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꽤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를 낱알 세듯 신중히 살며, 자신과 주변을 끊임없이 성찰하려 애쓰지만, 대부분은 정치나 사상과 같은 이데올로기에 극단적으로 경도되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들은 현란한 구호와 단편적 이미지에 매몰되어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다른 누군가는 한 가지 신념에 몰두한 나머지 상반된 의견은 곧장 배격하며 대립을 즐긴다. 또 어떤 부류는 유행이나 유명인의 말 한마디에 생각 없이 휩쓸려, 자신이 소비하는 가치나 믿음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숙고해볼 겨를조차 없다. 그렇게 생각의 균형을 잃은 채 한쪽으로 기울어버린 이들은 결국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의 본질마저 흐릿해진 상태로, 마치 흐린 유리창 너머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무감각한 삶을 이어나가게 된다.
일례로 좌파, 우파의 대립같은 흑백논리에 매몰된 사람들이 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대중을 통제하고 사유를 퇴색시키는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사상이란 건 본래 극단적인 대립구도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디. 사상은 수많은 철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쌓아올린 지적 금자탑이자, 과거의 실수로부터의 반성,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열망, 인류의 지성이 짜낼 수 있는 극한의 고뇌 등 여러 지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건전한 집합체이다. 그리고 그 수준은 때론 평범한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기도 한다. 이 부분은 사상과 관련된 서적을 한 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두꺼운 책을 당장 불쏘시개로 쓰고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텍스트의 양과 방대한 지식이 열거되어 있으며, 그 깊이는 평범한 이들이 가늠하기에는 아득하기만 하다. 또한 각 사상은 특정 시대적 배경과 철학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기에,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넘어, 깊은 사유와 성찰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대중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그렇다고 대중의 지적인 수준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꽤나 섣부른 판단이다. 그들의 무지는 지능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사유하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사고의 단순화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은 사색에 몰두할 여유가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므로, 그러한 현실적 부담은 대중으로부터 사유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 더욱이, 사회는 이런 대중을 사유의 길로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소비와 즉각적인 쾌락을 제공하며 그들의 사고를 표면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만든다.
대중은 본질적으로 복잡한 사상보다는 간단명료하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메시지에 반응하기 쉽다. 이러한 특성을 이해한 사회는 대중의 사유를 장려하기보다는, 선동과 통제를 통해 군중의 본능적 반응을 이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결과적으로, 대중은 깊이 있는 사상이나 철학적 탐구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사유의 과정은 그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사상과 대중 사이에 더 큰 간극을 만들어내며, 개인이 독립적으로 사고할 기회조차 제한하는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결국, 대중이 사색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회와 구조적 환경이 이를 방해하고 억압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꽤나 비약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겠지만, 사회는 대중이 사유를 통해 길을 찾기를 원치 않는다. 무언가를 깊게 통찰하기보다는 단순히 길들여지기만을 원한다. 이는 사유와 통찰이 개인에게 자유와 비판적 사고를 가져다주며, 기존의 권력 구조나 질서에 도전할 가능성을 열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는 대중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외부에서 제공된 간단한 규칙과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더 효율적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구조는 대중을 통제하고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이는 개인의 사유와 자율성을 점차 약화시킨다. 당신이 이러한 구조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구조에 의해 길들여진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세상에는 자신이 무언가를 꽤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피상적인 지식과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진실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사고를 방해하고, 사유와 통찰의 기회를 차단한다. 깊이 있는 성찰 없이 얻어진 확신은 오히려 오류를 강화하며, 사회가 제공하는 틀 안에 안주하게 만든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회적 구조와 자기기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대중은 끊임없이 사유의 가능성을 잃고, 이를 인지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노력 없이, 길들여진 삶 속에서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는 아이러니 속에 머물게 된다.
일례로 부자를 꿈꾸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작 돈이 무엇인지, 경제가 무엇인지, 금융이 무엇인지, 그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다고 해도 대부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치고, 보이는 현상에만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자신을 전문가라 자처하는 사람들조차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상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공산주의가 무엇입니까, 좌파가 무엇입니까, 우파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하면, 열에 아홉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생각해보자. 본인이 어떤 가치를 추종한다고 하면,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난 다음에 믿음을 확립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그럼에도 자신들이 표방하는 가치에 대해서 아주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것에는 아무 근거도 핵심도 없다. 스스로가 빚어낸 모순이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다. 여기에 사회 구조는 대중에게 먹고사는 문제, 즉 생존을 유일한 선택지로 강요한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대중은 생존과 관련된, 즉 먹고사는 문제에 필요 이상으로 경도되어 그 이외의 것들을 철저하게 배제하기 시작한다. 진실? 그런 복잡한 건 싫고, 생각하기도 귀찮다. 나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그만이고, 그러한 바람을 충족시켜 줄 무언가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마음가짐은 인지적 편향을 강화하며, 비판적 사고와 더욱 멀어지게 만든다.
지금 나라를 살리겠다고 거리로 뛰쳐나간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고 믿지만, 그 믿음의 뿌리는 진실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환상과 감정에 기반한다.
진실이란 본래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단편적이지 심해에서 일어나는 굉장히 복잡한 상호작용들이 수면위의 파도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구조가 어떤 현상으로부터 사상이나 행동을 강요할 때는 이런 복잡한 구조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강렬한 이미지나 경구 하나면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고, 뇌와 심장을 저당잡을 수 있다.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환상과 이상에 사로잡혀 논리적 추론과 근거를 등한시하는 사람들을 혹세무민 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거리로 뛰쳐나가 목소리를 높이면 좋은 세상이 올 거라는 대중의 맹목적인 믿음에는 아무런 근거도, 핵심도 없다. 부정선거니 뭐니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길들여진 짐승처럼 던져주는 먹이만 넙죽넙죽 받아먹는 바보들의 대행진이요, 진실과 사유가 퇴락한 대(大) 소피스트의 시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