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스무 살은 2001년에 찾아왔다.
“피아노를 전공해 보는 게 어때요?”
쇼팽의 즉흥 환상곡과 베토벤의 열정 소나타를 배우고 싶어 찾아간 피아노 선생님, 캐롤이 한 말이다. 캐롤은 당시 50대 후반의 피아노 선생님으로 성인 학생이던 남자, 빌을 만나 재혼해서 행복한 삶을 사는 멋진 여성이었다. 연주회와 각종 공연을 보러 일 년에 수십 번을 샌프란시스코를 올라간다. 이 것만으로도 내게는 꿈의 세계의 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또 남편과 함께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사람이었다. “전공을 해보라고? “ 나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한 말을 듣고 순간 얼떨떨했다. 어떻게 다시 대학을 가지? 그것도 피아노과를? 한국에서 피아노과를 가려면 말도 못 하게 준비도 많이 하는데. 그리고 나는 피아노를 좋아하지도 않잖아? 한순간에 온갖 생각과 질문, 그리고 시뮬레이션이 복잡하게 실타래처럼 엉켜버렸다. 나는 그냥 “어떻게 피아노과를 들어가겠어요?”라고 얼버무렸다. 이 대답은 피아노과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연습하고 또 떨어질 수도 있고.. 이런 것이 모두 혼합되어 말도 안 된다는 뜻의 부정적 의미였었다.
일주일 내내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캐롤의 권유, 나는 결국 답을 찾았다. 하기로 했다. 그 이유가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라면 정답이었을 텐데, 이유는 전혀 다른데 있었다. 첫째, 미국에서 살려면 미국의 졸업장이 하나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 내가 이화여대를 나왔다고 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게다가 영어교육과라는 전공은 숨기고 싶을 만큼 영어에 자신도 없었다. 여기엔 거지도 나보다 영어를 잘한다. 미국에서 살아가려면 이곳 졸업장이 필요하다. 두 번째, 나중에 선교를 가더라도 졸업장이 있으면 음악 선교를 할 수 있다. 바로 2-3년 전에 교회에서 목사님께서 한 광고를 하셨다. 그 당시 중국에 있던 과학 기술 대학교에서 6개월 단기 음악 선교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아이들이 있어 갈 수 있는 형편도 못되었지만 자격도 미달이었다. 교회 찬양팀에서 건반을 치고 있었지만 학위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을 결정할 때 그때의 기억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피아노과를 졸업하면 음악 선교도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캐롤은 두 학교를 추천해 주었다. 산호제 주립 대학교와 산타 클라라 대학교. 산타 클라라 대학은 사립학교라 학비가 너무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산호제 주립 대학으로 결정했다. 캐롤의 걱정은 산호제 주립 대학교의 피아노과 교수가 너무 별로라는 것이었다. 산타 클라라의 교수님은 한스 보플 ( Hans Boepple)이라는 아주 유명한 교수셨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산호제 주립대학이 더 나에게는 잘 맞았다. 나는 3곡을 오디션 곡으로 준비했고, 한편 토플 시험도 준비했다. 마침 토플 시험이 컴퓨터 시험으로 변하는 과도기였는데 다행히 시험도 잘 봐서 600점에서 3점 모자란 성적을 받았다. 그 당시 토플 600점은 하버드, 스탠퍼드, 아이비리그 등의 대학원 입학 시 요구하는 점수였다. 한 달 공부하고 그 점수를 받았으니 영어를 전공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그 당시 산호제 주립 대학교 피아노과 교수님은 닥터 로럴 브리텔 ( De. Laurel Brettell)이었는데, 매우 실력 있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어린 두 아들과 아픈 남편을 보살피느라 학교일을 제대로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터였다. 특이한 점은, 언니는 의사, 오빠는 유명한 미술학자, 본인은 피아노과 박사학위를 가진 집안의 그녀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와 결혼을 한 것이다. 당시 어머니의 반대가 무척이나 심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인 마이클은 조용하고 차분의 성격으로 책을 무척 좋아하는 지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어머니도 지금은 이 사위를 가장 좋아한다고 로럴이 웃으며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육체노동을 하는 그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는데 심장이 나빠서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였다. 아픈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을 건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늘 지친 모습을 보며 늘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는 로럴에게서 배우는 모든 것이 너무나 황홀하기만 했다. 음악을 만드는 것이며, 피아노 소리가 터치에 따라 달라지는 것 등등 예전에 내가 알던 피아노 레슨, 내가 싫어하던 피아노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자마자, 완전히 피아노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레슨시간마다 그녀가 보여주는 프레이징이나 피아노 소리는 꼭 따라 해보고 싶을 정도로 간절한 목적이 되어갔다. 특히나 닥터 브리텔의 피아노 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람마다 피아노 소리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특별히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내가 이제껏 본 사람 중에 가장 소리가 아름다웠던 분은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 ( Russell Sherman) 교수님과 닥터 브리텔이다. 수백수천 명이 모이는 대형 연주회장에서 그렇게 섬세한 소리의 차이를 듣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비교할 수가 없고, 다만 내가 가까이서 들은 피아니스트들을 비교한 것이다. 러셀 셔먼 교수님의 피아노 소리는 천상의 소리 같았다.
피아노에 빠져서 피아노만 치면 행복해지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음악 수업에서 나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음악 지식을 흡수하고 있었다. 음대 건물을 걸어 다니다 보면 연습실에서 나는 각종 악기의 음악 소리, 협주하는 소리, 연주홀에서 연주하는 소리 등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고 난다. 나는 그런 음악 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 행복했다. 음악은 나의 인생이었고 ,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원천이었다. 또한 그때 깨달은 놀라운 사실은 역시 예술의 깊이에는 끝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가지 공예를 따라다니며 배우기도 하고 뭔가를 추구하며 살았었다. 그런데 늘 끝은 있었고, 곧장 지루함이 몰려왔다. 그런데 음악은 달랐다. 음악은 확실히 예술이었고 이 끝없는 심연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그 짜릿함을 충만하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황홀한 음악인생이 그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만만치 않은 미국의 대학교육과 딸리는 영어실력, 아이들 셋 가정을 돌보아야 하는 심적 육체적 부담감에 쉽지 않은 도전임에는 틀림없었다. 편입을 했지만 몇 가지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특히 글쓰기 (Writing) 시험을 통과해야 4학년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예전에 다니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들어둔 ESL 클래스가 도움이 되어 무난히 글쓰기 시험은 통과를 했다. 여러 가지 흥미로운 학과목도 들었다. Oceanography, Stress 풀기, Minority , 그리고 역사과목도 들어야 했다. 이 필수와 교양과목들은 말로만 듣던 미국 대학교육의 철저함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물론이고 쪽지 시험을 자주 치러야 했고, 매주 읽어가야 할 교과서의 분량이 어마어마했으며, 학기당 2번의 리포트, 프레젠테이션까지 사람을 아주 공부하다 피 말려 죽이려는 속셈 같았다. 그 무렵 나는 새벽 두 시 이전에 자본적이 없었다. 저녁을 먹으면 6-7시간 동안 해야 할 공부와 숙제, 그리고 피아노 연습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피아노를 공부하며 음악에 묻혀 살던 대학과 대학원 7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나날로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 나의 두 번째 스무 살은 짜릿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