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카스트 루프 공항 수하물 벨트는 쉼 없이 돌았고 내 짐은 보이지 않았다. 30분이 지나니 조급했다. 불안은 현실이 됐다. 결국 캐리어는 보이지 않았다. S 항공으로 베이징, 취리히를 경유했는데 어디에 있는지, 분실됐는지 알아야 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짐이 안 온 것은 처음이었다.
수하물 분실물 센터에 갔다. 넓지 않은 사무실에 주인 잃은 가방이 여기저기 수북이 쌓여 있었다. 줄 서 있는 많은 사람을 보니 흔히 있는 일 같아 조금 안심했다. 먼저 분실 신청서를 작성했다.
“가방이 어떤 색이고 어떤 모양이에요?” 신청서를 확인한 여직원이 물었다.
“가방 사진 있는데 보여 줄게요.” 내가 말했다.
출발지에서 짐 사진을 찍는 것은 분실에 대비한 내 습관이다. 이게 이렇게 유효할 줄이야.
“가방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전화할게요.”라는 말을 듣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왔다.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코펜하겐 중앙역 근처라 공항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였다. 방은 6인용인데 2층 침대 중 다행히 1층 침대여서 ‘그나마 좋은 일도 있네.’라고 생각했다. 잠들기 전에 가방이 베이징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분실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튿날 아침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서 시작하는 프리 워킹 투어에 참여했다. 캐리어는 저녁쯤 도착할 거라고 내 맘대로 예상했다. 비는 오락가락했고 가이드는 시청사와 궁전, 교회 등을 방문하며 자세히 설명했다. ‘무료니까 설렁설렁하겠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프리워킹 투어 가이드)
오후에는 뉘하운 운하 투어를 했다. 뉘하운은 초기에 노동자들과 선술집이 있던 항구였다는데 지금은 아름다운 건물과 노천카페가 즐비했다. 코펜하겐 관광지 소개에서 빠지지 않듯 다양한 볼거리로 재미있었다. 이 운하 투어는 인어공주 동상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로 1시간 정도였다. 배에서는 인어공주 뒷모습만 볼 수 있었다.
뉘하운 운하
(인어공주 동상)
저녁에 공항에 갔다. 수화물 찾는 곳 안에 수화물 분실물센터가 있어서 맘대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전화를 걸어 미팅 포인트에서 보안원을 만나 함께 분실센터에 들어갔다. 어제 왔던 곳이라 낯익었다. 센터에 들어가자마자 먼저 즐비한 가방 중에 내 캐리어를 찾아보았다. 빨간색이라 금방 찾을 수 있는데 보이지 않았다.
“새벽 1시에 도착할 거예요” 남자 직원이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코펜하겐은 경유지고 최종 도착지는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사이에 있는 덴마크령 페로제도였다. 섬들로 이뤄진 페로제도까지 코펜하겐에서 비행기로 2시간 정도다. 다음 날 페로제도 예약 비행기 시간이 오후라 아침에 가방을 찾아서 페로제도로 떠나면 됐다.
“서바이벌 키트 주세요.” 직원에게 말했다.
키트에는 세면도구, 스킨, 로션, 빗, 흰 티셔츠가 들어있었다.
(분실물 센터)
페로제도로 가는 날, 일찍 서둘러 공항에 갔다. 캐리어는 분명 도착했을 거라 믿었다. 다시 보안원을 만나 분실물 센터에 갔다.
없다.
화났다.
분명 새벽 1시에 도착한다고 했다. 순간 화가 나서 소리 지르고 울먹이고 오만상을 찌푸렸다. 두 남자 직원이 나가 달라고 했다. 정중히. 하지만,
“분명 어제 온다고 했죠? 나가라니! 베이징에 있는데 하루면 오잖아요?”
한 번 더 찌그러진 얼굴로 목소리 높였다. 소리 지른다고 눈앞에 캐리어가 나타날 거 아니지만, 우는 아이 떡 하나 준다는 준엄한 속담을 믿으며 어색하게 소리친 후 가방을 배달할 페로제도 예약 숙소 주소를 알려줬다.
덴마크령 페로제도는 천년 정도 이어진 전통, ‘그라인드’라는 고래 사냥으로 유명하다. 매년 여름이면 수많은 고래시체로 항구가 온통 피바다인 모습을 미디어로 종종 봤다. 물론 이 광경을 보려고 페로제도에 간 것은 아니었다.
이 지역에 고래 사냥만큼 유명한 것이 잔디 지붕이다. 바이킹 시대부터 지붕에 잔디를 깔던 전통이 지금도 이어졌다. 바이킹들이 이 섬에 왔을 때 마땅히 지붕을 할 재료가 없어 잔디를 깔았다는데 이것이 이곳 환경에 잘 맞는단다.
큰 폭풍이 자주 오는 이곳에 잔디가 집을 누르고 있어 안전하다고 했다. 단열효과도 있어 겨울철에 좋고 잔디에서 산소가 나오니 이만큼 환경에 좋은 지붕이 있을까. 사람 아닌 것은 모두 초록일 정도로 섬 전체가 초록 초록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