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Style by AK Oct 04. 2024

수퍼 리치의 진짜 가치: 가족과 품격



나는 세계 5, 6위권 부자의 가정에 수년간 드나들며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그냥 부자가 아니라 수퍼 리치이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삶의 큰 틀을 엿보게 되었는데, 그들이 사는 모습은 우리의 일상과 닮기도 하고, 또 다른 면도 있었다. 미국의 보통 가정들처럼 그들의 삶도 가정과 아이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다만, 시간이 많다 보니 가족끼리 더 깊은 결속을 유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유가 있을 때마다 여행을 다니고, 취미 생활을 즐기는 것도 그들의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부분은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삶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부자들이 결코 부를 티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부유한지 눈치채기 어렵다. 명품 옷이나 가방은 아마 특별한 파티에서나 사용하는 듯하다. 평소에는 편한 티셔츠에 반바지나 레깅스를 입고, 화장기 없는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간다. 사실 미국 사회에서는 외적인 과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클래스가 있는가’, ‘인격적으로 성숙한가’가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진다.


오랫동안 이 특별한 가정의 자녀들을 가르치며, 나를 감동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가족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모습이었다. 한 번은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나가려던 순간, 래리가 아이 쪽을 바라보며 세상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 아빠가 아이를 보고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구나’ 하고 감동하던 순간, 그 웃음이 향한 대상이 따로 있음을 알았다. 바로 아이 뒤에서 등장한 엄마를 보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아내를 보고 그렇게 따뜻하고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참 인상 깊었다.


또 다른 날에는, 서핑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12월에 그녀가 일주일간 서핑 여행을 떠나도록 배려하고, 그동안 아빠가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며 이 부부의 독특한 가족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가족 모두가 물을 좋아해서, 집 근처에 요트를 정박해 놓고 한두 달씩 스킨스쿠버를 즐기며 바다에서 보내기도 한다. 그 덕분에 나는 요트로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가정은 이혼한 부모의 가정이었다. 이 아이들은 요일에 따라 엄마 집과 아빠 집을 오가며 생활했다. 미국에서 이혼 후의 자녀 양육 방식은 보통 일주일 중 반은 아빠 집, 나머지는 엄마 집에서 지내고, 주말은 격주로 나누는 식이다. 휴가나 여행이 있을 때는 조금 더 융통성 있게 스케줄을 조정하곤 한다.


이 가정에서는 내가 약 2년동안  아빠, 세르게이 집에서 레슨을 했는데, 그 이유는 레슨이 있던 화요일이 아이들이 아빠 집에서 지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빠 집에 오면 아빠는 그날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쏟는다. 공부도 함께하지만, 재미있는 일거리를 마련해 아이들과 즐길 시간을 만든다. 자전거를 타거나 마당에서 프리스비를 던지며 강아지들과 놀기도 하고,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면 "부자라고 해서 다를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런 가정들만의 독특한 점도 있다. 예를 들어, 집 안 인테리어가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으로 꾸며져 있거나, 모든 가구가 천으로 된 안전한 재질의 가구로 채워져 있다. 이런 점은 보통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집 내부가 어마어마하게 커야 하거나,  모든 가구를 맞춤형으로 교체하는 데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본 부자들의 삶은 럭셔리 그 자체다. 헬기 이착륙이 가능한 대형 요트를 두 대나 빌려, 선장과 요리사, 아이들을 돌봐주는 스태프 등 수십 명의 크루와 함께 동남아 바다로 전용기로 이동해 휴가를 즐기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 만에 요트를 정박해 놓고 여름 내내 워터 액티비티를 즐기며 지내기도 하고, 원하는 산과 바다 곳곳에 집을 장만해 놓고 전용기로 이동해 스키와 서핑을 즐긴다. 공휴일이나 아이들 방학이 되면 전용기로 반드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런 럭셔리한 삶을 살면서도 평소에는 전혀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편하게 말을 걸고, 대화에서도 어떤 거리낌이 없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단연코 ‘가족’이다. 특히, 아이들이 그 중심에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갈등이 생기면 충분히 대화를 나누며 해결한다.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라면, 부모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들의 삶은 화려하지만, 그 뿌리는 가족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 속에 깊이 박혀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이 가정의 아이들이 전혀 스포일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철저한 예절 교육을 받고, 검소하고 보통의 삶을 배우며 자라고 있다. 내가 가르쳐 온 아이들은 4살부터 대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였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잘난 척하거나 건방진 태도를 보인 적이 없다. 보통의 다른 가정 아이들처럼 예의 바르고,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들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다. "없어서 못 주는 부모보다, 있는데도 안 주는 부모가 더 존경스럽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 말이 정말 실감이 났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의 부모 중에는 CNBC 같은 경제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이 있다. 그들의 회사 이야기가 경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인터뷰도 종종 한다. 그런데도 부모로서의 이들은 그냥 평범한 부모들처럼 보인다. 아이들과 생일 파티를 하고, 리사이틀에서 연주할 피아노곡을 함께 연습하기도 하고, 학기가 끝나면 아이들 친구들을 초대해 풀 파티를 열어주는, 그런 평범한 부모다. 예쁜 옷을 입고 있어서 물어보면 아이들의 옷과 장난감도 중저가 매장인 타겟에서 산다고 한다. 식사로 건강식을 챙겨 먹는 것도 일반적인 가정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부유하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이들 가정에는 아이들을 돌보는 내니가 몇 명씩 있고, 요리사가 저녁을 준비해 준다. 그뿐 아니라, 집안의 경제 활동을 책임지는 팀이 따로 있고, 스케줄을 관리하는 사람, 보안을 담당하는 사람들, 가정의 필요를 해결해 주는 다양한 스태프들이 있다.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스태프 대표가 따로 있어 집안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의 저택 입구에는 게이트가 있고 이곳에는 상주하는 보안 담당 2명 정도가 함께 출입을 관리한다. 집에 들어오면 늘 한두 명의 내니와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 뭔가 고치는 사람들, 요리사 등등 사람들이 참 많은 사람들이 같이 지낸다. 5시나 6시쯤 퇴근하는 시간까지 집안이 늘 북적 거리는 편이다. 집이 넓어 티가 나지는 않지만 나처럼 프라이버시가 중요하거나 조용한 시간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고통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니( Nanny)는 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단어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를 내니라고 부른다. 일반 가정에서는 상시 내니를 두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파트타임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내니의 주요 역할은 아이들을 학교에서 데리고 오거나 방과 후 활동에 데려다주는 일, 간식을 챙기고 부모와 상의해 스케줄을 짜는 일 등이다. 때로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동반하기도 하고, 오래된 내니는 비서처럼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아는 경우도 있다. 혹시 아래로 갓난아기가 태어나면 이 아기만 전담하는 진짜 ‘보모’가 고용된다. 이런 보모는 엄마의 출장이나 가족 여행에 따라가기도 한다. 어떤 가정은 같은 내니와 10년 이상 함께 지내며 가족처럼 지내기도 한다.


내가 깜짝 놀랐던 것은 이 내니들이 아이들의 예절 교육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부모가 부재 중일 때 아이들이 무성의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할 기미가 보이면, 내니들이 아주 철저하게 그 싹을 잘라내는 모습을 보았다. 예를 들어, 피아노 레슨이 끝나면 아이들이 꼭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하고,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며 배웅하는 것을 매번 잊지 않도록 가르친다. 문 앞까지 따라 나가 배웅하는 것까지도 예절 교육의 일환이었다. 이처럼 식사 예절이나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가르치는 내니들이 아이들의 인성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그러니 내니의 인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아는 바로는, 이 내니들은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그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한다. 동시에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의 성장에 깊이 간여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갑부들의 내니들 중에는 석사 학위 보유자가 적지 않다. 그만큼 그들은 교육과 인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절 교육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가르치는 모든 학생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예절을 아주 철저히 가르친다. 만약 학생이 한눈을 팔고 피아노 연습을 미루고 있으면, 부모는 아이에게 선생님께 사과하도록 따끔하게 지시한다. "선생님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며 예의를 지키도록 훈육하는 것이다. 내가 떠날 때도 항상 아이들이 배웅하고 인사를 하도록 지도한다. 미국에서는 예의 바르고 겸손하며 점잖은 태도가 그 사람의 클래스를 나타낸다는 인식이 있다. 작은 배려와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사람의 품격을 결정하는 문화가 있다. 한 번은, 내가 학생을 기다려야 했던 일이 있었다. 학생이 귀가하는 데 5-10분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피아노 옆에서 조용히 기다리려고 했는데, 그 학생의 엄마와 고등학생 누나가 각자 방으로 가지 않고 나와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나를 혼자 두는 것이 미안해서 곁에 있어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작은 배려 속에서 참된 예절과 따뜻함을 배운다. 작은 행동 속에서 그들의 마음과 품격을 느끼며, 나 또한 그 따뜻함을 내 삶에 담아 가게 되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