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제도는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세게 분다고 했다. 사진기 방수커버까지 준비했는데 역시 공항을 나오니 비바람이 거셌다. 캐리어 없이 배낭 하나 메고 다니니 공항에서 짐 찾을 일도 없고 가뿐했다. 사람이 간사한지, 내가 간사한 건지, 캐리어 때문에 화나고 우울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쩔 수 없지.’하는 마음도 컸다. 페로 제도의 수도 토르스하운에 가기 위해 공항버스를 탔다. 가는 중에 다행히 비가 그쳤다. 길은 해안가로 굽이굽이 이어졌다. 주변은 온통 초록이다. 평상 같은 산에는 나무는 없고 잔디 같은 풀이 전부였다.
버스 기사한테 숙소 주소를 보여주고 적당한 정류장에서 내려 달라고 했다. 기사는 시내에 있는 버스 터미널이 아닌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줬다. 언덕 위에 있는 간이 정류장이었고 주위에 집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한 참 걸어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캐리어 없는 것이 고마웠다. 길도 울퉁불퉁해 캐리어 있었으면 고생할 뻔했다.
어느 집 앞에 서 있는 아주머니에게 숙소 위치를 물었다.
“여기서 000 숙소 얼마나 돼요?”
“멀어요. 잠깐 기다리세요.”라고 말하며 아주머니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제 남편이 차로 데려다준대요. 타고 가세요.”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데 아저씨가 밖으로 나왔다.
결국 아저씨 차로 숙소에 갔다. 걷기에 먼 거리였다. 토르스하운 시내와 항구가 보이는 언덕 위 숙소였다. 교통은 나빠도 전망은 좋았다. 태워다 준 아저씨께 뭐든 보답하고 싶었다. 마침 배낭에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산 홍삼 캔디가 있었다. 건강에 좋은 홍삼이라는 말과 함께 연신 고개 숙여 인사했다. 페로제도에서 첫 번째 만난 주민이었다. 뭔가 예감이 좋았다. 코펜하겐 사람들도 친절했지만, 여기는 더 친절했고, 머무는 동안 계속 도움을 받았다.
여행하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토르스하운 어슬렁거리기
캐리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물을 바꿔 마셔서인지 페로에 도착한 날 밤부터 배가 슬슬 아프고 설사가 났다. 캐리어 속 비상약과 핫팩은 아무 소용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생수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 밤새도록 계속 바꿔가며 배 위에 얹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덜했다. 배아픈데는 확실히 온찜질이 최고다.
캐리어에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잔뜩 넣었는데, 지금, 여행 4일째, 그것들이 없어도 약 빼고는 다소 불편할 뿐 지낼만했다. 가벼운 느낌이다. 호텔 방바닥을 한 자리 차지하고 어지럽게 펼쳐 놓았을 캐리어다. 탁자 위에 단출하게 놓여있는 배낭을 보며 다음부터는 책가방 메듯 배낭 하나로 여행해 보자고 생각했건만 이후 한 번도 실천하지 못했다. 역시 꾸역꾸역 캐리어 끌고 배낭을 멨다. 다만 여행자 보험 들 때, 전에는 뺐던 수하물 지연을 보험 항목에 포함시켰다.
시내가 넓지 않아 걸어 다녔다. 미키네스 섬 투어를 여행사에 신청했다. 여름이지만 흐리고 비가 오니 추웠다. 빨간 털모자를 샀다. 뜨거운 라면 국물을 먹으면 속이 편해질 것 같아 Mr. Lee 라면도 샀다. 이 라면은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만든 라면이다. 노르웨이에서 유명한데 여기서 만나니 반가웠다. 설사병이라 하루 종일 물만 먹었다. 신기하게 저녁에 라면을 먹으니 배가 편했다.
S 항공 홈페이지에 캐리어가 코펜하겐에 도착했다고 떴다. '내일이면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하며 편하게 잤다.
호숫물이 직접 바다로 떨어지는 쇠르보그스바튼
페로제도는 사람이 거주하는 18개의 섬과 작은 섬들로 이뤄졌다. 여기는 도시 지하철 노선도 대신 복잡한 배 노선도가 있다. 관광지 쇠르보그스바튼은 버스로 갔다. 버스는 정류장 표시도 없는 곳에 멈췄다. 목적지까지 30분쯤 걸었다. 평평한 잔디밭 끝에는 해변 대신 절벽이었고 아래는 바다였다. 절벽 위에 있는 호숫물이 바다로 직접 떨어졌다. 두세 명의 관광객이 있었다. 광고 사진에 많이 나오는 곳답게 쉽게 돌아서기 힘든 멋진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