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길
The matrix is everywhere. It is all around us.
Even now, in this very room
It is the world that has been pulled over your eyes to blind you from truth.
매트릭스는 모든 곳이 존재해. 우리 주변에. 심지어 지금 이 방에도.
바로 이 세상이 너를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지.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中-
가끔 내가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이 전부가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던지,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비밀과 숨겨진 진실들의 존재유무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는 그런 인간 내면의 호기심을 가시화시킨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개봉한지 20년이 훌쩍 넘은 영화이지만, AI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류의 해방을 그려낸 영화의 스토리는 태고적부터 우리를 지배해 온 지배계층이 존재한다는 설이라던지, 달 탐사와 기존의 우주관은 조작된 것이며 지구는 둥글지 않다 '터무니없는 공상'의 범주 내에 있던 것들에 '어쩌면?'이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인류가 매트릭스 공간 안의 세계를 진짜 세계인 양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작품 내의 배경이라던지, 빨간약을 먹으면 고통스럽고 불편한 이 세상의 진실을 볼 수 있게 되고, 파란약을 먹으면 안온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영화적 설정은 지금 다시 보아도 참신하고 매력적인 설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현실'에 SF적인 요소만 적절히 가미한 것처럼 느껴졌달까.
매트릭스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빨간약을 먹지 않는 이상 그곳이 AI가 만들어낸 가상공간이라는 것을 인지 할 수 없다. 매트릭스는 인간이 진실을 바라볼 수 없도록 눈에 씌여진 거짓된 세상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컴퓨터 코드로 짜여진 대체 현실을 진짜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세상이나, 어떤 현상에 대해서 그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없음에도 본인이 뭔가를 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지천에 깔려있다. 대부분 식견이 좁아서 그릇된 생각과 판단을 하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주장에 반대되는 의견에 극도로 폐쇄적인 태도를 고수하는데, 본인의 주장이나 의견에 모순이 있음을 앎에도 끝까지 그것을 진실이라 믿는 비상식적인 행동또한 서슴치 않는다. 그들은 현실을 살아가지 않는다. 스스로가 만든 대체 현실 속에 자아를 의탁한 그들은 매트릭스 안에 있는 것이나 진배없다.
작중에서 빨간약을 먹고 깨어난 사람들이 소수인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작중에서나 현실에서나 사람들은 늘 불편한 진실(빨간약)을 택하기보다는 평안하고 안온한 일상(파란약)을 택해왔기 때문에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은 항상 소수일 수밖에 없다. 작중에서 '네오' 일행의 동료였던 '사이퍼'는 고통스럽고 불편한 진실을 견디지 못해 동료들을 배신하기에 이르는데, 진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한 그는 다시 매트릭스 속으로 들어가 풍요로운 삶과 스테이크를 택한다.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이퍼의 행동은 대다수 인간들의 표상과 같으며, 그들에게 '진실'은 회피하고 싶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그저 평안한 일상의 영속을 원할 뿐 그 이상의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진실은 대체로 불편하고, 살아오면서 함양했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부정한다. 비교적 가벼운 차원에서는 가치관이 될 수도 있고, 신념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세계관 자체가 뒤바뀌거나 삶 자체가 완전히 급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쩌면 진실을 안다는 것은 당신에게 성취감과 같은 긍정적인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닌, 불쾌함과 좌절감, 절망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폭탄과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진실을 추구해야한다. 그 길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야의 숲속일지라도, 내가 살아왔던 삶 전체를 부정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진실만을 추구하려 노력해야한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과오를 범하는 것은 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진실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이 속이 편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 솔제니친-
모두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미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다. 진실만을 추구하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나의 양심은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러지 않는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길을 자처하는 것에 무슨 득의가 있냐고 말하면서 매트릭스의 사이퍼처럼 풍요로운 삶과 스테이크를 택한다. 진실이 밥먹여 주냐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과오를 빚어내어 사회와 세상을 점점 더 암울하게 만든다.
풍요로운 삶과 스테이크는 분명 매력적인 유혹이다. 그런 삶을 살 수만 있다고 한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다고 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하지만 진실을 외면하며 거짓 속에 머무르는 삶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일 뿐이다.
우리는 눈가리고 아웅하면서 진실을 외면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 또한 멈춰야 한다. 거짓으로부터 투쟁하고,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종종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선택하는 거짓된 위안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진실이란 쓰디쓴 약처럼 입에는 쓴맛을 남기지만, 결국 우리의 영혼과 삶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하늘에 한점 부끄럼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아야 한다. 진실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길 마다했던 의인들의 고결함. 거짓으로 점철되어 있는 악한 세상의 고리를 끊어버리겠다는 영웅의 결의. 고통을 마주하고, 진실의 쓴 약을 받아들이며 거짓의 사슬을 끊는 것. 오직 그런 것 만이 거짓된 세상을 진실되게 바꿀 수 있으며, 그런 삶만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
당신은 빨간약(진실)을 택하겠는가?
아니면 파란약(거짓)을 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