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종알 종알,,..
쉴 새 없이 도란도란 속삭이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은 6살 캘리의 피아노 레슨 시간이다. 캘리는 리틀 맥 라이언이라고 내가 별명을 지어준 귀여운 얼짱 소녀다. 엄마 메리안이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남편과 합류하여 함께 음식을 하는 모양이다.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재미나게 하는 걸까?
2011년부터 지금까지 가르치는 가정이 몇몇 있다. 대부분은 동생의 동생까지 있는 경우이다. 이안(Ian)의 가족도 그 누나인 캘리 때부터 시작해서 아직까지 가르치는 가정이다. 최근에는 엄마인 메리안까지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이들 가정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단란함이다. 엄마 아빠를 중심으로 딸과 아들이 아주 예쁘게 살고 있다. 이 가정에는 두 가지 특이점이 있는데 내가 참 좋아하는 가치를 지녔다. 이 가족은 전통을 함께 만들어 간다. 트래디션을 만들어 가는 것도 참 근사한 일인데, 가족이 함께 도란도란 대화하는 정겨운 모습도 아주 따뜻하다. 사랑이 묻어나는 따뜻함.
내가 레슨을 할 동안 두 부부가 주방에서 도란도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캘리가 처음 피아노를 시작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오늘 직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로 나누는 것일까? 아이들, 가족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저렇게 재밌게 할 수도 있구나!' 나는 이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저녁을 함께 준비하는 것도 부러운데, 음식을 스트레스를 받으며 하는 것이 아니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정답게 함께 하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우리 부부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심각한 대화라기보다는 메리안과 크리스처럼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투머치 토커 남편을 두다 보니 물어보는 것도 많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메리안과 크리스의 부부에게서 부러운 점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보다는, 함께 저녁을 준비한다는 점이다. 나의 남편은 먹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음식 만드는 일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스테이크, 햄버거, 연어 스테이크, 그리고 훈제 연어 카나페뿐이다. 예전에는 이런 음식을 할 때, 남편이 하도록 두었지만 요새는 그냥 내가 한다. 워낙 무엇이든 천천히 하는 남편을 보다 못해 성질 급한 내가 먼저 움직인다. 게다가 연어도 항상 소금 후추로 맛을 낸 스테이크보다는 자꾸 새로운 레시피를 발견해서 요리하다 보니 또 내가 하게 되었다. 음식 만드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남편 때문에 주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음식 준비하는 부부가 그렇게 부러울 수밖에 없다. 요즘 들어 달라진 것은 요 몇 년 내가 몹시 힘들어하자, 그래도 주방에 들어와 거들어 주려고 하는 모습이다. 남편도 늙는가 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 이 가정의 벽난로 위에 장식된 호두까기 인형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한 내가 물었다.
“오홋, 작년보다 호두까기 인형이 더 많아진 것 같은데?”
“보스턴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매년 하나씩 보내 주세요.”
보스턴 출신의 아빠 쪽 조부모님이 그동안 수집하신 독일의 유명 수제 호두까기 인형을 하나씩 보내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도 호두까기 인형을 수집하는 터라 퍼뜩 관심이 생겼다. 독일을 대표하는 호두까기 인형 브랜드에는 스타인바흐 (Steinbach), 울 브릭트 (Ulbricht)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브랜드의 호두까기 인형이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품을 수집한다. 우리는 스타인바흐를 수집하는데 약 12개 정도의 인형이 있다. 이들은 모두 26cm 에서 40cm 정도로 꽤나 크고, 수제 작품이라 정교하다. 게다가 팬텀 오브 디 오페라, 로빈후드, 란셀롯과 같은 인물, 또는 화가, 어부, 와인 메이커 등 직업을 표현한 독특한 인형들도 만들어 팔기 때문에 수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크리스의 부모님이 손주들에게 보내주는 호두까기 인형은 울브릭트와 스타인바흐가 섞여 있다. 우리는 그저 좋아서 모으기만 하는데, 이런 근사한 전통을 만들어내신 그분들이 참 멋져 보인다. 나도 그때 결심했다. ‘나도 아이들이 결혼하면 매년 하나씩 보내줘야지!’ 얼마 전 우리 아이들에게 은근히 떠 봤는데, 아직까지는 그리 관심이 없다. 무섭게 생겼다며 일단은 거부를 한다. 나중에 가치를 알게 되면 좋아하려나, 아니면 내 욕심일까? 일단은 스티븐과 내가 좋아하는 취미이니 수집에 힘쓰는 중이다.
이 가족의 또 다른 크리스마스 전통은 크리스마스 쿠키 만들기이다.
"이거 선생님 거예요."
"어머, 너무 예쁜 쿠키네, 직접 만든 쿠키잖아!"
"주말에 크리스마스 쿠키 만들었어요."
이 가족은 늘 12월 둘째 주말에 크리스마스 쿠키를 굽는다. 보통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든다고 하면 나는 선입견부터 든다. 왠지 나이 든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이 쿠키를 만드셔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젊은 부부는 꼬맹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삐뚤 빼뚤한 쿠키 모양과 장식, 높낮이가 다른 도우의 두께등 귀염뽀짝한 쿠키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아주 프로의 솜씨다. 함께 빚고 굽고 이를 작은 상자나 조그만 주머니에 예쁘게 넣어 장식하고 이름표를 붙여 선물하는 일까지. 함께 하는 상상만 해도 사랑스럽지 않은가? 얼마나 도란도란 정답게 함께 일을 할까? 그들의 정다운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나는 이런 가족의 작은 전통 (tradition)을 좋아한다. 뭐든 가족 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매년 꾸준히 하다 보면 전통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나만의, 우리 부부만의, 우리 가족만의 트래디션을 만드는 일은 근사한 일이다. 나에겐, 우리 가족에겐 어떤 트래디션이 있을까? 어떤 트래디션을 만들고 싶은가?