는 시선은 편협하고 고집은 깊어진다. 나잇값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으며 노력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라 불리는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떻게 인생을 견딜까.     


주인공 빌리 발렌타인은 나이 65세, 35년 동안 중고차 매장을 운영하는 홀아비다.「우주비행사의 밤」의 76세 캐럴은 가족이 있지만 헤어져 살고 현재는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는, 행동반경이 좁은 생활을 혼자 하고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혼자 생활을 꾸려야 하기에 시선이 갔다.     


강태식 작가는 소설의 인물과 공간, 시간 배경 설정할 때 가질 수 있는 스테레오타입을 부수고 기발함과 참신함을 보여준다. 공간을 확장시켜 멀찌감치 뚝 떨어트려 놓은 LA는 이질적 공간이다. 이질적 장소인 사막은 신선하고, 주제를 표현하는데 잘 맞아떨어진다. 젊음과 에너지가 충만한 도시 중심에서 밀려난, 외곽 지역 사막은 효율성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밀려나 인생의 끝을 살고 있는 인물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어디에 살든 기본적인 사람의 감정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막’이라는 공간은 인물의 정서를 잡아 주는 강력한 역할을 한다. 인생의 쓸쓸함과 덧없음이 감각적 이미지로 다가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도입부터 영화 ‘바그다드 카페’ 첫 장면이 떠오를 만큼 감각적이다. 글을 다 읽고 나면 모래바람 부는 중고 자동차 매장을 배경으로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바라보는 내 모습이 중첩된다.


28세기, 4.5광년이라는 상상이 안 되는 시간 배경은 환상적이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시간이지만, 이 시간적 환상성이 개연성을 떨어지게 하기보다 오히려 인생이란 긴 시간을 가늠하게 하는 장치다.     

반복적인 문장과 장면은 우리의 반복적 일상을 보여주는데, 이야기가 지루하거나 답답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니, 사막 같은 시원함은 무엇일까. 문장과 장면에 고요히 머물다 보면, 어느새 들어와 사무실에 쌓이는 모래같이 서사가 쌓인다. 호들갑스럽지 않은 문체와 절제된 표현 때문일까.     


인물의 캐릭터를 보면 빌리는 ‘자기가 해 오던 방식을 바꿀 생각이 없는 사람’(10쪽)이다. 모래를 쓸 때마다 새 빗자루로 장만하겠다고 생각만 하고 서둘러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미룬다. 뜸 들이고 변화를 주저하는, 지극히 ‘나이 듦’의 캐릭터다. 척은 빌리와 캐릭터상 대척점에 있다. 밖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많으며 빌리의 행동에 호의적이지 않다. 두 사람의 상반된 캐릭터는 재미를 준다. 무릎 관절이 나빠 안에서 생활하는 빌리나 튼튼한 관절로 밖으로 나도는 첵이나 모두 시시한 일을 하고 있다. 콜먼은 유약하며 아내를 사랑한다. 유일하게 사랑에 아파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떠난 공백을 납작못을 세면서 위로받는다.      


빌리에게 척 베리가 하는 말은 '냄새나는 쓸모없는 방귀'에 불과하지만, 빌리는 그 쓸데없는 말을 되새김한다. 사는 게 아이러니하다.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했던 것이(33쪽), 나이 들면서 아무 생각 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빌리 에 공감한다. 생각도 시간의 흐름에 기대어 유영하기에.

실링 팬의 베어링, 닳아 버린 빗자루, 아픈 무릎은 시간의 흐름을 묘사한다. 행성은 빌리에게 가짜 같았고, 루비의 주먹(30쪽)은 콜먼에게 진짜였다. 행성은 먼 환상이고 주먹은 가까이 있는 실재이기에 빌리의 상실보다 콜먼의 상실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작가는 인물의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묘사하는데 탁월하다. 그중 백미는 팀 추이로부터 행성이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 빌리는 “갑자기 무릎이 아팠고 실내등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셨고……어두운 곳에 혼자 앉아 조용히 쉬고 싶었다. (36쪽)”고 하며, 어두운 사무실에 앉아 운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감각적 표현이다.


빌리의 모래 쓸기 같은 일상의 반복이 요즈음 생활이다. 지나고 보니 사는 동안 마주했던 크고 작은 상실감도 시간이 흘러 모래알같이 작아져 빠져나가 추억 속에 머문다. 이제는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감사하다. 시시하고 별 볼 일 없는 일에 매달려 시간 보내다 인생 끝나겠지만, 오늘도 그 시시한 일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영원히 나의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우주비행사의 밤은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공간 배경이 사막이 아니라 도시다.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가 많이 나온다. 「영원히 빌리의 것」 보다 더 외국 소설 같다. 문체에서 느껴지는 감성뿐 아니라 인물들의 생활과 이들이 맺고 있는 관계 때문일까.


제목에서 ‘우주’나 ‘밤’은 선명하지 않은 어두움이다. 인생은 우주나 밤같이 알 수 없다. 제목만 보고 SF 소설인 줄 알았는데 주제를 은유적으로 나타낸 참신한 제목이다. 길게 상세히 묘사한 장면이 캐럴과 마크가 만나는 장면과 우주비행사들에게 집중됐다. 그만큼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게 그려진다. 인물 묘사도 상당히 감각적이다. 마크는 물 많이 넣고 끓인 옥수수 스프(87쪽)인 미각, 로직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92쪽)인 청각, 에드워드는 그림(93쪽) 같은 남자인 시각으로 오감을 이용하여 표현했다.


이 작품은 술술 읽히는 긴 문장이 많다. ‘~고’와 ‘~만’으로 연결하는 문장은 시소 타는 리듬감을 준다. 적절한 비유적 표현이 많은데 필사하고 싶다.      


강태식 작가만의 스타일이 있다. 작품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많다. 특히 두 소설 모두 특이한 점은 대화가 많지 않고 적절한 곳에 대체로 한 사람의 말이 나오고 그 말이 끝나면 상황이 종료되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한마디 말로 상황이 설명되고 서사가 이어지는 것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하며 고심해서 해야 하는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상당한 절제미를 보여주며 서사를 이끌어 간다. 또한 추상적 개념을 상황으로,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과 비유적 표현은 무릎을 치게 한다. 마지막 장면 처리 또한 빼놓고 싶지 않다. 두 소설 마지막 장면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다음 편에 이어서 읽고 싶다. 마치 드라마 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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