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0. 코펜하겐 ( Copenhagen), 덴마크
일치감치 강아지를 맡기러 떠난 올레와 도르테를 배웅하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 내일 남부 프랑스로 여행을 떠나는 올레와 도르테가 강아지를 맡아줄 사람들에게 갔다. 일찍 떠난 그들을 배웅하느라 잠을 설친 우리는 오래 늦잠을 자고 느지막이 브런치를 먹은 후 빈둥거리고 있다가 오후에 동네 구경을 하러 나섰다. 그동안 차로만 다니느라 그냥 지나치기만 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거리가 있을까, 걷는 내내 감탄해 마지않았다. 집들도 업스케일의 저택이 많았지만 5분 정도 걸어가니 다리 밑으로 강이 흐른다. 폭이 좁은 강 양옆으로 집들이 보이는데 집들마다 계단으로 내려오면 강에 작은 보트들이 하나씩 매달려 있다.
우리 바로 앞의 집에서 사람들이 강으로 내려와 걸려있던 배를 띄운다. 낚싯대를 들고 온 남자 두 명이 탄 그 배가 어디로 가나 보았더니 다리 밑을 통과해서 다른 편으로 떠 간다. 뒤돌아 다리 저편으로 가보니 이건 강이 아니었다. 커다란 호수로 연결된 지류 같은 것이었다. 이 호수에 올레의 보트도 정박해 있다고 한다. 스티븐은 그의 세일보트에 올라 함께 세일링 한 적이 있다는데, 올레가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 우리와 함께 세일링 할 기회가 없다고 했던 게 여기였구나 그때서야 깨달음이 왔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또 다른 호수가 나온다. 길에서 연결된 곳이라 배도 있고 물도 있는 이곳에 아이들도 놀 수 있도록 놀이터도 만들고 노천카페가 이 모래사장 바로 옆에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아이들을 데려온 젊은 엄마들, 중년 부부 등 손님이 꽤 많다. 우리는 이곳도 패스하고 동네 구경을 계속했다. 이 근방에서 여기가 다운타운인 모양이다. 여러 상점과 마켓들, 예쁜 카페, 꽃가게, 베이커리 모두 모여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발길을 집으로 빠르게 돌렸다. 오늘은 안드레와 앤 마리의 집에 저녁 먹으러 가는 날이다.
스티븐이 안드레와 앤 마리를 처음 만난 것은 20대 때였다고 한다. 그때 자주 덴마크에 자주 놀러 오던 스티븐이 여기서 만난 여자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코펜하겐 시내에서 피자를 먹고 있는데, 자기네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자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30대의 부부 중 남편인 카알이 말을 걸어왔다. 아마도 카알이 스티븐을 아주 좋게 본 모양이다. 자기 처제의 남자 친구가 미국 사람이라며 지금 자기 집으로 가서 안드레를 만나보자고 제안을 했고 스티븐은 마지못해 따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만난 사람이 안드레와 그의 아내 앤 마리이다. 안드레는 미국 사람이고 앤 마리는 덴마크 사람이다. 안드레는 건축가이고 앤 마리는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6년 전에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통 기억에 없다. 오늘 저녁을 먹으러 오라고 해서 처음 만나는 기분으로 집으로 갔다.
안드레는 건축가로 코펜하겐 지하철을 설계하고 시공한 사람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주 유능하고 꽤 높은 직위에서 책임을 진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안드레도 성실하고 세심하면서도 유머감각이 아주 뛰어나고 창의력이 여기저기서 툭툭 튀어나오는 사람이다. 앤 마리는 전형적인 북구 미인으로 키가 크고 금발, (자기는 밝은 갈색이라고 함), 의 미인이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주름이 자연스럽게 얼굴에 드리웠지만 옛 사진을 보면 영화배우 린지 와그너, 일명 소머즈 혹은 쉐릴 랏드를 닮았다. 그리고 북구사람답게 키가 훌쩍 컸다. 그러니 안드레가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듯. 그러고 보니 네덜란드에서 일이 생각난다. 네덜란드인이 키가 큰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보통 네덜란드인들 사이에 껴있을 때 마치 걸리버 나라에 온 기분이었다. 여자들도 얼마나 키가 크고 예쁘던지 모델들이 길거리에 그냥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모델들이 북구 유럽인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의 학생 엄마 중 한 분도 키가 180 정도에 금발에 엄청 늘씬하다. 아마도 조상이 이쪽 나라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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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마리는 초등학교에서 영어와 덴마크 국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녀는 아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그녀뿐 아니라 내가 만난 모든 덴마크인은 영어가 유창하다. 이 나라의 영어교육이 궁금해진 나는 앤 마리에게 도대체 덴마크는 영어 교육을 언제 시작하느냐고 물었다. 유치원 때 시작을 하는데 놀이로 영어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재미있어하고 스트레스 없이 자연스럽게 영어가 스며들도록 한다는 거다. 내가 아이들을 미국에서 키워본 바에 의하면 아이들은 일단 많이 들어야( listening) 하는 것 같다. 막내딸이 4살 때 미국에 왔는데 오자마자 무조건 프리스쿨 ( Preschool)에 넣었다. 프리 스쿨은 정규 교육과정인 유치원에 가기 전에 보내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나는 4살짜리를 종일반에 넣었다. 아침부터 3:30까지 있다가 왔는데, 말도 안 통하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만은 그래도 재미있다고 매일 가고 싶어 했다. 몇 주 지나더니 단어는 하나도 말로 못하는데 영어 억양을 노래 부르듯이 따라 부른다. 샬랄 샬라~ 영어 단어도 아닌 말들을 집어넣어 억양으로 말을 배우는 거였다. 그러더니 3달째부터는 막힘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5살짜리 딸은 말을 하는데 6개월이 걸렸고 ESL 특별반 ( 외국 아이들끼리 모아 두고 영어로 수업하는 클래스)에 있던 8살짜리 아들은 말하고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데 제일 오래 걸렸다. 역시 영어는 어릴수록, 그렇지만 부담 없이 놀이로 배울 때 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린아이들의 영어교육은 무조건 하루에 몇 시간씩 영어 놀이 TV 프로그램을 틀어주어 듣든 말든 보든 말든 자연스럽게 귀에 익혀지게 하라고 조언해 준다.
안드레와 앤 마리는 큰 주택을 팔고 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방은 두 개지만 주방도 다이닝 룸도 리빙룸도 모두 큼직큼직하다. 그런데 2층에 사는 그들의 아파트 앞에 바로 자기네 뒷마당이 있다. 이 마당은 모든 세대가 가질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않아 티요가 나야 소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파트 측에 마당 소유권 신청을 하고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4년 만인 작년에 드디어 불하를 받아 사과나무도 심고 바비큐에 테이블과 해먹까지 설치해서 마당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저녁을 먹으며 어떤 대화 끝에 앤 마리가 한 말과 모습이 한동안 기억날 만큼 인상적이었다. 자기는 행복하다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 말하던 그 모습. 삶을 살면서 나는 행복하다며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늘 무언가를 더 갖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고, 더 잘 나가고 싶고, 더, 더,라는 욕망이 우리의 인생을 망치는 건 아닐까? 인생을 살아보니 누구와 사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어디에 사는가도 중요하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가는 더욱 중요하다. 그렇지만 얼마나 가졌는가는 순전히 상대적이어서 마인드 컨트롤을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상대적 빈곤감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포인트인 것 같다. 나는 세계에서 10위권에 드는 슈퍼 리치 집에 가서 그들의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다. 그들의 삶은 말할 필요도 없이 현실성 없는 비교불가의 삶이다. 차마 흉내 낼 수도 없는 부다. 하지만 그들의 소박한 성품 때문인지 모르지만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구나 느껴진다. 다른 부모들처럼 아이들에게 성심을 다하고, 때로는 아이들을 혼내며 하나 둘 셋을 세고, 크리스피 크림 도넛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키우는. 그리고 중급정도 되는 마트에서 옷과 장난감을 사주는 일상을 보면 그렇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그들의 호화로운 삶의 모습, 집에 일하는 사람이 열댓 명이 있다던가, 자신의 집 주위의 블록 전체를 사들인다던가, 호화요트나 개인 제트기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을 내 현실에 대입한다면 나는 그 즉시에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반드시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라는 마인드셋을 세우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걸 제법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앤 마리처럼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행복하다. 같이 사는 옆지기 때문에 행복하고, 잘 자라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 때문에 행복하고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의 시간과 여유 때문에 행복하다. 행복의 가치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내가 주도권을 갖고 산출해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