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 엘츠 캐슬 (Eltz Castle), 독일
유럽을 다 다녀본 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독일에는 특별히 고성이 많은 듯하다. 나는 중부와 남부 독일만 여러 번 다녀서 북부 독일의 모습은 잘 알지 못한다. 내가 가본 중남부 독일은 로맨틱 가도를 비롯 중세의 모습을 한 그림 같은 마을들이 많아서 그런지 고성들도 동화 속의 성들처럼 아주 멋지다.
수년 전 프랑크푸르트 서쪽에 위치한 라인가우 (Rheingau)라는 지역을 여행할 때 로렐라이 언덕이 있는 라인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드라이브도 좋지만 알고 보니 배로 강을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올 수도 있다고 한다.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굽이굽이 자그마한 산등성에 세워진 고성들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로렐라이 이야기가 나올 법한 신비한 마법 같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침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바로 성 (Burg Rheinstein) 옆에 있어서 들러 보기도 했었다. 어떤 성은 마을 중앙에 있어 친근감을 주기도 했지만 역시 고성은 산 위에 걸려있어야 제격인듯하다. 유네스코에 기재된 곳이기도 하지만 매우 아름답고 로맨틱해서 꼭 추천하고 싶은 관광지이다.
처음으로 가 본 독일의 성은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 성을 계획할 때 참고한 여러 성 중의 하나라고 알려진 노이슈반스타인 ( Neuschawanstein) 성이었다. 이 성의 이름은 도대체 너무 어려워서 외울 수가 없었는데, 세 가지 다른 의미의 단어로 이해하고 나니 저절로 외워진다. 먼저 Neu는 New, Schwan = swan, 그리고 독일어에서 자주 보는 stein 은 castle 성이라는 뜻이다. 새로운 백조성이라는 뜻이다. 예쁜 이름이다. 정신이 미약했던 루드비히 2세가 친구였던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매료되어 착공을 시작했다고 한다. 정신병자 진단을 받아 퇴위된 후 3일 만에 호수에서 익사하는 바람에 완공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원래 블루 프린트보다 1/3로 축소된 규모로 완공되었다고 하니 원래 모습을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한 성이다. 독일에 가면 꼭 가보아야 할 성중에 하나로 꼽힌다.
노이슈반스타인성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또 하나의 성이 있다. 호헨슈방가우 ( Schloss Hohenschwangau) 성인데 루드비히 2세의 아버지인 막시밀리언 2세가 사들여 리모델링을 해서 살았다고 한다. 루드비히도 여기서 자랐다고 하는데 뮌헨 남쪽에 위치한 이 성들을 방문할 때, 보통 이 두 곳을 하루에 방문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우리는 고성을 한 군데 들렸다. 서머하우젠에서 모젤로 오는 길에 엘츠 캐슬 ( Eltz Castle)이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성을 여행지에 끼워 넣은 것이다. 모젤 ( Mozel) 은 리즐링 ( Riesling) 와인 생산 지역으로 라인가우 ( Rheingau)와 함께 일대 전역이 와인 생산으로 유명하다. 올해도 라인가우를 한번 더 가려고 했는데, 엘츠 캐슬과 라인가우, 둘 중하나 만 선택 해야 해서 엘츠 캐슬이 낙점되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엘츠 성을 거쳐 모젤강 유역의 마을, 엔컬쉬 Enkirch에 있는 아파트이다. 엘츠 성은 조금 먼 곳에 있지만 이번에 끼워 넣지 않으면 다시 가기 어려운 외딴곳이라 무리를 해서 계획을 세웠다. 독일을 예쁜 마을들을 차창밖으로 흘려보내며 넓고 넓은 평원을 지나자 이제 성이 가까워 온 듯하다. 산을 올라오지 않았는데 왠지 고 지대에 온 느낌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15분을 걸으면 성이 나온다고 해서 걷기로 했다. 산행이었다. 그런데 내리막길이다. 보통 성은 산 꼭대기에 있는데 왜 내려가지? 게다가 15분은커녕 30분 정도 걸었는데도 어디에도 성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반대 길로 올라오는 사람들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 있다. 독일 사람들을 믿었는데. 틀림이 없이 매사에 정확한 독일에서 15분이 30분이 되다니 실망이 크다.
‘이 길을 어떻게 다시 올라가나?
셔틀도 있다던데 돌아올 때는 셔틀을 타야겠다.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이긴 한 건가?‘
꼬리를 무는 의구심을 가득 안고 30분 정도 걸어 내려가 산기슭 모퉁이를 돌았는데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산이 나타난다. 그와 동시에 눈에 크게 들어온 멋들어진 성!
깜짝 놀랐다.
여기였구나!
계속 의심하면서 내려왔는데 막상 성이 떡 하고 나타나니 오히려 내가 속은 것 같은 느낌이다.
엘츠성을 보자마자 혹시 디즈니가 이 성도 모티브로 참고한 것이 아닐까할 정도로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의 이름은 주변을 흐르는 강의 이름인 Eltz에서 유래되어 지어졌으며 여느 성과는 달리 왕의 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의 성이었다. 귀족의 소유로 가족의 이름이 Eltz라고 한다. 800년 전에 지어져 지금까지 대물림을 하는 성으로 어느 방인가에 현 가족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때 나는 사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대학 동창 중에 우리 과에서 가장 예쁘고 키가 컸던 친구가 독일 귀족과 결혼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였다. 그런데 이 가족은 아닌가 보다. 없다.
8채의 중세 타워로 이루어진 이 엘츠성은 깊은 산중에 지어진 덕에 어떠한 전쟁에도 공격이나 훼손을 당하지 않았다. 내부도 원래 모습 그대로 아주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특별히 이 성에는 보물들이 500여 점이 있는데 성 투어가 끝나면 가이드 없이 개별적으로 갤러리에 가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Burg Eltz , 즉 엘츠성 공식 페이지에서 빌려왔다. 투어를 하는 동안 내부 사진을 못 찍게 해서 하나도 찍을 수 없었기 때문.
가이드를 통해 들은 이야기로는 사진처럼 주방에 음식을 천장에 매달아 놓았던 이유가 쥐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주방에서 빵 굽던 화덕이며 주렁주렁 음식과 고기를 매달아 놓던 것을 재현해 놓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럽에 가서 성을 구경하다 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중세 시대의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과 투구, 칼, 창 등이다. 그런데 옷이며 투구가 하나같이 무척이나 작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일부러 작게 제작해서 전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인즉슨 그 시대에는 체구가 아주 작았다고 한다. 남자의 표준키가 162~165 cm이었다고 하는데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독일 남자의 키가 그렇게 작았다고?
게슈타포, 그 독일군들이? ‘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이 갑옷들이 그 증거다. 사이즈로 보면 44이거나 더 날씬했을 것만 같은 체형이다. 7-800년이 지나면서 그렇게 진화할 수도 있는 거구나. 앞으로 7-800년 후 인류의 키는 평균 2미터도 넘으려나? 하긴 요즘 NBA 농구선수들만 봐도 7피트 (2미터 13센티미터)가 넘은 선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의 고성은 참 근사하다. 상상력 듬뿍 넣고 만들어낸 동화 속의 성처럼 멋지다. 그 시절 그 사람들의 삶의 현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호화롭고 럭셔리했지만, 이면에는 항상 그늘이 존재한다. 노예나 하녀 또는 일꾼으로 노동을 착취당했던 이들의 모습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고성을 방문할 때마다 현란하고 사치스러운 성의 모습과 이들의 고단한 모습이 함께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