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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tyle by AK Jun 22. 2021

와인 상전 모셔오기

미국에는 상업적으로 와인을 보관해 주는 창고시설이 있다. 이름하여 커머셜 와인 셀러 (Commercial Wine Cellar)! 집에서 제대로 보관하기 힘들 때, 고가의 와인을 완벽하게 보관해야 할 때 이용하는 시설인데 가끔 방문하면 많은 사람들이 들낙이며 자신의 와인을 관리하는 것을 보고 이런 비즈니스도 잘 되는구나 싶어 놀랐었다. 관리인 말에 의하면 자리가 없어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곳에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몸 한번 꿈쩍 안 하면서 최적의 보온 보습 상태로 살고 계신 와인님들은 상전이시다.  


스티븐은 1970년대부터 와인을 케이스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참고로, 와인은 박스라고 하지 않고 케이스라고 한다. 12병의 와인이 한 케이스에 담겨 출고되는데, 와인 수량을 일컬을 때 한 박스라고 하지 않고 한 케이스, 두 케이스라는 단위를 쓴다. 구매 시에도 '한 박스 주세요'라고 하지 않고 '한 케이스 주세요'라고 해야 한다. 그 당시 스티븐이 사 모은 와인은 주로 1960, 70년대 나파 와인과 프랑스 샤토 와인이고 약간의 80, 90년대 와인이 있다. 그 외에도 좋은 포트와인을 모은다. 그는 와인을 케이스로 살 때마다 산타모니카에 있는 커머셜 와인 셀러에 가져가서 자기 부스에 보관을 해 왔다. 완벽한 습도와 온도로 그리고 전혀 움직임이 없는 완벽한 상태로 40년 이상을 보관해 온 것이다.  



이 커머셜 와인 셀러는 장방형의 단층 콘크리트 건물로 그 안에 들어가면 문들이 즐비하게 수십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복도가 여러 개가 되니 아마도 수백 개의 부스가 있는 듯하다. 이 중 하나의 부스를 렌트하여 구입한 와인을 보관하고, 또 필요할 땐 가서 꺼내가고를 반복한다. 특히나 귀한 와인은 이렇게 보관을 해야  맛의 변화가 최소화되므로 이는 와인 수집가들에게 흔히 있는 일인 듯하다. 수백 명의 고객이 이를 사용하고 있으니.  


우리는 주로 알래스카에 가기 전과, 나파의 스티븐 친구의 와이너리를 방문하기 전에 샤토 와인과 올드 빈티지 나파 와인을 가져가느라 이곳을 자주 방문했었다. 수십 년 동안 이를 반복했던 스티븐은 우리 집에 크고 성능을 믿을만한 냉장고가 3대로 늘어나자 자기 와인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일단 거리가 너무 멀어서 불편하고, 굳이 쓸데없이 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없으니 안 가져올 이유가 없었다.


1968년 루이 마티니 상자를 개봉하여 와인을 꺼내고 있는데 …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모습.



모든 면에서 꼼꼼하고 철저한 스티븐이 이 귀한 와인을 옮기는데 대충 옮겨올 리가 만무다. 말 그대로 모.셔.왔.다. 일단 아이스박스와 온도계를 여러 개씩 준비하고 얼음을 이용하여 아이스박스의 온도를 50도 (섭씨 10도 내외)로 먼저 맞추어 놓았다. 혹시 망가질지 모를 온도계를 대비하여 온도계 2-3개씩 넣어 비교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제 와인을 옮길 차례이다. 이 와인은 한 번도 건물 밖을 나와 본 적이 없는 와인들이다. 온도에 너무나 민감한 올드 빈티지라 최대한 빨리 옮겨야 하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옮겨야 한다. 오래된 와인은 너무나 민감해서 상온에 나와 몇 시간이 지나면 맛이 쉽게 나빠진다. 예전의 멜 깁슨의 영화, ' Forever Young'에서 처럼 냉동인간이 깨어나 세상에 나오면서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는 것과 같다. 와인의 노화의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기 때문에 그간의 완벽한 조건을 조금이라도 해치지 않기 위해 빠르고 조심스럽게 옮겼다. 또한 그동안 눕혀져 있던 그 상태를 그대로 옮겨야 해서 와인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고 수평상태로 옮겼다. 다행히 많은 와인들이 아직도 와인 케이스에 그대로 누워있었기에 그 케이스 상태 그대로 수평상태로 움직임 없이 옮겨다가 아이스 박스에 넣었다. 약 150병의 와인님을 그렇게 모셔다가 잘 눕혀드리고, 차를 출발했다. 차 안의 온도도 에어컨 팡팡으로 엄청 춥게 하고서 달린다. 6시간의 드라이브 동안 두 번을 쉬었는데, 그때마다 또다시 아이스박스를 열고 온도 체크를 한다. 좀 더 차가운 것은 괜찮으나 더우면 안 된다.


집에 와서도 같은 일을 또 반복해서 와인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이번에는 케이스에서 한병 한병 수평으로 꺼내어 수평으로 다시 냉장고 선반에 눕혀놓는다. 움직이면 안 돼, 흔들려도 안 돼. 조심조심! 와인 냉장고에 채울 때는 귀하고 오래된 와인을 아래칸에 넣는다. 이유는 차가운 바람이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노고와 세심함으로 모셔온 와인 상전님들이 우리 집 180병 들이 와인 냉장고 3대에서 최적의 공기와 습기를 드시면서 이슬처럼 영롱하게 살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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