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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 Jan 15. 2024

 달리는 펭귄

-사우스 셔틀랜드 제도(남극해) 여행

사우스 셔틀랜드 제도는 남극 대륙 앞, 남극해에 섬들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세종기지가 있는 킹 조지아 섬도 이 지역에 있다. 왜 먼 그곳이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북극에 다녀온 후 남극이 궁금했다. 같은 극지방인데 무엇이 다를까? 북극에는 북극곰이 있다면 남극에는 펭귄이 있다. 도시여행이 피로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자연에 더 끌렸다. 나이 들면 자연이 좋아지기도 한다. 모 티브이에서 방영한 ‘남극의 눈물’도 동기가 됐다.

      

가는 길은 멀었다. 미국 달라스까지 14시간, 여기서 환승인데 짐을 찾아 다시 출국 수속을 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는 11시간 정도다. 하늘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했다.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는 옛말, 맞다. 새들은 땅에서 더 불편할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아침에 도착했다. 난 따로 출발했기에 공항에서 여행할 일행과 인솔자를 만났는데 20여 명 정도였다. 20여 년 전 처음 왔을 때는 이곳이 목적지였지만 이번에는 경유지다. 다음 날 우수아이아로 떠난다. 하루의 여유가 있다.  

    

체크 인하자마자 시티 투어로 시내 구경하며 보카 지구에 갔다.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역시 탱고의 발상지답다. 길가나 음식점에서 탱고 추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혼자 거닐며 추억 여행하는 것도 재미있다. 기억나는 건물을 마주칠 때면 반갑기도 했다. 이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서점, 엘 아테네오였다. 이곳은 원래 1919년 건축된 오페라 극장인데 그 후 영화관으로 사용하다가 2000년에 서점으로 개조했단다.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했을 때는 없었다.


무대는 카페로 사용하고 객석이었던 자리는 서가로 만들었다.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전통음식 엠파나다를 먹으며 마치 내가 오페라의 주인공인 된 양 객석을 바라봤다. 객석 대신 서가와 많은 사람이 한눈에 들어왔다. 무대에 선 본 적이 없기에 오페라 주인공인양 천천히 서가로 변한 객석을 바라봤다. 자꾸 오고 싶은 서점이다. 커피 가져온 여종업원이 한국 사람은 왜 피부가 좋으냐, 고 묻길래 화장 때문이라 했다. 그녀 피부도 좋았는데 흰 피부가 좋았나 보다. 한국인이 많이 방문하나 보다. 탱고 음악가 피아졸라 음반을 기념으로 사고, 이 나라의 유명한 작가 보르헤스 책을 찾아보았다.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에서 남극 여행 크루즈에 탔다. 본격적으로 남극 대륙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가장 파도가 심하다고 악명 높은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야 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기 전에는 이 드레이크 해협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했단다. 10시간마다 먹으라는 멀미약을 배 의료실 의사한테 받았다. 망망대해에 파도가 9미터 정도였다. 멀미약도 소용없다. 어지럽고 일어날 수가 없다. 하루 꼬박 굶었다. 다음날도 일어나기 힘들었다. 선실을 같이 쓴 모 방송 기자는 나보다 멀미가 덜했다. 다행히 그분은 식사했고 난 식당에도 가지 못했다.


 아무리 집 떠나면 고생이라지만, 돈 주고 이 고생을 한다니 후회막심할 정도로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거의 이틀을 고생하고 몸 상태가 좋아져 갑판에 나왔다. 아무것도 없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나뿐이다. 남극해의 바람이 5년 전 1월, 그날 오전으로 날 데려간다. 그때 그날, 이 남극 여행을 떠나려던 날 갑자기 아버지가 떠나셨다. 다행히 밤 비행기라 출발 전이었다. 5년이 지났고, 남극 시퍼런 바다에 아버지 얼굴이 목소리가 넘실거렸다. 출발 예정 며칠 전, 여행 가는데 용돈 보내 주겠다는 게 마지막 통화였다. 그때 아버지는 가실 것을 예감하신 걸까.   

       

남극해지만 햇살과 바람이 없어서인지 춥지 않았다. 크루즈에서 섬에 내려 조금 걸으니 아주 고약한 냄새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지독한 냄새와 펭귄밖에 없는 그 먼 곳에 뭐 하러 가, 볼 것도 없어.’라고 하던 지인 말이 문득 생각났다. 이 냄새 때문이었구나. 하지만 곧 익숙해졌다. 여행도 삶도 그리 쉽고 단순한 게 아니다. 펭귄은 사람 냄새가 고약하지 않았을까. 한 자루 가득 흩으려 논 까만 콩 같은 펭귄 무리가 보였다. 턱끈 펭귄 지역이다. 턱 밑에 검은 줄이 있는 턱끈 펭귄, 부리가 주황색인 젠투 펭귄, 눈가에 흰 줄이 있는 아델리펭귄. 펭귄의 종류는 18종 정도라 한다. 턱시도 입은 펭귄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은 귀여움을 넘어서 친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펭귄은 사람에 별로 관심이 없다. 나를 펭귄으로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친구가 되어 같이 걷고 달리기도 했다.     


1월 초순, 남극은 한여름이다. 부화한 지 아직 한 달이 안 되는 새끼 펭귄들은 털갈이를 하지 않아 회색 털이 몽글하게 덮여있다. 털갈이하면 뒤에는 검은색, 앞 배 쪽에는 흰색으로 바뀌는 게 신기하다. 사람의 일생도 5개월 정도로 압축해서 보면 극적인 변화일 거 같다. 뒤뚱뒤뚱 부지런히 바다에 뛰어들어 먹이를 잡아 어린 펭귄에게 먹이 주는 어미 펭귄은 사람과 다름없다. 어미가 크롤 등을 잡아 배 속에 넣고 울음소리로 자기 새끼를 찾는다. 어미가 뱃속 먹이를 토해내면 새끼는 어미 입속에 부리를 집어넣어 먹는다. 펭귄 밀크다.


 펭귄은 땅에서 두 발로 생활하다 남극의 겨울이 시작되면 바다를 헤엄쳐 따뜻한 곳으로 간다.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는 조류 펭귄은 그 날개로 바닷속을 날아다닌다. 나에게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쓸모 있는 무엇이 있을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나 함께 여행한 일행들과 헤어질 시간이다. 잠깐이지만 같은 관심사로 한솥밥을 먹고 한정된 공간 생활로 친밀해졌다. 킹 조지아 섬에서 비행기로 칠레의 끝,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하여 일박하고 일행들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난 다른 여행지, 파타고니아로 향했다. 며칠 의지하고 지내다 갑자기 혼자되니 빈자리가 컸다. 며칠 지나면 적응되리라. 어차피 혼자 아니던가.  배낭끈 움켜쥐며 터미널로 향했다. 아디오스!


**2017년 1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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