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성 이야기

Day 31 햄릿성, 덴마크

by 여행에 와 락

"저기가 햄릿 성이야!

“어? 햄릿 성?”


내 얼굴 옆으로 뒤편을 가리키는 남편의 손을 따라 뒤돌아 바라본 곳은 덴마크에서 스웨덴으로 가는 거대한 페리 위에서였다. 땅의 끄트머리에서 바다를 향하여 고독하면서도 당당하게 서 있는 햄릿 성을 뒤돌아 본 순간 나는 이 성과 사랑에 빠졌다. 햄릿을 닮은듯한 이 성에서 눈을 뗄수가 없다. 쓸쓸하지만 따뜻한, 우아하면서도 강한 모습이다. 한눈에 매료된 이 성을 당장이라도 탐험하고 싶었지만 다음 날 귀국하는 일정탓에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했었다. 이 가슴 설레는 여정이 드디어 오늘, 5년 만에 실현되었다.


높은 곳에 있는 여느 성과는 달리 바닷가 끝에 외롭게 서있는 햄릿 성


"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집필하기 전에 이곳을 다녀갔나요?”

“이곳을 보고 작품의 영감을 받은 건가요?”


가이드 투어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그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질문을 시작했다. 그러나 돌아온 가이드의 대답은 햄릿과 셰익스피어에 대한 나의 상상력과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그녀의 대답이 "노우"였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쓰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와 본적이 없다고 한다. 다만 이곳을 여행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배경으로 삼았다고 한다. 옛적에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 여행을 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을 시켜 여행을 하게 했다는 김영하 작가님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셰익스피어가 바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는 이 성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집필을 했다고 가이드가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혹시 덴마크 역사에 햄릿과 유사한 이야기가 전설이나 역사, 구전으로 내려온 적이 있나요?"


신기하게도 이에 대한 대답은 예스다. 햄릿과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사실 한 가지 이야기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북유럽, 프랑스 영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셰익스피어는 12세기에 쓰여진 암레트(Amleth)이야기를 재구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Amleth에서 마지막 철자인 H를 제일 앞으로 가져가면 Hamlet 이 되는 것만 보아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을 암레트 왕자가 미친척 연기하며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인데, 셰익스피어는 미약한 성정의 왕자의 품성에 좀더 철학적인면을 가미하여 햄릿을 탄생시켰다. 원전의 배경은 1100년대이고 햄릿의 배경은 1200년대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햄릿은 삼촌이 죽은 후 본인도 죽는 비극적인 인물이지만 암레트는 덴마크의 왕이 되어 치세를 한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불현듯 대학교 4학년 때 수강한 햄릿 통독 수업이 기억났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햄릿의 내용을 되짚다 보니 갑자기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문호임을 철저히 실감하던 시절이 생각난 거다. 고어인데다가 셰익스피어의 어마어마한 필력은 영어를 전공하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버겁고 힘겨운 도전이었다. 수업을 위해서 한글 번역과 원서를 함께 두고 읽으면서, 문장대 문장으로 해석을 미리 예습을 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정말 어려운 영어 문장들이었지만 번역본에서 느끼지 못했던 걸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얼마나 위대한 문장가인지 절절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성격과 비유들이 매우 문학적으로 표현되어서 숨은 뜻까지 유추해야 하는 어려운 작품이지만 그의 필력은 한 구절 구절마다 빛이 났다. 아마도 기억의 저편 어딘가에 숨어있던 셰익스피어에 대한 존경과 동경 때문에 햄릿성을 보는 순간 거부할 수 없이 그렇게 단숨에 매료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성 입구를 들어오면 이런 건물이 사방으로 세워져있다.



셰익스피어가 한 번도 다녀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신비에 싸였던 이 성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 상상의 나래를 펴며 셰익스피어의 흔적을 이곳에서 찾으려는 기대를 잔뜩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유명한 배우들이 와서 햄릿 공연도 하고 영화도 찍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또 다른 멋진 공상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마이클 케인, 리쳐드 버튼, 크리스토퍼 플러머, 주드 로 등 유명한 배우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방이 있어서 그 공연들을 상상해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햄릿 성에서 햄릿이 공연된다니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이 성에서 연극을 보자면 진짜 햄릿과 왕과 왕비가 환생한 느낌일 것 같다.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을 만난 곳은 어느 곳이었을까? 시커먼 밤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어느 망대였을 텐데... 매년 8월에 공연을 한다는데, 한여름 밤에 이 연극을 보노라면 시간여행을 하여 그들의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몰래 엿보는 것 같지 않을까?


햄릿 방에 걸려있는 로렌스 올리비에와 비비안 리 사진. 1937년 크론버그성에서 공연했다고 한다.




햄릿 성의 정식 이름은 크론보그(Kronborg)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영어 지명을 사용하여 엘시노어 (Elsinore)라고 했지만 실제 덴마크 지명은 헬싱어(Helsinger)이다. 코펜하겐에서 북쪽으로 약 50분가량 달리면 이 섬의 동북쪽 끄트머리에 헬싱어가 있다. 이곳에서 페리를 타고 20분을 가면 스웨덴의 한 도시에 도착하는데 그곳의 이름은 헬싱보그(Helsinborg)이다. 예전에는 스웨덴의 일부가 덴마크 영토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름이 비슷한가 보다. 햄릿 성은 바닷길목을 지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요새이기도 했지만 사실 스웨덴을 경계하려는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라고 한다.


벽, 바닥, 문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사실 중세에 세워진 고성은 독일에서 자주 보았다. 독일의 고성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외양에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신비스럽다. 왠지 비밀스러운 스토리가 세월만큼이나 켜켜이 앉은 듯해서 매혹적이다. 중세에 돌을 쌓아 만든 고성. 사람들의 이야기, 알려지지 않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인생의 소확행... 어쩌면 우리네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그 이야기들도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놀랍게도 이 햄릿 성도 생각지도 못했던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했다.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이 성은 해상을 장악하던 1500년대에 이 바다 앞길을 지나가는 배들에게 통행세를 물었다고 한다. 그 가격이 후덜덜하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3000불이 된다고 한다. 한 배가 이 길을 통과하려면 3000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이 비용은 덴마크 재정에 큰 수익이 되었는데 역대 가장 유명한 왕 중의 하나인 16세기의 프레드릭 2세는 배의 크기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부과하여 더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성안의 중앙에 있는 분수. 크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특이하다. 성의 외벽과 지붕은 무척 화려하다.



이 성은 왠지 우아함이 곳곳에 배어 있는듯 하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 성의 주인공은 단연코 프레드릭 2세였다. 아마도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결혼 이야기는 아주 흥미로운데, 그가 38세의 만혼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 신붓감인 마가렛(Margaret of Pomerania)이 궁정으로 왔다고 한다. 그녀가 올 때 한참 어린 사촌동생 소피를 함께 데려왔는데, 38세의 왕은 신부인 마가렛 옆에 조용히 서있던 13살의 소녀에 반했다고 한다. 결국 프레드릭 2세는 14살의 소녀 소피와 결혼을 하게 되고 그들의 결혼생활은 아주 행복했다. 7명의 아이들을 얻은 것은 물론, 프레드릭 2세는 평생 소피에게 충실한 남편으로 후궁이나 불륜을 전혀 저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크리스천 4세는 아버지와는 완전히 반대로 천하의 바람둥이였다고 하니 아무리 아버지가 모범을 보여도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사진. 프레드릭 2세와 소피 왕비의 밀랍 인형]


. 역대 왕과 왕비의 복식을 시대별로 전시해 놓았다. 벽에는 돌아가며 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시대순으로 그려져 있다.


처음에 시집 온 소피가 코펜하겐에서 왕을 따라 이곳에 왔을 때는 15세기에 처음 지어진 그대로 성의 외곽 벽과 최소한의 건물뿐인 성이었는데, 그래서 소피는 이곳에 오는 걸 싫어했다고 한다. 결국 왕은 왕비를 위해 지금과 같은 멋진 성으로 증축을 했고 그 이후 이들은 여기서 성대한 파티를 여는 등 가장 자주 애용한 왕과 왕비로 기록된다고 한다. 1700년대가 지나면서 왕과 가족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군대가 대신 들어와 주둔하게 되었다. 이는 192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마지막 군대가 아주 나간 것은 1999년이었다고 한다.


두구두구두구...... 쾅 쾅 쾅 쾅.......

군악대가 드럼을 울려대면 연이어 축포가 울려 퍼진다.


사랑과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왕으로 기록되어 있는 프레드릭 2세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유럽의 왕과 왕비들 그리고 귀족들을 초빙하여 성대한 파티를 자주 열었다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큰 무도회장은 중세의 댄스음악을 연주하는 음악 밴드와 단아한 춤을 추는 남녀들, 먹고 마시며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로 꽤나 시끌벅적했을 것이다. 프레드릭 2세는 독특한 자기만의 건배 퍼포먼스를 파티때마다 행했다. 그가 건배를 하려고 잔을 들면, 왕의 군악대가 드럼을 두구두구 두구두구 울려댄다. 그러면 그것을 신호로 밖에 있는 트럼펫 주자들이 트럼펫을 불었고. 그를 신호로 축포를 쏘았다고 한다. 대포를 얼마나 많이 쏘았는지 때때로 성의 커다란 창문들이 깨지곤 했는데 왕은 그것이 자신의 부와 권력의 상징이라며 전혀 개의치 않았다. 또 왕의 침실과 왕비의 침실은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방을 두개 가진 것도 부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보면 방은 두방 다 조그맣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방은 일부러 작게 만들고 벽난로는 큼직하게 만들어 두었다고 한다. 물론 이 두 방 사이에는 통하는 문이 있어 부부 금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듯하다. 왕의 침대의 사방에 포스트를 올리고 이를 화려한 커튼으로 막은 이유 역시 추위를 막기 위해서였다는데 내 눈에는 화려한 드레이프가 멋지게만 보인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무도회장. 62m x 12m 의 크기로 80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작은 모니터에 3D 입체화면으로 궁정에서 춤추고 먹고 마시는 모습을 비디오로 재현하여 상영하고 있었다.



프레드릭 2세가 썼던 침대. 사방의 커튼은 추위를 막기위함이었다고 한다.



남자들이 모여 사냥을 한다던가 모임을 할 때면 왕비와 공작부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따로 사교 모임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 방에 그때의 식탁이 재현되어 있었다. 왕비가 식사를 하며 다른 여인네들과 사교를 하던 이 방 저쪽 구석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들어 2층 정도 되는 높이에 구멍을 두 개를 뚫어 놓았다. 사교 모임이 있을 때 프랑스에서 데려온 유행가 가수가 이 구멍에 걸터앉아 노래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 시절의 식탁의 먹거리중 가장 비싼 것은 레몬이었다고 한다. 지금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레몬 하나에 700유로 정도였다고 하니 후덜덜한 가격이다. 북구유럽이라는 위치를 생각해볼 때 레몬을 공수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쉽게 예측해 볼 수 있다. 약 16세기에는 식사 시에 자신의 나이프를 지참을 하고 식사 초대에 응했다고 한다. 음식을 자를 나이프는 있었으나 포크는 없어서 손으로 집어 먹었다고 하는데, 포크가 없었다는 게 참 예상외다. 하지만 수저는 있었을 것이다. 수프를 떠먹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필수였을테니.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을 때 발달하는 음식이 국이고 수프이다. 얼마 안 되는 재료를 물에 넣고 끓여 양을 늘려 두고두고 먹어야 했을테니 말이다.


왕비가 다른 왕비나 공작부인들과 사교를 했던 식탁이다.



왕비의 사교모임 방. 거대 태피스트리 아래 식탁이 보이고 천장화도 특이하다.



가이드와의 투어가 끝난 후 우리는 던전을 찾아 나섰다. 일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인 알함브라 궁전의 기억을 보면 알함브라 성의 던전이 나온다. 나는 그 드라마를 통해 성에는 던전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는데 이 성에서는 대놓고 던전에 가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이곳에 덴마크인들의 수호신과 같은 전설적인 인물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홀거 단스케 ( Holger Danske)로 꿈속에서 덴마크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보고 있다가 덴마크에 위기의 순간이 오면 잠에서 깨어 나라를 구한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안내인들은 던전에 꼭 가보라고 권한다. 던전은 땅속으로 굴을 파놓은 곳이다. 여느 성에서는 주로 죄수나 노예들이 수감하던 곳인데, 이 성에서는 던전을 군인들의 막사로 썼다고 한다. 막상 가보니 어떻게 군인들을 그곳에서 살게 했는지 말도 안 되게 처절했다. 난방, 온방은 물론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그저 동굴 같은 곳이다. 동물들도 그런 곳에서 살게 할 수는 없을 곳에 군인들을 수세기 동안 수용했다니 그 당시의 군인의 위상을 알 것 같았다.


전설속의 영웅, 홀거 단스케 (Holger Danske)의 상. 말하자면 '잠자는 영웅'인 셈이다.


던전은 돌로 만든 공간일 뿐, 사람이 주거할 수 있는 어떤 시설이 되어있지 않다.]
던전은 마치 미로처럼 끝이 없이 여기저기로 뻗어 있었다


던전 방문을 끝으로 성문을 나섰다. 아주 흡족한 마음과 가벼운 발걸음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 찬 성을 둘러보고 오니 마치 프레드릭 2세의 일대기를 영화로 보고 나온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셰익스피어와 햄릿에 대한 환상을 품고 들어갔었는데, 프레드릭 2세와 소피를 만나 사랑스러운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다. 이젠 햄릿 성이라 아니라 크론보그성으로 바꿔 불러야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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