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피아노 선생님이 되다

by 여행에 와 락

피아노를 전공하고자 학교에 들어와 전공 수업을 듣기 시작했을 때, 들어가는 수업마다 교수님들이 첫 시간에 설문 조사를 했다. 왜 음대를 지원했고 왜 해당 악기를 전공하고자 하는가,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는가? 말하자면 넌 왜 음악을 하고 싶니? 장래 희망은 뭐니? 뭐, 그런 질문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는 장래를 생각해보는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이었겠지만 이미 아이들 셋을 기르는 나에게는 졸업 후에 이 전공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피아노를 치는 게 너무 좋아서 전공을 해서 더 배우고 싶었다’

이게 나의 대답이었다. 진심이었고 그 외의 대답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18세의 임 윤찬 군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그는 피아노가 그저 좋은 것이다. 피아노 치는 게 너무 좋아서 산속으로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콩쿠르도 나와야 하고 음악 활동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예전의 내가 생각이 났다. 정말 피아노가 너무 좋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 번도 내가 피아노 교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너무나 지루하고 답답한 직업 같아 보였다. 게다가 음악을 처음 접하는 꼬맹이들에게 CDEFGABC (도레미파솔라시도)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중급, 고급반의 학생들이면 모를까, 찐 초보들을 대체 어떻게 가르친단 말인가? 게다가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데? 항간에는 어린아이들의 영어가 더 알아듣기 힘들다고 하지 않던가? 역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나는 이혼을 하게 되고 경제적 자립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피아노를 가르치는 일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영어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부담되었으나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떠밀려 일단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어느 사립 초등학교의 방과 후 활동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마침 우리 학과 사무실을 통해서 자기 대신 피아노를 가르칠 선생님을 구한다는 한 피아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출장 전문 피아노 교사였고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는 학생을 30명도 넘게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의 한 달 수입이 웬만한 교수 월급보다도 훨씬 많을 정도였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니 토요일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생이 너무 많아 한 가정, 3 학생을 가르칠 수 없다며 나에게 인계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의 행운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 학생 가정은 수준 높은 동네인 로스 알토스의 한 의사 부부 가정이었고, 그들은 나를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여 동네 친구들에게 소개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의 출장 피아노 레슨은 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번 출장 피아노로 시작된 나의 일은 계속해서 출장 레슨을 원하는 학생들로 연결되어 지금까지 줄곧 출장 레슨을 하고 있다.


처음으로 가르치게된 사립학교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지루할 거라는 생각과 초보라서 어떻게 참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싹 사라졌다. 아이들이 너무나 이쁘고 귀여워서 애정이 마구마구 생기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잘 못하는 건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리고 처음인데 잘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러니 인내심이 저절로 생겼고 아이들이 나로 인해 음악을 싫어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어 한마디라도 좀 더 신중하게 하게 되었다. 절대로 아이를 비난하거나 잘 못한다고 지적하지 않아야 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듯, 어른이건 아이이건 칭찬으로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도 실망하지 않고 자신감을 갖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 초보를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날려 보냈다. 순수하고 이쁜 아이들 덕에 나도 즐겁게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행을 오랫동안 하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그립다. 여행 중에 학생 부모들과 이메일을 할 경우가 생기면 하트를 뿅뿅 뿜어가며 아이들에게 보고 싶다고 전해 달라는 사랑 표현을 저절로 하게 된다. 여행을 다녀와서 다음날 바로 학생을 가르치러 가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보고 싶던 아이들을 보면 행복하다. 학생이 많아 스케줄이 너무 타이트해서 늘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다음날 다시 아이들을 보면 다시 힘이 난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막상 닥쳐서 해보기 전에는 그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모를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내가 피아노 가르치는 일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운 좋은 직업인, 행복한 피아노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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