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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Mar 25. 2023

공기반 와인반

디캔팅과 코라빈

와인에 있어서 공기는 너무나 중요하다. 공기는 꼭 필요하기도 하고, 또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기도 하다. 미스터리 한 존재이다. 왜일까? 와인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공기와의  접촉이라던가 공기가 들어가면.. 등등 공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 보았을 것이다.


공기와 접촉이라 하면, 레드 와인을 따른 후에 공기와 접촉한 경우이었을 것이고,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은 와인 병을 오픈한 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공기와의 접촉이 필요한 이유는 레드 와인은 병에서 따른 후 공기와 접촉하게 되면서부터 맛이 부드럽게 변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타이트하게 병 안에 갇혀 있던 와인의 성분이 공기와 접촉하면서 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디캔팅을 하는 이유이고 와인잔을 스월링 하는 이유이다.


디캔팅은 와인의 상태를 부드럽게 해 주기 위해 넓은 용기에 미리 따라두는 것을 말한다. 디캔터의 디자인이 세련되고 예술적인 것이 많아서 이 디캔터가 있는 와인 테이블은 아주 우아하고 멋지게 보인다. 그러나 이런 외관상의 분위기 역할뿐만 아니라 사실 이 디캔터가 없다면 전혀 풀어지지 않은 아주 고약한 맛의 와인을 맛보게 되므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에겐 필수품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 현상은 오직 레드 와인에서만 그것도 가장 깊고 진한 맛을 간직한 캐버네 소비뇽에서 제일 뚜렷하게 나타난다. 캐버네 소비뇽은 일반적으로 떫은 성분인 타닌이 많아 병을 오픈하자마자 마시면 이건 뭐 약은 저리 가라일 정도로 떫고 씁쓸하고 진할 수 있다. 좋은 와인일수록 더 진해서 이런 와인을 오래 두면 수년 후에 마셔도 맛이 그대로 살아 있게 된다.


즉시 마시기에 좋은 피노 누아나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은 딱히 디캔팅을 하지 않아도 우아하고 고상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그렇지만 진한 캐버네의 경우에는 반드시 디캔팅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디캔터가 없다면 널따란 유리 용기에라도 따라 두던지, 와인 잔에, 하다못해 코르크 마개라도 따 두어서 공기와 접촉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 하나 꼭 신경 써야 할 것은 와인잔의 모양이다. 몇 시간 동안 디캔팅 한 와인을 좁은 와인잔에 따라 마시는 건 앞뒤가 안 맞는다. 크고 밑동이 둥근 잔으로 마셔야 이 와인의 맛이 계속 좋아진다.  잔의 모양에 관계없이 잔의 밑동을 잡고 스월링을 하는 것도 와인이 공기에 더 노출되어 부드러운 맛으로 변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루이 마티니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 6-7 시간 동안 준비를 한다. 일단 6-7시간 전에 와인 냉장고에서 꺼내어 상온에 두어야 한다. 레드는 일반적으로 상온으로 마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캔팅을 5-6시간 전에 시작한다. 그리고 마실 때는 반드시 크고 둥근 잔을 사용하며 마시면서 또 변화하는 와인의 맛을 민감하게 느끼며 마신다.


언젠가 키넌 (Keenan) 캐버네를 마신 적이 있는데, 아마도 2005년 빈티지였던 것 같다. 그 해 나파의 캐버네가 아주 맛나고 리치하고 깊은 맛이었다. 그 와인을 따라 놓은지 5시간이 지나도록 맛이 아직 덜 부드러워지는 걸 경험했었다. 이런 와인은 20년이 너끈히 지나도 맛이 그대로 있을 와인이다. 글로 쓰자니 와인 마시기가 왜 이리 복잡한가 싶긴 한데,  한번 이런 와인맛의 변화를 느끼면 오직 이 기대감으로 와인을 마실 때도 자주 생긴다.


와인잔의 모양과 크기를 보면 둥글고 매우 크다. 진한 레드와인에 필수이다.



그러면 공기가 들어가면 안 되는 경우는 언제일까? 와인을 따르고 난 후의 남은 와인 병이다. 집에서 부부가 또는 혼술을 할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와인 한두 잔을 따른 후에도 아직 많이 남아있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3일, 최대 4-5일 안에는 다 머셔야 하는 것이 맞다. 이 남아 있는 와인이 공기와 접촉을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점점 맛이 플랫 해진다.  달고 맛이 살아있던 와인이 밍밍해지고 맛을 느낄 수 없고 그냥 이상한 맛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저렴한 와인이야 어느 정도 마시다가 버린다고 생각하면 되겠지만, 하긴 그래도 막상 버리자면 왜 그렇게 아쉽고 아까운지 마음이 아프다.  


좋은 와인인 경우에는 처음부터 따기가 겁나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부부는 와인을 무척 좋아하지만 와인을 맛을 보기 위해 마시지 취하려고 마시지 않기 때문에 하루에 한두 잔 이상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남은 와인이 걱정되어 못 마시는 날도 많았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기적의 와인 오프너, 코라빈 (Coravin)이다. 한국에서는 코라뱅이라고 하는데, 이 제품은 미국에서 개발된 것이라 불어식 발음을 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


코라빈을 만난 건 2013년, 나파 와이너리인 롬바우어 (Rombauer)에서였다. 롬바우어 오너인 KR과 스티븐이 오랜 친구여서 우리는 나파에 갈 때마다 롬바우어 와이너리에 꼭 들른다. 사람 좋은 KR은 우리가 갈 때마다 롬바우어 와인 8-10 종류와 자기가 소장한 와인 열댓 병을 또 들고 나와서 시음을 함께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얼굴이 빨개져서 사진을 찍는다. 사진은 왜 늘 모임이 끝날 때 찍게 되는지 모르겠다. 다음엔 사진부터 먼저 찍고 그다음에 마시는 걸로. 롬바우어에 갈 때에는 스티븐이 자기 올드 빈티지 와인 서너 병을 꼭 가지고 가서 KR과 또 롬바우어에서 일하는 분들과 함께 마신다.


그해에는 1971 루이 마티니 캐버네 소비뇽 스페셜 셀렉션, 1971 BV 조지 라투어, 1976 샤토 무통, 1994 캘럼 (포트와인), 1997 루이 마티니 진판델을 가져가서 시음을 했다. 전부 귀한 올드 빈티지 와인이라 미리 KR에게 알렸더니 KR이 프라이빗 테이스팅 룸을 준비해 주어 우리가 초대한 손님들과 함께 시음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날 KR이 코라빈을 소개해 주었다. 상품화된 지 얼마 안 되는 따끈따끈한 신상인데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건인 것 같다고 하는데 가격이 350불이라고 했다. 가격만 듣고는 우리와는 인연이 없겠구나 했다. 왜냐하면 스티븐은 불필요한 비싼 물건을 절대 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루이 마티니를 미리 디캔팅하지못해 애러레이터까지 써서코라빈으로 따르고 있다.


KR이 우리가 가져간 와인을 코라빈으로 따르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신기했다. 와인 병의 커버와 코르크를 따지 않고 기다란 주삿바늘을 깊게 병 속으로 찔러 넣어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메커니즘을 설명하자면, 코라빈이라는 물건은 아르간 가스 캡슐을 장착하고 주삿바늘을 통해 와인을 따르는 동안 이 아르간 가스가 병을 채우는 거라고 한다. 병을 열지 않았으니 공기가 들어갈 수 없고, 와인이 따라진 빈 공간은 즉시 아르간 가스로 채워지므로 감쪽같이 새 와인처럼 된 거다. 게다가 코르크의 속성상, 주삿바늘 자리는 저절로 메꿔진다고 한다. 말을 들어보니 아주 그럴듯했다. KR 이 자기가 수개월 전에 코라빈으로 따른 와인이 있다며 맛보라고 따라 주었는데 정말 바로 오픈한 와인처럼 맛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


제일 처음으로 산 코라빈


스티븐과 나는 둘이 서로 의논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빈티지 와인이 굉장히 많이 있다. 이 오래된 와인은 한번 열면  그 자리에서 다 마셔야 한다. 30-40년 된 와인은 3-4일은 커녕 몇 시간도 못 버티고 오픈하는 즉시 늙어 가기 시작한다. 한두 시간만 지나도 맛이 다르다. 맛이 나빠진다. 그리고 여러 번의 올드 빈티지 와인 테이스팅에서 경험한 건데 올드 빈티지 와인은 차가울 때 마시기 시작해서 한 시간가량 지났을 때가 가장 맛이 있다. 온도가 올라가고 시간이 지나면서 맛이 급속도로 나빠진다. 공기와 접촉하면서 맛이 나빠지는 것이다.


코라빈이 있으면 귀하고 값비싼 올드 빈티지 와인을 언제 어느 때든지 한 잔씩 마실 수 있게 되고, 굳이 오래된 와인이 아니라도 한병의 와인뿐 아니라 여러 병의 와인도 조금씩 따라서 와인 테이스팅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우리 둘 다 어느새 하고 있었던 거다. KR의 말처럼 우리는 이 코라빈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날 저녁 롬바우어 와이너리를 떠날 때  우리 손에는 어느새 코라빈과 아르간 가스 캡슐이 몇 개가 들려 있었다.


코라빈을 득템 한 이후의 우리의 와인 생활은 정말 자유로워졌다. 오늘 이 와인 마실까? 이거랑 이거랑 저거 마셔보자! 이게 다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 번은 1964년 루이 마티니 와인을 코라빈을 이용하여 마셨는데 수개월 후에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이렇게 해서 일 년에 거쳐 마셨는데도 맛의 변화가 없는 걸 보고 정말 잘 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떨 때는 1-2년에 거쳐서 마실 때도 있다. 우리가 모르게 맛의 변화가 미세하게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개의치 않고 마셨으므로 전혀 상관없는 듯했다. 스티븐 말로는 오픈한 후 기간이 길어지면 아르간 가스를 조금 더 채워두면 좋다고 한다.


앞에 놓인 것이 요즈음 쓰는 코라빈


이상 와인과 공기의 역학관계를 살짝 다루었다. 진한고 깊은 맛의 레드 와인을 마시려면 공기와 많이 접촉해서 맛이 부드러워져야 하고 와인 병에 남아있는 와인은 병을 오픈함과 동시에 밀려드는 공기 때문에 맛이 변하기 시작하므로 3-4일 안에는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화이트 와인은 공기와의 접촉이 그렇게 눈에 띌 정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화이트 와인은 마실 때의 온도와 맛이 밀접하게 관계가 있다. 다만 남은 와인은 냉장고에 잘 보관했다가 역시 2-3일 내에 마셔야 한다.


깊고 진한 맛의 레드와인을 마실 때는 공기반 와인반일 정도로 와인을 공기에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

그러나 와인 병 속이 공기반 와인반의 경우는 폭망이다.

빨리 마셔서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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