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놀란 것은 아직도 때마다 카드를 주고받는다는 것이었다. 미국에 온 지 27년이 되었건만, 사실 이미 그때도 한국에서는 카드를 내려놓은 지 오래되었는데, 미국에서는 아직도 카드를 쓴다는 것에 충격을 받곤 한다.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한국 문화권에서 살며 한국사람들과만 교류하던 때의 나는 한 번도 카드를 써 본 적이 없다. 물론 아이들 친구들이나 나의 지인들의 생일에는 카드를 사서 선물과 함께 보냈지만 그 외 크리스마스라던가, 여러 행사와 절기를 따라 카드를 보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대형 마켓의 카드 코너에 가보면, 각종 특별한 날과 상황에 맞춘 카드들이 진열된 코너가 거의 한 줄을 꽉 채우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생일, 기념일, 감사, 축하, 위로 등 다양한 주제에 따라 카드를 고를 수 있고, 그 종류도 무척 세분화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이 카드 문화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저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은 따뜻한 표현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다. 카드 섹션에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세 개의 카드 브랜드 회사의 카드들이 다양한 기념일과 상황에 따라 진열되어 있다. 생일만 하더라고 40세, 50세,... 90세, 남편을 위한, 아내를 위한, 딸, 아들, 손자, 손녀를 위한, 시누이나 올케 (sister-in-law)를 위한, 엄마, 아빠, 시어머니, 시아버지, 사위, 며느리, 친구,.... 등 온갖 관계의 생일 카드가 진열되어 있다. 아내나 남편을 위해서 섹시한, 유머러스한, 종교적인.. 등등의 카테고리도 있다.
비단 생일뿐 아니라, 크리스마스에도 남편 아내, 딸, 아들...... 같은 식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상황과 특별한 기념일의 예를 들어 보자면 생일, 크리스마스, 졸업, 아픈 사람에게, 상을 당한 사람에게, 부활절, 결혼기념일, 결혼, 베이비샤워, 아기출산, Thanksgiving, 세인트 패트릭데이, Thank you card, Thinking of you, 발렌타인스 데이,.... 거의 모든 경우에 카드를 보낸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카드를 많이 보내다 보니 보통 가정에는 여분의 카드가 있게 마련이다. 그 예로 카드 보내는 일이 취미일 정도로 카드를 남발하는 우리 시누이의 집에는 모든 경우의 카드가 비치되어 있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 카드 컬렉션 박스를 열어서 셀프 샤핑을 한다. 급한 경우 우리가 빌리는 적도 있고, 급할 때 쓰라고 아주 오래된 (오래돼서 너무 촌스러운) 카드를 우리에게 리사이클하기도 한다.
카드 문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이 문화가 싫지 않다. 다양한 이유로 카드를 받곤 하는데, 특히 힘든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큰 위로가, 즐거운 일에는 두 배의 기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 결혼했을 때, 시누이의 절친이자 남편과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Cathe가 우리 결혼을 축하하는 카드를 보내줬다. 원래 프린트된 문구도 감동적이었지만, 그녀가 직접 손으로 써준 축하 메시지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진심을 다해 쓴 그 말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 이후로도 Cathe에 대한 좋은 감정이 남아 있다. 평소에는 대부분의 카드를 버리는 나도, 그 카드만은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또, 6살, 7살 학생들이 수줍게 건네는 손그림 카드들은 정말 소중해서 꼭 보관하게 된다. 가끔 그림을 그리다가 내가 떠올랐는지, 삐뚤빼뚤한 글씨로 “피아노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 있고, 나를 닮은 긴 검은 머리의 여자와 피아노가 그려져 있다. 때로는 구름과 하늘을 그린, 왠지 철학적인 느낌의 그림도 있다. 이렇게 예쁘고 순수한 마음이 가득 담긴 카드를 보면 얼굴에 사랑스러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은 있지만 이를 표현하지 못해 오해를 받거나, 마음이 찝찝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 손 편지를 쓰자니 좀 부담스럽고, 말로 하는 것도 한두 번이고, 이럴 때 카드를 써보자. 카드에 진심을 담아 마음을 전달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감동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