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에는 잘 알려진 여성 리더들이 많다. 페이스북의 COO였던 쉐릴 샌드버그 ( Sheryl Sandberg)나 유튜브의 수잔 워지스키 (Susan Wojciscki), 야후의 대표였던 마리사 메이어 ( Marissa Mayer)가 대표적으로 성공한 여성 리더들이다. 그 외에도 여러 회사의 임원이나 대표로 일하고 있거나 성공한 창업자들 중에도 여성이 꽤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런 빛나는 스타들은 아주 적다. 통계에 의하면 테크 컴퍼니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비율은 2015년 기준 25%라고 한다. 그중 5%는 아시아 여성들이다. 비율이 남성에 비해 크게 낮다 보니 아직도 화두로 떠오르는 문제는 성차별과 인종 차별의 문제이다. 승진의 기회와 취업의 기회에 결국은 성차별과 인종의 차별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전역을 따져 일의 전문성과 관계없이 여성의 취업비율은 47%나 되는 것과 비교해 보면 25%는 꽤나 낮은 비율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수년 전 빌 게이츠의 아내인 멜린다 게이츠가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그녀가 듀크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할 때 신입생 때 1/3에 달하는 여학생들이 3학년이 돼서는 겨우 몇 명밖에 남지 않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는 여학생은 단지 18%에 불과하다고 하니 실리콘 밸리에서 여성의 취업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점 중의 하나는 여성이라고 일을 안 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냥 하우스 와이프로 산다는 건 우리의 부모님의 세대, 1960년대에 이미 끝난 듯하다. 직장 없이 아이들만 키운다고 하면 미국인들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말을 잇지 못한다. 뭐라고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만큼 여성의 취업은 미국에서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잘 나가는 대표이고 의사, 변호사일지라도 아내들도 뭔가 하는 일이 있다. 육아 때문에 잠시 직장을 쉴지언정 다시 돌아가 일할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여성들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 시스템이 육아와 가정을 돌볼 수 있도록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테크 컴퍼니들의 유급 산후조리 휴가는 4.5개월에서 많게는 6개월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마이크로 소프트와 구글, 엣지 (Etsy) 등은 가장 긴 휴가를 준다. 구글은 6개월, 엣지는 6개월 반가량의 휴가이다. 나는 수잔이 막내를 낳고 6개월 동안 휴가를 갖는 것을 직접 보았다. 또, 아이들 케어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 큰 기업의 경우, 회사가 운영하는 데이케어 시스템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쉽게 아기들을 돌봐주는 곳을 찾을 수 있다.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옵션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경우, 아빠들이 새벽부터 회사를 시작하고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추어 돌아와 아이들을 돌보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아이들이나 가족에 관련된 일이라며 매우 관대하게 이해하고 최우선으로 이해한다.. 이런 사회적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 해도 아이들이 있는 경우, 내가 본 엄마 아빠들의 삶은 정말 치열하다. 공격적으로 수행해야 할 회사 일에 여러 가지 과외활동까지 하는 아이들 관리까지 병행하면서 정말이지 고단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동양인 가정의 경우, 인도나 중국에서 조부모님들이 오셔서 몇 개월씩 집안일을 도와주신다. 나의 경우에도 아이들이 한창 학교에 다닐 때 내가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우리 부모님이 자주 오셔서 아이들도 돌봐 주시고, 음식이며 운전이며 큰 도움을 주셨었다.
공동 육아와 가사를 분담하는 문화 덕분에 미국 여성들의 부담이 훨씬 덜하기는 하다. 그러나 육아의 많은 부분에 엄마들이 관여해야 하는 점은 역시 세계 어느 나라건 같은 것 같다. 아빠들이 도맡아 아이들의 교육을 전담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아빠들이 일일이 아이들의 숙제를 챙기고 아이들의 하교 후 활동을 정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들의 과외나, 그 외 예능 활동 등을 알아보고 결정하는 것은 엄마들의 몫이다. 여행을 가는 문제나 가족 간의 모임, 아이들과 함께할 여가활동 등의 아이디어는 대부분 엄마들의 머리에서 나온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 다니게 되면 대학 입시 준비의 자세한 부분은 엄마들이 다 챙겨야 한다. 이런 일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주말에는 철저히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며 자주 여행을 다니는 것 같다. 여행을 많이 다니는 나는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일과 집 밖에 하는 일이 없다. 매일 이 단순한 일을 몇 개월씩 하다 보면 여행이라는 수단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야만 하는 것이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며 살아가는 실리콘 밸리의 똑순이 엄마들도 사회의 이해와 도움이 없다면 우리나라처럼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내 학생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트렌드가 바뀌는 것 같다. 구글 창업자나 페이스북의 최고 5인방에 드는 사람의 집에서나 볼 수 있던 일하는 사람들, 내니, 요리사, 기타 등등, 을 이제는 여염집에서도 비슷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둘밖에 되지 않지만 집안일을 해주는 도우미와, 요리사, 내니를 고용하는 가정들이 늘고 있다. 엄마들은 그 시간에 아이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거나, 남편과 함께 집안의 다른 일을 하는 등 여유를 갖게 된다. 물론 창업자들의 집에는 시큐리티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따로 건물을 만들어 그곳에서 24시간 일을 한다. 그 밖에도, 내가 본 바로는, 많게는 열명도 넘는 사람들이 드나들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봐준다. 그 비용은 아마도 천문학적일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실리콘 밸리의 일반 가정도 이런 식으로 가정일 분담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여성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다. 그에 따라 가정과 일터의 퍼포먼스가 향상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경제적으로 가능한 실리콘밸리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