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버리 고교 시절

by 여행에 와 락

대학원 리사이틀 곡 선정을 하면서 지도 교수님이 컨템포러리 곡을 한 곡 넣었으면 하는 의사를 표시했다. 어떤 경로였는지는 잊었지만 나는 이 베이 지역에 한국 작곡가분이 계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알고 보니 여성 작곡가이셨고 스탠퍼드 음대 피아노과 교수이신 슐츠 교수님의 아내이셨다. 그분의 CD를 사서 듣던 중 쳐보고 싶은 곡들이 여러 개 있어 그분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통화를 하게 되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고등학교 때 사사를 받던 서울대 교수님이신 백병동 교수님의 제자이셨다. 나보다 너 다섯 살 연배이시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대학 시절을 보낸 터이라 말이 잘 통했고 백 교수님과 사모님에 대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도 떨게 되었다. 그분의 악보도 사고 곡 읽기에 돌입했으나 준비할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곡 읽기가 너무 난해해 시간이 모자랄까 불안한 마음에 결국 그분의 곡은 포기했다. 그렇지만 언제 가는 꼭 쳐 보고 싶은 곡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나의 어머니는 집안이 어려웠을 때 나의 성화에 못 이겨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켜주시면서 내가 피아노를 매우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아신 것 같다. 당연히 음악을 전공해야 한다고 여기신 어머니는 어머니의 고교시절 친구인 백병동 교수님의 사모님과 대화를 하셨다. 음대 입시가 지금처럼 치열 한때는 아니었지만 서울대 음대 미대 체대는 실기뿐 아니라 공부 성적도 좋아야만 하는 때였고 예중 예고를 거쳐야만 음대를 갈 수 있는 때는 아니었기에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은 나를 작곡과에 지망하도록 결정을 하셨다. 나도 그때는 어지간히 어리버리했던 모양이다. 작곡?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엄마가 하라니 그대로 따랐다.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고 3 봄학기 중간고사 때까지 나는 작곡과에 들어가기 위해 화성법을 배우고, 시창청음을 준비하고 피아노는 피아노대로 레슨을 받으며 대학 입시의 가장 중요한 고교 시절 의중 거의 2년을 음대 준비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전교 4등으로 입학한 고교 성적이 반 2,3등으로 떨어졌고 체력적으로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성격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결국은 서울대 작곡과를 갈 능력이 안된다는 판단을 받게 되었다. 피아노는 잘 치는데 작곡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왜 그리도 멍청했을까? 지금도 나는 작곡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 결국 음대를 포기하고나니 나는 어깨를 짓누르던 커다란 짐 보따리를 내려놓은 듯했고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몸에 안 맞는 옷을 꾸역꾸역 입고 너무나도 불편하게 살았던 것이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성격도 좋아졌고, 놀랍게도 음대를 포기하고 나니 제일 기뻐하신 분은 나의 어머니였다. 나의 신경질이 사라진 것이다.


만약 내가 작곡과가 아닌 피아노과를 목표로 준비를 했다면 어땠을까? 한 번씩 생각을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피아노를 그만둔 것이 너무나도 홀가분하고 좋았다. 그래서인지 원하는 대학은 못 갔지만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아주 오랫동안 안도하고 행복했었다. 그러다 다시 학교에 들어가 피아노를 하게 되면서 음악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음악을 연주하고, 알아가고, 배워가고, 연주회를 다니고 하면서 '음악이 인생을 이렇게나 풍요롭게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티칭 필로소피 즉,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첫 번째 철학이 되었다. 나의 학생들의 인생이 음악을 통해 깊고 풍요롭고 풍부하게 되기를 원한다. 내가 그랬듯이. 'To enrich their lives through Music.' 당장은 아니라도, 지금 배우는 피아노가 발단이 되어 언젠가 그들의 인생 중 어느 때던지 음악을 즐기고 느끼고, 음악으로 인해 그들의 인생이, 그들의 영혼이 풍요로워 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야단칠 수가 없다. 나 때문에 음악을 싫어하게 되면 안 되니 말이다. 음악은 행복하고 즐겁고 인조이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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