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 리치의 삶

by 여행에 와 락

수년 전에 막내딸과 함께 한국에 돌아간 적이 있다. 10일여 지났을까, 막내딸이 하는 말이

“엄마, 미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한국은 부자들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 “

“왜 그런 것 같아 보여?”

한국 사람들은 자기들만의 기준이 있어서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행복해하질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10여 일 만에 그런 걸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는지 딸이 놀랍고 대견스러웠지만 동시에 얼마나 그런 모습이 삶에 묻어 있었으면 그렇게 쉽게 알아냈을까 씁쓸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대다수가 밀접한 접촉을 안 해서인지 비교하는 문화가 훨씬 덜 하다. 누가 무엇을 하던 별로 잘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는 듯하다. 그냥 그 집은 그런가 보다 라는 식이다. 좋은 일은 축하해주고 슬픈 일이 생기면 위로해주고 함께 슬퍼해 준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대로 삶을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인생을 즐긴다. 최고의 부자들이 호화 요트 여행을 할 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일박 15 불하는 캠프장에서 캠핑을 할지라도 즐겁고 행복하다. 그렇다고 최고 부자들이 호화요트 여행을 했다고 과시하거나 내비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 빈곤감이나 기대치에 대한 좌절을 맛보는 일도 적은 것 같다.


이렇게 나름대로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모두가 다른 가치를 가지고 살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자면 나와 남편은 여행을 좋아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여행 방식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떤 가정은 하룻밤 1000불이 넘는 호텔에서 묵으며 가이드를 두고 여행을 한다. 나는 그저 '그들은 그렇구나'라고 한다. 오히려 생각만 해도 갑갑함을 느낀다. 우리는 차를 렌트해서 직접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을 느긋하게 다니는 걸 좋아한다. 올빼미형인 우리는 여행을 가서도 2시 이전에 자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선호하는 여행의 가치는 느긋하게 우리의 스타일에 맞는 여행을 함으로써 만족을 얻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가장 호화로운 여행으로 치장하는 것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일례로는 우리는 시누이가 기증한 1990년 도요타의 돌핀이라는 캠핑카를 가지고 있다. 둘이 여행하기에는 아주 꼭 안성맞춤인 사이즈의 캠핑카이다. 보기에도 오래된 것 같고 굴러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보이는 이차를 나는 무척이나 애정 한다. 수 천만 원짜리 멋진 차를 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이차의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만 생각해도 설레기 때문이다. 우리 친구인 빌 부부도 어마어마한 부자이지만 자그마한 트레일러를 트럭에 얹고 여행을 다닌다. 그런 걸 봐도 역시 미국인들은 보기 위한 삶보다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는 것이 틀림없다.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5, 6위권 부자에 속하는 가정들을 수년간 드나들며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그들의 삶이 대략 어떻다는 것을 엿볼 기회가 좀 있었다. 물론 이들의 삶은 우리의 삶과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가정과 아이들을 위주로 하는 삶은 가장 눈에 띄는 특성이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여행을 다니고 취미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렇지만 이 것들은 보통 중하류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밖에 특이한 부자들의 삶의 특성을 들자면 그것은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냥 보통사람과 같은 삶은 사는 것 같아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것이 크나큰 특이점인 것 같다.


오랫동안 이 특별한 가정의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놀라고 감동받은 것은 이네들이 얼마나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사랑하는가였다. 한 번은 피아노 레슨을 끝내고 방에서 나오는데 아이 아빠가 갑자기 아이 쪽을 보며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아, 이 아빠가 아이를 보면서 이렇게 함박웃음으로 행복하게 웃는구나, 참 멋지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 뒤쪽에서 엄마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남편이 아내를 보고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또 아내가 서핑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12월에 아내가 일주일간 서핑 여행을 가도록 해 주고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도 이 부부의 특이한 모습이었다. 가족이 물을 다 좋아하는지 집 부근 바다에 자신의 요트를 정박해 놓고 주중에 스킨 스쿠버 등을 하며 한두 달을 보내기도 한다.


또 다른 가정은 이혼한 가정으로 아이들이 요일을 정해 엄마 집과 아빠 집에서 나누어 산다. 아빠 집에 오는 날에는 아빠가 완전히 아이들을 위해 그날을 쓴다. 공부도 가르쳐주기도 하지만 어떤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즐길 일거리를 만들며 지낸다. 함께 자전거 타기, 마당에서 프리스비 등 강아지들과 놀기, 등등 자녀들과 함께 할 시간을 만들고 열심히 함께 해주는 모습을 보면 다른 부모와 정말 다를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집 인테리어를 아이들을 위해 놀이 공간을 집 내부에 설치하는가 하면 모든 가구를 천으로 된 가구로 들여놓는데 이는 보통 사람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긴 하다. 집 내부가 어마어마하게 크다거나 가구를 완전히 교체하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부자들의 삶은 물론 한없이 럭셔리어스 하다. 헬기가 이착륙을 부담 없이 할 정도로 큰 요트를 두대를 빌려 선장과 요리사, 아이들 봐주는 스탭 등 수십 명의 크루를 두고 모든 것을 관리하게 하며 두세 가족이 저기 동남아 어느 바다로 전용기로 이동해 가서 여행을 즐기는 모습도 보았다. 샌프란시스코 만에 요트를 정박해 놓고 여름에 거기에서 지내면서 좋아하는 워터 액티비티를 즐기기도 한다. 산에 바다에 원하는 곳마다 집을 장만해 두고 전용기로 움직여 스키며 서핑이며 바캉스를 즐기기도 한다. 공휴일이 있는 주말이나 아이들 방학에는 반드시 여행을 다닌다. 그렇지만 보통 때의 삶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게 참 특이하다. 누구에게나 서슴없이 말을 걸고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부담 없다. 그냥 보통 사람이다. 주목할 점은 이 들의 삶은 첫째도 둘째도 가족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이들 중심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갈등이 생기면 이해가 될 때까지 함께 이야기 나눈다.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매우 적극적으로 서포트해준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아이들이 전혀 스포일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철저히 예절을 가르치고 검소한 삶, 보통의 삶을 가르친다. 이런 가정의 아이들을 4살부터 대학생까지 가르치고 지켜보았지만 나는 한 번도 이 아이들이 잘난 체를 한다던가 건방지다던가 예의 없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내가 가르치는 보통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예의 바르고, 아이들답게 순수하고, 착하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는다. 없어서 못 주는 부모보다 있는데도 안주는 부모가 더 존경스럽다는 말이 정말 다가온다. 미국에는 CNBC라는 경제 TV 채널이 있다. 하루 종일 경제, 주식 등에 대해 보도하는 프로그램들이다. 내가 언급한 위의 가정의 부모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인터뷰도 하고 이들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늘 경제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더없이 순수하고 부모들은 그냥 보통 다른 부모와 다를 게 없다. 화장도 안 하고 그냥 티에 청바지, 레깅스, 반바지를 즐겨 입으며 아이들의 옷도 타겟이라는 중저가 매장에서, 아이들의 장난감도 타겟에서 사준다. 음식은 매우 조심해서 건강식으로 먹는다. 여느 가정과 같다.


부자라는 느낌이 드는 대목은 이들에게는 아이들을 봐주는 내니가 여러 명 되고, 요리사가 저녁을 차린다는 점이다. 경제 활동을 도맡아 하는 경제팀이 꾸려져 있고 스케줄을 담당하는 사람, 보안을 책임지는 사람들, 가정에 필요한 일들을 맡아해 주는 사람 등 여러 명의 스태프들이 존재한다. 또 이를 모두 관장하는 스탭 대표가 또 따로 있어서 집안의 대소사에 대부분 관여한다.


내니 (Nanny)는 미국에서 흔히들 쓰는 단어이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다면 그 도우미가 바로 내니이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내니를 두고 살기는 어렵지만 파트타임으로 필요할 때 베이비 시터를 고용한다. 일반적인 내니의 역할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려오고 방과 후 활동에 데려가고 데려오고, 간식을 살피고 부모와 상의해서 방과 후 활동의 스케줄을 짜기도 한다. 여행을 갈 때 동반하기도 하고 오래된 내니들은 어쩌면 비서와 같이 딱 붙어 집안 대소사를 모두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가정은 같은 내니와 10년 이상 함께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게 그 집의 스타일인 것 같다. 나도 그 가정에서 14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말이다. 또 어떤 집은 맘에 딱 맞는 내니를 구하기까지 여러 면을 거쳤지만 이제는 수년째 같은 내니와 함께 가고 있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이 내니들이 아이들의 예절도 담당하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부재 시 일어날 수 있는 무성의, 무례의 싹을 내니들이 따끔하게 잘라내는 것을 보았다. 레슨이 끝나면 꼭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게 하고 안녕히 가세요로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매번 가르친다. 문까지 따라 나가 배웅하도록 가르친다. 식사예절이며 규칙을 지키는 일등을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의 인성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니 내니의 인성이 매우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아는 한 이 내니들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면서 이를 아낌없이 표현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의 성장에 기여한다. 100%는 아니겠지만 이런 세계 갑부의 내니들 중에는 석사학위 보유자도 많이 있다.


예절 교육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실제로 나의 모든 학생들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예절을 아주 잘 가르친다. 어쩌다 학생이 꾀를 부리며 피아노로 오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으면 엄마나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따끔하게 나에게 사과하도록 시킨다. 선생님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갈 때면 나를 배웅하게 하고 인사를 하도록 시킨다. 미국에서는 예절이 바를수록, 겸손하고 점잖을수록 클래스가 높다는 인식이 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을 쓰는 사람들, 작은 배려와 마음 씀씀이가 그 사람들의 클래스를 나타낸다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본인들도 따뜻한 삶을 살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런 사람이 되도록 몸소 가르치는 것이다. 언젠가 한번 학생이 아직 귀가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약 5-10분 정도 있으면 온다기에 피아노 옆에서 기다리려고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의 엄마와 고등학생이었던 누나가 각자의 방으로 가지 않고 나와 계속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 혼자 있게 하는 것이 미안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런 작은 예절을 통해 배려를 배운다. 따뜻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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