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테크 가이들

by 여행에 와 락

피아노를 시작할 때 대부분의 가정이 피아노 대신 키보드로 시작한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오래 지속할지 몰라 일단 큰 투자를 보류하고 키보드로 시작하는 것이다. 이곳은 거의 다 주택이기 때문에 이웃에 피해가 갈까 봐 소리를 조정하는 기능이 있다는 이유로 키보드를 선택하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미리 나에게 묻거나 양해를 구한다. 나도 초보자는 키보드도 괜찮다며 레벨이 올라가면 반드시 피아노로 대치해야 한다고 미리 말씀을 드린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경우는 좀 달랐다. 래리의 경우 처음에는 아는 친구에게 빌린 키보드로 시작을 했다. 아이의 엄마는 남편이 알아서 피아노를 구입할 것이라고 했다. 몇 주 후, 아주 럭셔리하고 엄청 비싼 키보드가 들어왔다. 대부분 어떤 피아노가 좋은지 내게 상의하는 편인데 갑자기 이런 고가의 키보드라 놀랐다. 피아노를 샀어야 했는데 내심 안타까웠지만 나중에 아이들 레벨이 올라가면 바꾸어도 되니 크게 걱정은 안 했다. 나중에 덕을 본 것은 몇 년 후 이 가족이 가까운 바다에 요트를 정박해놓고 생활을 몇 달간 했을 때였다. 여름과 아직 더운 가을 몇 개월 동안 나는 요트에서 레슨을 했는데 키보드라 요트로 옮겨오기 쉬운 이점이 있어 레슨을 계속할 수 있었다.


세르게이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이들이 처음 2-3년은 엄마인 앤의 집에서 레슨을 했기에 별 문제가 없었는데, 세르게이가 재혼을 하고 집을 사서 정착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빠 집으로 가는 날 레슨 스케줄이 잡혀서 약 2년간 그의 집에서 레슨을 하게 되었다. 첫날 일단 작은 키보드를 가져다 놓았던 세르게이가 피아노를 사려한다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피아노 말고 키보드는 어떨까요?”

“ 아이들이 레벨이 높아져서 키보드보다는 피아노를 사시는 게 좋겠어요.”

“그럼, 진짜 피아노 소리가 나는 키보드는 어때요?”

“ 진짜 소리가 난다 해도 아무래도 달라요. 소리도, 터치도 다르고 페달도 연습해야 하고요.”

“ 키보드도 페달이 있잖아요. 그럼 아주 좋~은 키보드를 사면 어떨까요? 하하하...”


아고~~ 지친다. 이 테크 가이들은 전자로 된 키보드가 정말 좋은가보다. 결국 내가 졌다. 그리하여 세르게이도 키보드를 샀다. 다음 레슨 때 세르게이가 반색을 하며 나를 맞았다.

"키보드 샀어요. 이걸 여기에 연결하면 곡을 쉽게 배울 수도 있어요."

자신이 발견한 피아노 앱을 키보드와 연결해서 칠 수 있다고 흥분해서 즐거워하는 세르게이를 보니 꼭 아이 같다. 역시 테크 가이들은 이런 게 하고 싶은 거구나!


세르게이는 피아노를 꽤 잘 친다. 리사이틀에서 딸과 함께 듀엣을 해 보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예스를 했다. 곡을 솔로로도 레슨해 주고 듀엣으로도 레슨해 주었는데 연습만 하면 꽤 수준급으로 다시 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사교성이 좋고 작은 일도 함께 나누며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함께 있으면 맘도 편하고 즐거워지는 타입이다. 누구에게나 편하고 스스럼없이 대하고 그냥 보통 사람이다. 막내 땰이 태어나기 전에는 저글링을 배우고 있다며 시범을 보여 주기도 하고 레슨 시간엔 꼭 와서 아이들을 격려하고 칭찬해주고 간다. 그에 비해 래리는 말이 적고 조용한 스타일로 그냥 조용히 미소 짓는 편이다. 그가 CEO로 일했던 동안 구글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함께 일하고 싶은 CEO로 수년 연속 뽑혔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둘 다 사진보다 훨씬 잘 생긴 호남들이다. 잘 생긴 사람들이 두뇌도 명석하고 성격도 좋다. 다만 피아노에 대해선 전자 기기에 대한 로망을 못 버리는 진정한 테크 가이라는 사실이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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